미국에 생산설비를 갖춘 삼성전자가 이달 12일 백악관에 초청돼 반도체 부족 문제를 논의한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왔다.
지난 24일 미국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반도체, 희토류 등의 공급망 재검토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에 앞서 반도체 칩을 손에 들고 미국 내 생산의 중요성을 강조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다.
미국이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을 초청한 표면적인 배경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 부족 논의라지만 반도체를 통해 미래 먹거리와 안보를 지키기 위한 포석인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을 견제하고 동맹을 강화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미국 내 반도체 생산을 늘리기 위해 반도체 산업을 지원하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미국판 반도체 굴기가 시작될 거라는 얘기도 나온다. 바이든 체제로 바뀐 미국은 자국 우선주의의 경제 정책에 있어서만큼은 트럼프 전 행정부와 별반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삼성은 현재 미국 텍사스 오스틴에서 파운드리 공장 생산 라인을 운영하고 있다. 추가로 170억달러 규모의 파운드리 라인을 건설할 계획이며, 오스틴은 이 투자의 유력한 후보지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1일 자국의 반도체 산업에 5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미국 정부만의 움직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이 각각 글로벌 낸드플래시 시장 2위인 일본 키옥시아 인수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참고로, 삼성은 낸드플래시 시장점유율과 매출 모두 1위 기업이다.
최근 이슈로 부상한 차량용 반도체 쇼티지는 자동차 수요예측 실패, 파운드리 기업의 생산능력 제약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할 수 있다. 상위 차량반도체 제조업체들이 한파와 화재로 공장 가동이 멈춰지면서 최소 3~4개월의 부품 차질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미국도 GM과 포드의 생산 감축으로 이어졌다. 대규모 고용을 일으키는 자동차회사가 멈추면 정부의 경제 정책에 큰 타격을 줄 수 있다. 미 정부는 고용창출을 위해서라도 미국 기업에 우선적으로 반도체를 공급해 달라는 요구를 글로벌 반도체 생산 업체에 요청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나아가 미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에 필요한 첨단 반도체를 자국에서 안정적으로 생산해달라는 요청이 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한편, 중국은 현재 전 세계 반도체의 60% 이상을 소비하고 있지만 미국 등 외국계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2020년 우리 반도체 수출의 약 61%도 중국이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중국은 지난 2014년부터 정부 주도로 반도체 굴기 추진을 본격화했지만 미 트럼프 행정부의 화웨이 제재를 비롯한 적극적 견제로 대규모 반도체 프로젝트는 일단 꺾였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는 2025년 중국 반도체 자급률이 19.4%로 예상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중국 리커창 총리는 지난 5일 전국인민대표대회 정부 업무 보고에서 '십년마일검'을 외치며 반도체 굴기를 지속할 것임을 명백히 표명했다. 중국이 반도체 핵심 기술 확보가 당장은 어려울지 몰라도 10여년 간 가공할만한 인적‧물적 자원을 투자한다면 미래는 알 수 없다. 또 한국과 중국의 반도체 장비 기술격차가 1∼2년으로 좁혀졌다는 분석도 있기에 방심하다가는 자칫 거대한 수출 시장을 잃을 수도 있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글로벌 디지털 전환이 한층 빨라지면서 반도체 비중도 올라가고 있다. 이에 삼성, TSMC, 인텔의 파운드리 물량을 잡기 위한 치열한 경쟁구도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독보적인 1위인 삼성전자는 2030년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1등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는 2021년 1분기 기준 전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56%에 달한다.
2위인 삼성전자는 18%다. 영업이익 기준으로 TSMC는 시장 점유율이 85%가 넘는다.
TSMC는 위탁 생산만 전문으로 하지만 삼성은 종합 반도체 회사(IDM)라 최대 고객사들과 경쟁 구도란 점도 난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도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이번 백악관 콜이나 미국 동맹은 크게 보면 전 세계적인 장비 제조업체들의 설비 투자 확대를 자극하는 일이다. 기업의 자율적 성장이 우선시됐던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뿐만 아니라 중국, 유럽, 일본 등 국가 간 개입이 심화되는 양상이니 어떤 측면에서는 국내 포함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에게 슈퍼사이클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함은 물론이다. 장기적으로 반도체 산업은 4차 산업혁명의 인프라 그 자체이기에 중요도는 점점 더 높아질 것이다.
반도체 핵심기술만큼이나 세계 각국의 치열한 반도체 인재 쟁탈전에도 신경 써야 한다. 관련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핵심 인력 사수를 위한 장기적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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