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사가들은 내년에 ‘행동인터넷’이 뜰 것이라고 한다. 사이버보안메시, 분산클라우드, 하이퍼오토메이션이나 초자동화 정도는 충분히 예상할 만한 것들이어서, 늘 이맘때쯤이면 나오는 그저 그런 뉴트렌드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동인터넷’에 이르러선 얘기가 달라진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이 사물과 사물 간의 디지털화된 소통일진대, 행동인터넷은 곧 인간의 행동(Behavior)과 행동 간의 이진법적 교감이며, 행위결정론이다. 인간의 육질을 벗어난 디지털 공간에서 인간의 뇌신경끼리 합의된 ‘정신의 공유’가 일어난다고나 할까. 또 하나의 돌연변이같은 디지털 키워드라고 하겠다.
이는 안면 인식과 위치 추적, 빅데이터 기술로 사람들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모종의 목표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응용하기에 따라선 온갖 다양한 용도로도 쓰일 것이다. 그러나 핵심은 기계나 물질세계의 이치를 ‘인간’에 이식한다는 점이다. 기계는 바야흐로 머신러닝, 패키지 소프트웨어, 자동화 도구로 ‘초자동화’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행동인터넷은 그런 기계의 초자동화 문법을 인간의 행동심리로 치환한 것이다. 좋게 말해 자동으로, 그리고 ‘스스로 그렇게’ 작동하는 생태원리를 인간의 정신세계에 주입한 것이다. 기술윤리학의 시각에선 반갑고도 두려운 배반(背反)의 기술이다.
그럼에도 일단은 낙관의 시선으로 볼만한 여지도 많다. 잘만 활용하면 사람의 행동과 행동이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행위, 곧 ‘공유의 정의’를 조율해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선 블록체인의 기술정신과도 닮았다. 블록체인은 그 어떤 제3자의 감독이나 간섭없는 자율적 신뢰로 최적의 거래를 유도한다. 오로지 해시함수의 특성을 역으로 이용해, 체인으로 연결된 블록이 자율적이고 순차적으로 만들어진다. 자유롭고 신뢰할 만한 수많은 참여자들에 의해 ‘스스로 그러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토렌트 파일을 사용해 방대한 파일을 조각내어 전 세계 피투피 네트워크의 사용자 간에 파일을 공유하는 선한 실천도 보여준다.
행동인터넷은 비록 기술적 작위가 개입되긴 하지만, 역시 인간의 행동과 행동의 조합을 가장 합목적적인 것으로 유도해내는게 목적이다. 그런 점에서 블록체인의 자전(自轉)적 속성을 연상케한다. 한편으론 다위니즘의 사유와도 닮았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개체가 유발되고, 그 개체만이 생존할 수 있다는 자연선택이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 새삼 디지털사회의 사회적 네트워크가 문제가 된다. 건강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위해선 사이버 행동을 신뢰할 만한 관계망이 필수다. 즉 자발적이고 자체적인 검증에 의한 신뢰를 밑밥으로 삼아, 가장 순리적인 공동 행동으로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블록체인은 블록 헤시값의 계산없인 어떤 변경도 불가하고, 특정한 블록을 없애려면 모든 블록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그런 블록체인의 공식은 행동인터넷에서도 유효하다. 신뢰를 통한 최적의 공유가 행동인터넷의 소스코드가 되어야 한다. 존 롤스는 ‘세상의 가치있는 모든 것들이 내 집 앞에 우연히 솟은 우물과 같아서, 마땅히 인류의 공유자산’이라며 그와 유사한 함의를 보태기도 했다. 하지만 그 말처럼 되지 않는게 세상이다. 오히려 공유경제가 왜곡되면 디지털 약자보다 스마트한 슈퍼리치들에게 수익이 몰리고 불공정한 파레토 곡선의 나락이 펼쳐지곤 한다. 그래서 일말의 기대를 해본다. 행동인터넷이 혹여라도 그런 디지털 시대의 모순을 해결하는 신뢰와 공유의 작은 지렛대는 될 수 없을까. 최적의 인간 행동을 도출해서 정의로운 공유가 실현되는 휴머노니아의 도구가 될 수는 없을까. 그래서 행동인터넷의 정의로운 비전이 고루 전파되는 나날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본다. 하긴 희망고문일지 모르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