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와 인공지능(AI)에 의해 인간의 일자리가 대체당할 것이라는 걱정은 여전하다. 그 속엔 인간이 기계에 밀려 목적 아닌 수단으로 타자화될 것이란 존재론적 비관도 깃들어있다. 굳이 좋게 해석하면 이는 ‘인간’을 다시 발견하려는 조바심이기도 하다. 허나 언제까지 AI가 인간의 대체재냐 보완재냐 하는 이분법적 제로섬의 반경에 맴돌 것인가. 진화하는 만물 앞에 노출된 인간의 한계를 지적하는 자아비판적 성찰이라면 모를까, 이제 좀더 넉넉한 시선으로 AI를 바라봐야 할 것이다. 인간 대체가 아닌 인간 증강의 도구로 AI를 소비하는 방식을 찾는게 그것이다.
대체냐, 증강이냐. 물론 두 가지 미래형 옵션에 관한 논쟁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인간은 늘 그 본질을 무한하게 만들어간다는 확신으로, ‘일과 사람’의 영속적 관계를 주장하는 측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AI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이, 인간은 자신의 영속적 본질을 위해 그 대상을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순진한 복음적 사고라는 비판이 따를지언정, 흔쾌히 찬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 4차산업혁명기의 자동화와 로봇, 사물인터넷 등의 틈바구니에서 그나마 ‘인간’이 작동하고, 일과 사람의 선순환이 이뤄지게 하는 문법이 어느 정도 보인다. 다름 아닌 AI와 ‘더불어’ 살며, 화합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미 많은 디지털 문화론자들은 AI요소와 인간의 결합을 통해 ‘인간’을 강화하고 개선하는데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매우 당연하면서 합당한 생각이다. 그간의 인공지능 발달사에선 인간이 AI의 빈틈을 메워주는 후견인 내지 조수 역할을 자처했다. 그러나 이젠 작업과 개발의 프레임이 달라져야 한다. 인간이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 AI를 적극 부려먹고 이용하는, ‘AI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그 영역은 개인의 사생활에서부터 각종 작업 프로세스, 기업의 조직과 인력관리, 시장 전략을 망라한다. 그 과정에서 ‘주인’인 인간의 목표와 의도에 충실하도록 AI를 훈련시키고, 인간에 유익한 지식을 축적하며 활용토록 해야 한다.
이쯤 되면 인간과 AI는 협업과 연계의 파트너가 된다. AI가 인간을 증강시킬 뿐 아니라, 인간의 단점을 보완하고, 더욱 유능한 디지털 혁명의 주역이자 ‘슈퍼맨’으로 성장시킬 수도 있다. 하긴 실리콘밸리의 앤드루 킨은 ‘인간은 비숙련 노동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는, 70kg의 가장 저렴하고 예측 불가한 만능 컴퓨터’라고 했던가. 그 말처럼 AI와의 협업과 신뢰가 완벽하게 작동된다면 인간은 예측 불가한 초능력자로 변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디지털 혁명은 마침내 지능혁명에 의한 ‘증강 개인’이 주도할 것이란 비전이 현실화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이는 인간욕구와, 인간 상호작용 간의 화합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AI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인간욕구와 욕구, 그 버무림이 일자리를 둔 인간의 몫을 어느 정도 보장할지 모른다는 희망이다. 그런 희망대로라면, 인간의 상호작용이야말로 모든 경제 행위의 중심이다. 인간의 욕구란 애초 AI나 기계만이 아니라, 다른 ‘인간’들이 있어야만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적, 경제적 성과도 결국은 ‘사회적 공장’ 덕분이라는 사회학자 안토니오 네그리의 관찰과도 통한다. 다만 AI의 노예가 아닌. AI의 주인만이 그런 ‘공장’을 가동할 수 있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최종적인 선택의 문제만 남는다. AI와의 협업에 의한 분배를 실현하며 기술과 도구를 인간의 노예로 삼을 것인가, 아니면 일자리를 빼앗기고 기계의 추종자로서 긱(gig)경제의 허드렛일에 아등바등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그 선택은 산업혁명 이래 전해진 ‘일’에 대한 신성한 계명을 언제까지 준수해야 하느냐는 환원적 사고이자, 인간과 AI의 매트릭스에 관한 치열한 질문도 된다. 좀더 솔직하게는, 기계에 대체당하지 않기 위한 반(反) AI 전략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