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직접 배경 캐릭터, 대사 만들어… 하반기 신작 주목
단순 기술 넘어 몰입 설계로… AI 내재화 전략 본격화
플레이어를 속이는 NPC, AI와의 심리전이 시작됐다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AI 기술이 게임의 틀을 바꾸고 있다.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던 방식에서 벗어나, 인공지능이 직접 배경을 만들고 캐릭터와 대화를 이끌며 플레이 흐름을 유연하게 바꾸는 형태로 진화 중이다. 올 하반기 출시를 앞둔 신작 게임들에서는 이처럼 생성형 AI가 게임 내 핵심 요소로 활용되면서, 게임 개발과 플레이 방식 모두에 새로운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AI가 배경을 그리고, 사건을 움직인다
크래프톤 산하 스튜디오 렐루게임즈는 최근 AI 기술을 적극 반영한 두 개의 신작 게임을 공개했다. 각각 공포 협동 장르의 ‘미메시스’와 생존 크래프팅 장르인 ‘스캐빈저 톰’이다. 두 게임 모두 AI 기술이 게임의 중심에 배치돼 있다.
‘스캐빈저 톰’은 핵전쟁 이후 지구 생태계가 붕괴된 설정을 배경으로 한다. 이용자는 가정용 로봇을 조종해 오염된 지상에서 자원을 모으고, 이를 통해 지하 벙커에서 살아남는 것이 주요 과제다.
여기서 눈길을 끄는 점은 게임 속 탐사 환경이 정해진 맵이 아니라 생성형 AI를 통해 실시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게임을 할 때마다 새롭게 형성되는 지형과 오브젝트들이 기존 생존 게임과는 다른 몰입감을 형성한다.
이와 달리 ‘미메시스’는 감정과 심리전이 강조된 게임이다. 의문의 비에 노출되면 사람의 기억과 목소리, 행동을 복제하는 괴물로 변하는 설정 속에서, 이용자는 팀원과 함께 위험 지역을 탈출해야 한다.
문제는 그 팀원이 진짜 사람인지 AI인지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게임 속 적은 사람처럼 말하고, 행동하며, 의심을 피하려 한다. 이를 구현하기 위해 게임은 강화학습 기반 행동 모델과 SLM(Small Language Model) 기술을 활용했다. AI가 플레이어처럼 자연스럽게 움직이면서 언제든 이용자를 속일 수 있는 구조다.
기술은 몰입을 만드는 도구로, AI 기술이 게임의 흐름을 바꾼다
렐루게임즈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AI 기술을 게임 내 몰입을 높이는 데 활용하고 있다. 배경과 캐릭터의 말투를 AI가 생성하고, 상황에 따라 다른 반응을 이끌어 내는 방식이다. 렐루게임즈가 지난해 선보인 ‘언커버 더 스모킹 건’은 이런 전략이 잘 드러난 예다.
이 게임은 AI 범죄를 수사하는 탐정물이지만, 사건 해결 과정 전반에 생성형 AI가 개입한다. NPC가 주는 진술도 실시간 AI 응답으로 구현됐고, 그 진술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이용자가 직접 파악해야 하는 구조다.
게임 속 대화는 사전 입력된 문장이 아닌, 이용자의 질문에 AI가 응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용자가 던지는 질문 하나하나가 게임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 플레이 방식도 달라진다. 단서를 조합해 범인을 특정하는 탐정 게임의 기본 틀은 유지하면서, AI가 상호작용을 조정하는 새로운 구조를 만든 셈이다.
일부 NPC는 거짓말을 하기도 하며, 플레이어의 질문 방식이나 태도에 따라 반응이 달라지기도 한다. 이러한 구조는 고전적인 게임 틀에 AI 상호작용이라는 변화를 더해 몰입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생성형 AI는 지금까지 게임 개발 단계에서 리소스를 자동화하는 데 주로 쓰였다. 배경 이미지나 테스트 시나리오, 간단한 코드 생성 같은 작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용자와의 직접 상호작용까지 AI가 담당하는 방향으로 무게가 옮겨가고 있다.
렐루게임즈와 크래프톤 딥러닝 본부가 협업한 이번 프로젝트는 이러한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AI가 단순한 배경 리소스가 아니라, 게임의 흐름을 제어하고, 이용자 선택에 따라 다양한 반응을 생성하는 주체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업계는 이를 통해 플레이 경험의 유연성과 몰입도를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해진 루트를 따르는 게임 대신, 이용자 선택에 따라 세계관이 조금씩 달라지는 게임이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생성형 AI가 상황에 맞춰 대사를 바꾸고, 이용자의 행동에 따라 배경까지 새롭게 구성하면 같은 게임이라도 매번 다른 방식으로 플레이할 수 있다.
기존의 RPG, 시뮬레이션, 어드벤처 장르를 비롯해 다양한 게임 장르에서 AI 기술이 결합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스토리 중심 게임에서는 AI가 시나리오 작성을 돕고, 멀티플레이 기반 게임에서는 AI가 실시간으로 다른 이용자처럼 행동하는 구조도 가능하다. 이런 기술 흐름은 게임을 단순 소비 콘텐츠에서 상호작용형 미디어로 바꾸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업계 전반으로 퍼지는 AI 내재화
현재 AI 기술을 게임에 접목하는 흐름은 일부 스튜디오에서 시작됐지만, 점차 퍼져가는 분위기다. 넷마블의 경우 MMORPG 신작 ‘뱀피르’에서 AI 기반 이상행동 탐지 시스템을 적용할 계획이다.
게임 내 경제 시스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자동화 프로그램이나 비정상 행위를 AI가 실시간으로 판단하는 구조다. AI 기술이 단순한 콘텐츠 생성뿐 아니라, 게임의 유지 관리와 밸런스 조절에도 기여하고 있는 셈이다.
게임업계의 AI 내재화는 아직 초기 단계지만, 관련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향후 더 다양한 방식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생성형 AI의 경우, 게임 속 콘텐츠 제작과 운영, 그리고 플레이어와의 상호작용까지 모두 아우를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렐루게임즈처럼 AI 기술을 게임 설계 초기 단계부터 반영하는 방식이 늘어나면,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게임 세계의 핵심 요소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