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한 개로 햄버거를 사먹기도 했던 사람들은 요즘 후회막급이다.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입성하는가 했더니, 비트코인 가격이 개당 8천만원을 돌파했다는 소식에 그저 속만 쓰릴 뿐이다. 그런 속사정따윈 아랑곳없이 국내 거래소 시세는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보다 연일 10~15%씩 높이 올라간다. 이른바 ‘김치 프리미엄’이다. 한국인들이 유독 암호화폐에 열광해서인지 몰라도, ‘김치 프리미엄’은 지구촌에서 제일 비싼 가격으로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 그 탓에 최근 외화 송금도 급증했고, 자금세탁 우려도 나오면서 정부도 예의주시하고 있는 형국이다. 투기는 물론, 검은 돈의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의심도 살만하다.
격세지감이라고 할까. 불과 4~5년 전만 해도 법무 관료 중심으로 ‘암호화폐 폐지론’이 기세등등했다. 그 무렵의 한 방송사 토론회가 기억난다. 정부가 “거래소를 폐지할 수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던 당시에 열린 토론회에서 유시민 작가는 “엔지니어들의 아이디어로 나타난 수많은 ‘이상한 장난감’ 갖고 사람들이 도박하는 것”이라고 ‘가상화폐’를 저격했다. 그때만 해도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가상화폐’란 용어만 고집하던 참이었다. 그러나 함께 출연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선생님이 블록체인을 잘 모르시는 것 같다”고 받아쳤다. 상대에 대한 인격적 모독이라기보단, 암호화폐의 본질에 대한 “사회 일각의 성급한 무지”를 꼬집은 것이다.
그러던 것이 이제 암호화폐는 가상의 환타지가 아닌, 구체적 욕망의 기호가 되었다. 연일 천정부지로 치솟는 노다지판이 되면서, 구질구질한 현실을 떨쳐버릴 인생역전의 묘수가 된 것이다. 그래서 벼라별 꼼수가 다 등장한다. 국내와 해외거래를 오가며 시세차익을 노리는가 하면, 송금 과정에서 ‘쪼개기’ 수법도 동원한다. 시세가 낮은 나라를 오가며 ‘핑퐁’을 거듭하며 거액의 차익을 취하는건 이제 상식이다. 외환거래법상 해외송금액이 제한되다보니, 여러 사람 명의로 외국인과 비거주자에게 허용된 5천달러 이하로 쪼개서 송금하기도 한다. 참으로 부(富)에 대한 한국인의 집념은 대단하다고 해야 할 판이다.
최근의 비트코인 열풍은 어느 민족 못지않은 한국인 특유의 이재(理財)감각과 간절한 신분상승 욕구 탓인지도 모른다. 가히 ‘김치 프리미엄’의 심리학이랄까. 과거 개발독재시대 이래 끝없이 부를 추구해온 한국인의 체화된 ‘염원’일 수도 있다. 겉으로 보면 그렇다. 그러나 좀더 내밀하게 보면, 수많은 ‘개미’들이 이에 참여하고 있음에 새삼 눈길이 간다. 곧 자본축적 과정에서 “나만 소외될 수 없다”는 고립감, 그리고 이를 극복하려는 적극적 자유의 표현이자 확신이 아닐까 싶다. ‘코로나19’로 위축된 경제상황에 대한 비관과, 이와 맞물린 노동소득의 불평등도 한 몫하는 듯 싶고, ‘무한 경쟁’을 숭배하는 한국사회의 초상도 발견된다. 자유로운 경쟁에서 뒤처진 장삼이사들의 불안이, 그런 ‘자유’로부터 도피하려는 ‘소극적 자유’로 나타난 듯도 하다.
그 행동심리학적 규명이야 어떠하든, 꼭 짚어야 할 대목이 있다. 암호화폐 플랫폼은 애시당초 블록과 블록의 사슬구조, 즉 휴먼클라우드라는 사실이란 점이다. 이는 참여자 모두가 승인하고 구축한 암호체계로 가치를 매기며, 공유와 교환의 매개로 삼는다. 그렇다면 서로 충돌하는 인간욕구와 희소한 자원 배분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 최적의 수단으로서 화폐가 어떠해야 할 것인가 등등이 암호화폐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수년 전 토론회에서 정재승 교수가 그랬듯이, “블록체인과 공유경제가 갖는 탈권위와 분산, 탈중앙집권의 가치엔 무관심하고, 우리 사회 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며, 공부도 게으르다”는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김치 프리미엄’엔 그런 프리미엄한 각성이 스며들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