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은 과연 어디까지 갈까. 인공지능이 시, 소설도 쓰는 세상이고보면, 그 진화의 끝이 어디까지 닿을지 알 수 없다. 최근 열린 ‘국제인공지능대전’에서도 드러났듯이, 이런 AI기술은 우리네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메타학습이나 연합학습, 비지도학습 정도는 이미 익숙하게 알려진 것들이다. 하지만 그 작동방식은 결코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아니다. 차라리 경이롭다고 할까. 인간으로 치면 적어도 유아 수준은 이미 뛰어넘는 의사 분별과 결정능력에 갈음한다.
기계 스스로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즉각 구별할 수 있는 메타인지력은 이미 기본이다. 힌트가 될만한 데이터만 있으면 주변 환경 변수를 감안해 스스로 학습한다. 그렇게 터득한 정보와 알고리즘으로 전혀 낯선 문제를 풀며 적응하며, 단 한 번이라도 접하거나 생성된 정보는 또 다른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키워드가 된다. 자기지도학습의 경지에선 더욱 가관이다. 경우의 수가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작은 원본 데이터로부터 나름의 샘플과 경우의 수를 자동으로 생성하기도 한다. 사람으로 치면 ‘하나를 배워 열 개를 깨닫는’ 신동이라 해야겠다.
강화학습과 어우러지는 GAN(생성적 AI)이나 GNN(그래프 신경망 기반 딥러닝)도 이미 실용화되고 있다. 어떤 문제가 생기면 번거롭게 모든 경우의 수를 일일이 검토하지 않는다. 대신에 “일단 질러본다”는 식의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실제로 경험한 정보를 토대로 값을 찾아낸다. 그러나 그 정도조차 약과다. GAN은 아예 새로운 그 무엇을 만들어내는 생성적 존재로 격상될 만하다. 생성모델과 판별모델이 경쟁하면서 실제와 가까운 이미지나 동영상, 음성 따위를 스스로 만들어 낸다. 마치 인간의 창조행위와 흡사한 ‘제네시스’적 경지다. GNN도 이에 버금가는 기술이다. 복잡한 연결관계와 상호 의존성을 그래프의 형태로 표현하거나, 어지러운 교통시스템과 엣지 컴퓨팅을 연결하기도 한다.
아니나 다를까. ‘국제인공지능대전’에서도 화려한 기술들이 춤을 추었다. AI기술로 이미지를 변환하거나 해상도를 개선하는 기술 정도는 놀라울게 없었다. 또 다른 ‘나’가 가상세계에서 나를 대신해 출근도 하고, 친구도 사귀며 세상과 교류하게 하는 ‘메타버스 세컨드라이프’나, 마치 고난도의 문서를 정리하듯 비정형의 텍스트를 분석해 일정 패턴으로 정리하는 솔루션도 출현했다. 인공지능 기반 영상고속검색 기술이나, 더욱 진화된 아이봇, 정밀하게 영상을 분석해내는 스마트 기술, 사람 몸에 닿지 않고도 생체신호를 감지하는 기술 따위도 예사롭게 통용되었다.
이제 인공지능을 ‘인간의 노예’로 부리느냐 아니냐는 별개의 문제다. 그에 앞서 GAN이나 GNN 따윈 초보기술이 될 만한 ‘혁명’이 전개되고 있다. 인간의 신체적·지적 능력을 신의 경지로 끌어올리고, 인간과 기계의 융합을 주장하는 트랜스휴머니즘까지 득세하고 있다. 이런 속도라면 가상 세계의 ‘건조한 인공생명(AL)’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하는 ‘젖은 인공생명’이 탄생될 수도 있다. 그럴수록 걱정된다. 영생을 도모하며 호모데우스적 교만에 취하지 않을까, 혹은 ‘AL의 노예’가 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인공지능 전시장에선 그런 소름돋는 내일이 오버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