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100년이 넘는 기업은 그리 많지않다. 더욱이 한 언론사가 170년을 넘었다면 어떨까. 바로 세계적 권위를 지닌 미국 ‘뉴욕타임즈’가 그렇다. 3세기를 가로지르며 여러 차례 세상이 뒤바뀌곤 했지만 이 신문은 여전히 건재하다. 지금에 와선 디지털 혁명 와중에 종이신문의 몰락이 불을 보듯 뻔한데도, 쇠락하긴 커녕 더욱 기세가 등등하다.

그렇다고 그간의 여정이 늘 평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디지털’의 물결은 제 아무리 막강한 아우라를 지닌 언론으로서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적당히 시류에 편승하거나 위기에 굴복하기엔 그 역사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고 새로운 인식에 도달했다. 섣불리 과거를 재구성하는 방식으론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점이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얹듯이 이미 존재하거나 자리를 잡은 시장에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방식으론 어림없다는 생각이었다. 대신 시장의 재창조를 통한 혁신이 답이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디지털 퍼스트’였다. 그때가 1990년대 중․후반이었으니 가히 선진적 각성인 셈이다.

하긴 백번 공들여 기사를 쓴들, 독자에게 콘텐츠로서 그 가치가 제대로 전달 안 되면 헛일이다. 최고의 언론임을 자부한들 무슨 소용인가. 정작 독자들의 주목도는 NYT를 인용 보도한 ‘허핑턴 포스트’나 다른 디지털화된 매체로 인해 더욱 높아지는 실정이었다. 이 신문은 그래서 독자의 욕구를 자극하고 이를 충족하는 워크플로우를 새로 만드는 일에 올인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이미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유료와 무료공급을 병행했다. 그것도 별로 신통치 않게 되자 2000년대 들어선 ‘TIMES Select’ 전략, 즉 한 달에 8달러로 유료구독자를 초청했다. 그게 효과가 있어 22만을 넘기기도 했다.

비교적 순항을 하는 듯 했지만 이 신문은 어느날 그런 서비스를 돌연 중단했다. 유료 구독이 늘어나면서 정작 트래픽은 줄어들고 광고수입도 줄었기 때문이다. 다시 2012년 이번엔 개량형 모델을 내놓았다. 기사 전체를 게재하되 구독료를 내면 일정량 이상을 더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종전과는 다른 ‘포지티브’ 전략이었다. 그 후로도 NYT는 전법과 전술을 바꿔가며 숱한 변신과 역발상의 도전을 거듭했다. 마침내 2016년엔 유료구독자만 80만에 육박했고 트래픽은 엄청나게 늘었다. 이제 이 신문은 미국의 유력 언론일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NYT ‘아미’를 광범위하게 만들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디지털 혁명은 실물자산이 디지털 자산과 결합하고, 다양한 디지털 플랫폼이 가해진 혁신으로 요약된다. 이 신문은 그런 시대정신을 일찌감치 읽어내며 앞서 치고 나간 것이다. 도중에 엎어지고 넘어지며 다시 뒤집길 수도 없이 반복했다. 다만 숱한 언론매체들이 비슷한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고 NYT는 성공했다는 점이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맷집’이 부족했다고나 할까. 여타 매체들은 NYT처럼 실패와 좌절의 수 십 년을 인고하며 마침내 독보적인 노하우를 추출해낼 만한 지혜와 내공이 모자랐던 것이다.

정작 NYT 수익모델은 그저 새 모드의 상품에 판돈을 거는 세일즈맨 버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기업가적 정신이라고 할까. 새로움을 도입하고 창조함으로써 ‘물재(物材)의 소유보다 앎에 대한 정신적 소속의식’을 사회 일반과 공유한 노력이라고 해야 맞다. 그 바탕엔 독자와의 화해와 신뢰라는 이 신문만의 가치가 바탕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NYT는 이제 종합콘텐츠 기업을 목표하고 있다. 창사 이래 내걸었던 슬로건도 바꿨다. 인쇄된 신문에 적합한 모든 뉴스(All the News That's Fit to Print)가 아니라, ‘클릭’에 적합한 뉴스(All the News That's Fit to Click)’가 그것이다. 내친김에 2025년에는 전 세계 1000만 독자를 규합할 것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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