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경제 서방우 대만특파원 ] 타이베이에서 북회선 철로를 타고 달리다 보면, 단 두 시간 반 만에 산과 바다 사이에 자리한 화롄(花蓮)에 닿는다. 타이완 동부의 이 도시는 웅장한 자연경관과 은은한 매력을 동시에 품고 있다.
지난해 4월, 규모 7.2의 지진으로 타이루거 국립공원을 비롯한 주요 관광지가 큰 피해를 입으며 한동안 발길이 끊겼지만, 지금 화롄은 회복의 길 위에서 다시 여행자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올해 6월 시작된 화롄현 정부의 ‘We Bloom! HUALIEN’ 프로젝트는 강인한 땅 위에 피어난 작은 돌꽃처럼, 화롄의 희망과 재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계절마다 열리는 다채로운 축제와 더불어, 화롄은 슬로우 라이프와 힐링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We Bloom!’과 함께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화롄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칠성담(七星潭), 바다를 바라보며 돌 쌓기
화롄역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칠성담은 눈앞으로는 드넓은 태평양, 뒤로는 타이루거 산맥이 병풍처럼 서 있는 명소다. 해변을 따라 깔린 매끈한 자갈은 산에서 떨어져 흘러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마른 자갈 위에 앉아 조용히 돌을 하나하나 쌓다 보면, 파도에 부딪혀 굴러가는 자갈 소리에 근심이 씻겨 내려가는 듯하다.
신청천주당(新城天主堂), 일본 신사의 흔적이 남은 공간
신청향 북쪽 끝 리우시(立霧溪) 하구 마을 골목에는 조용히 자리한 ‘연습곡서점’이 있다. 그 맞은편에 신청천주당이 서있다. 문헌에 따르면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신사 터로, 석등과 고마이누가(狛犬-수호견상) 지금까지 남아 있다. 해방 이후 일부는 철거 대신 개조되며 독특한 형태가 되었고, 지금은 성모상과 고마이누가 나란히 서며 시대의 흔적을 전한다.
지역 공동체에서 시작된 마을 살리기, 그리고 ‘연습곡서점(練習曲書店)’
책을 팔지 않는 서점, ‘연습곡서점’에는 그림책과 외국 잡지, 그리고 야구 관련 기념품이 놓여 있다. 이름은 지역 아이들을 위한 야구팀 ‘연습곡’에서 따왔다. 창립자 원웨이(文偉) 는 2015년 방파제에서 공을 던지던 아이들을 만나면서 마을과 인연을 맺었다. 야구팀을 꾸린 그는 점차 교육·복지·지역 재생으로 활동을 넓혔고, 지금은 마을 공동체의 중심 인물이 됐다.
서점 옆에는 ‘신신공학(新晨共學) 베이스’를 비롯해 ‘또우화(豆花兒-두부젤리)’, ‘산해백화점(山海百貨)’ 등 작은 가게들이 하나둘 생겨나며 마을은 활력을 되찾았다. 여행자는 서점을 둘러본 뒤 달콤한 또우화를 맛보고, 옛거리를 산책하며 아이스크림 가게와 잡화점, 카페를 즐길 수 있다.
타이루거(太魯閣) 협곡 속 ‘숲속 학교’, 서보초등학교(西寶國小)
차량으로 타이루거 협곡을 따라 들어서면 회색 암벽 사이로 실처럼 흘러내리는 시우폭포가 맞이한다. 그 길 끝, 셔틀버스를 타고 도착하는 곳이 숲속 초등학교 ‘서보초등학교’다. 여기서 ‘타이루거 야생 학당’ 체험이 가능하다. 서보초등학교는 타이완 최초의 공립 숲속 초등학교로, 옛날 참전용사들이 개간한 서보 농장 자리에 세워졌으며 현재는 유기농 농업 마을로 변모했다. 학교 담장에는 타이루거 소수민족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교내에는 녹색 건축물과 대나무 전통 가옥이 산림과 조화를 이루며 서 있다. 대지진 이후 현재는 실크스 플레이스 호텔이 학교를 대신해 관리하고 있다.
학교의 나무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텅 빈 교실이 맞이한다. 화이트보드에는 여전히 ‘흑조 고래 돌고래’ 수업과 주 2회 진행되는 양궁 수업 일정이 남아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양궁장이 나오고, 마을 가이드가 형형색색의 끈을 감은 나무 활을 꺼내 양궁 체험을 안내한다. 활을 당기고, 조준하고, 손을 놓는 일련의 동작은 온몸의 조화로운 움직임이 필요하며, 그 과정을 통해 사냥꾼 문화의 지혜와 노고를 몸소 느낄 수 있다.
협곡 속 호텔에서의 하룻밤, 타이루거 실크스 플레이스(Silks Place Taroko)
국립공원 안에 자리한 유일한 대형 호텔 ‘타이루거 실크스 플레이스(太魯閣晶英酒店, Silks Place Taroko)’는 절제된 디자인과 대형 통창을 통해 산과 협곡 풍경을 한 폭의 그림처럼 담아낸다. ‘웨슬리 뷔페 레스토랑(衛斯理自助餐廳)’에서는 화롄 식재료로 만든 요리를 맛볼 수 있고, 옥상 바에서는 원주민 문화를 주제로 한 칵테일을 즐길 수 있다. 옥상 풀사이드 바에서는 ‘부락 순례 16족(部落巡禮16族)’이라는 이름의 좁쌀주 칵테일 세트를 선보인다. 총지배인 자오자치(趙嘉綺)는 지난해 지진 당시 신속히 호텔을 임시 대피소로 전환했고, 서보초등학교와 상덕사(祥德寺), 지역 소규모 농가와 오랜 기간 협력하며 위기를 극복했다고 전한다.
아침이 밝으면 리우시(立霧溪) 와 다사시(大沙溪)가 만나는 절경이 창가에 펼쳐진다. 천천히 산책을 나서 상덕사(祥德寺) 사원에서 요가 수업에 참여해 보자. 독경 소리와 매미 소리, 시원한 바람이 어우러져, 자연 속에서 맞이하는 하루의 고요함을 선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