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20 칩마저 수출 금지… 이틀간 시총 2700억 달러 날아가
미, '딥시크'도 표적, 엔비디아, 규제 하루 전 美에 5천억 달러 투자 발표
젠슨 황, 이튿날 베이징行, 中 부총리·딥시크 창업자 동시 면담

엔비디아 CEO 젠슨 황.(사진:로이터)
엔비디아 CEO 젠슨 황.(사진:로이터)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마라라고 파티' 참석 대가로 대중 칩 수출 통제를 벗어날 수 있었던 엔비디아가 다시 뒤통수를 맞았다. 트럼프 행정부는 16일 엔비디아의 H20칩의 중국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공교롭게도 엔비디아는 하루 전 미국에 5천억 달러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도 헛수고가 되면서, CEO 젠슨 황은 황급히 베이징으로 날아가 중국 정부 고위 인사들과 연달아 만났다. 미 상무부는 아예 '딥시크'를 겨냥, 다시는 엔비디아 칩으로 그런 고성능 모델을 만들지 못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젠슨 황은 미국에 대해선 정책에 협조하는 듯 보였고, 중국과도 기존 관계를 이어가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양수겸장을 노렸으나, 결국은 어느 쪽과도 안정적인 관계를 형성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수출 규제 전, 5천억 달러 투자 발표 후 중국에선 ‘중요한 시장’ 강조

엔비디아는 그간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를 피해 칩을 다시 설계해왔다. H100이 막히자 H800을, 이후엔 H20을 내놨다. 성능을 일부러 낮춰 규제를 피해 가는 방식이었다. H20은 중국 고객들이 가장 많이 주문한 제품이었고, 실제로 180억 달러 규모의 수요가 몰려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 전략이 통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H20마저 수출 허가 대상에 포함시켰고, 엔비디아는 55억 달러 손실을 떠안게 됐다. 미국 정부는 더 이상 제품 성능이나 사양이 아닌, 실제 쓰임새를 기준으로 규제를 판단하고 있다.

규제 발표 하루 전, 엔비디아는 미국에 5천억 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내놨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조업 유치에 힘을 쏟고 있는 가운데 나온 발표였다. 칩 수출 규제를 앞두고 미국 정부에 메시지를 던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런데 하루 뒤, 젠슨 황은 중국 베이징을 찾았다. 중국 부총리와 회담했고, 중국무역촉진회 등 정부 관계자들과도 만났다. 그 자리에서 “중국은 중요한 시장”이라고 말했고, 중국 관영매체들은 이를 크게 다뤘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의회가 직접 조사를 벌이고 있는 중국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창업자와도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딥시크는 미국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검열 도구로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특히, 엔비디아 칩 수만 개를 이용해 AI 모델을 훈련시켰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 때문에 미 하원 중국특별위원회는 엔비디아에 공식 질의서를 보내 관련 사실을 확인 중이다.

결국 미국에선 “정책에 협조한다”는 메시지를 내놓고, 중국에선 “우호적 관계를 이어가자”는 제스처를 취한 셈이다.

미·중 경쟁 속 길을 잃은 엔비디아

엔비디아는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의 중심에 서 있다. 강력한 AI 컴퓨팅 입지를 자랑하지만, 이제는 무역전쟁의 한가운데에 놓이게 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엔비디아가 하위 사양 칩조차 중국에 판매할 수 없게 된 점을 무역전쟁이 기업의 비즈니스에 미치는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미·중 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엔비디아의 글로벌 시장에서의 위치는 단순히 기술력만으로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정치적, 경제적 리스크가 기술 기업에게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엔비디아의 전략은 늘 정밀했다. 규제 기준선을 분석해 성능을 낮춘 칩을 만들고, 양국 정부와의 관계를 동시에 고려해왔다. 하지만 이 전략은 지금 한계에 부딪혔다. 미국은 더 강한 수출 통제를 예고하고 있고, 중국도 더는 엔비디아만을 바라보지 않는다.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이 AI 반도체 개발에 속도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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