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관세 정국’에도 침묵, “그러나 물밑으론 로비 치열”
팀 쿡, 저커버그, 베조스, 피차르 등 “트럼프 측과 비밀스런 소통”
젠슨 황 ‘마라라고, 100만달러 파티’ 참석 후 대중 칩 수출통제 예외
빅테크들의 ‘라운드테이블’ 통한 로비? ‘미국판 정경유착’ 추측도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 빅테크 CEO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국에 대부분 침묵 모드를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기존 상호관세 정책을 ‘90일 유예’하기로 하면서, 특히 그간의 빅테크 CEO들의 이례적인 침묵의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확히 드러난 바는 없지만, 이들 대부분은 겉으론 일절 침묵을 지키면서도 사실은 백악관과 의회를 겨냥한 ‘물밑 협상’이나 로비를 치열하게 벌여온 게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 있다. 미국판 ‘정경 유착’의 또다른 모습인 셈이다.
주가 폭락, 1조달러 이상 날려도 ‘침묵’ 모드
팀 쿡,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다른 기술 기업들은 자사들이 주식시장 추락으로 수조 달러의 손실을 입는 동안에도 공개 성명을 내지 않았다. 심지어 주가 추락으로 MS에게 1위 자리를 빼앗긴 애플 팀 쿡도 일절 입을 다물고 있다.
그 뿐 아니다. 제프 베조스, 팀 쿡, 순다르 피차이, 마크 저커버그 모두가 트럼프 관세에 대해 함구해왔다. 반면에 피차이와 저커버그는 AI에 대한 정보나 글만 꾸준히 올렸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발표 이후 이른바 이들 ‘매그리피선트 7’이 시장 가치에서 수조 달러를 잃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침묵은 기이한 일로 받아들려질 만큼 이례적이었다. 그러나 현지 애널리스트들은 “이러한 기술 리더들의 침묵에는 냉정한 계산과 논리가 숨어 있다”고 했다. 즉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은 매우 불안정한 국가가 되었으며, 정치적 결정에 맞춰 일일이 자사 입장을 밝히는 성명을 공개하기엔 “대통령의 변덕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시간 후에는 그 발언이 무의미해질 수 있는 상황이 반복되는 현실에선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상은 기술 기업 CEO들은 실제로 침묵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자신을 위해 배후에서 로비 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워싱턴 D.C.의 정치 전략가이자 2008년 대선 캠페인 당시 존 매케인 상원의원의 보좌관이었던 니키 크리스토프는 ‘와이어드’에 “무역 규칙에 대한 전략 수립과 트럼프 대통령 참모들과의 대화가 대부분 현재 비밀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특히 “(CEO들은) 은밀하게 개인적인 전화 통화를 통해 협상을 성사시키려는 노력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했다.
‘비밀 채널’ 통해 자사 특정 품목, 관세 면제 로비 추측
트럼프 대통령의 지난 1기 임기 동안엔 애플의 CEO 팀 쿡은 무역 및 이민과 같은 문제에 대한 로비를 위해 트럼프와 직접 관계를 구축, 소통했다. 그래서 “쿡은 지금도 그때처럼 직통 채널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엔비디아 CEO 젠슨 황 역시 마찬가지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에 그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젠슨 황은 지난주 트럼프의 사저인 플로리다 마라라고에서 열린 1인당 100만 달러 참석비용을 내야하는 만찬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직후 백악관은 엔비디아가 중국에 판매하는 일부 칩에 대한 수출 통제 조치를 시행하려던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이들 IT 기업 대표들은 대부분 ‘비공개 비밀 채널’을 통해 특정 품목에 대한 관세 면제 등을 위해 로비 활동을 벌일 가능성이 크다. 그 때문에 빅테크마다 서로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밖에 없다. 엔비디아의 경우 GPU용 반도체 수입에 대한 관세 면제를 얻어냈다. 그러나 이는 애플이 추구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애플의 공급망 복잡성과 중국 의존도를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빅테크들은 관세에 대한 포괄적인 입장이 아니라, 자사 제품에 대한 면제를 받는게 목적”이라는 얘기다.
산업매체 ‘와이어드’에 따르면, 한편으로 기술 기업 CEO들은 알파벳과 아마존 등 여러 빅테크들을 포함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Business Roundtable)과 같은 무역 단체가 포괄적인 로비 활동을 펼치도록 허용하고 있다.
실제로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 CEO 조슈아 볼튼은 “행정부가 무역 파트너들과 신속하게 합의하고 ‘합리적인 면제’를 시행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우리로 말하면 일종의 ‘전경련(한경련의 전신)’을 연상케 하는 조직이다.
사티야 나델라 “경제·사회 변화 어떻든 적응”
반면에 JP모건 체이스 CEO 제이미 다이먼과 같은 은행가들도 관세가 경제에 미치는 지속적인 부정적 영향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억만장자 헤지펀드 투자자 빌 애크먼도 연일 같은 내용의 트윗을 올리느라 바쁘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빅테크 CEO들은 뒷짐을 지고 있었다.
물론 몇 가지 예외적인 사례도 있었다. 아마존 CEO 앤디 재시는 “아마존의 방대한 제3자 판매자 네트워크(전자상거래 등)가 결국 관세 비용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하긴 했다. 또 지난주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와 빌 게이츠, 전임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 등은 CNBC의 앤드류 로스 소킨과의 인터뷰에서 관세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CNBC의 발머가 소킨에게 “대학에서 경제학을 어느 정도만 공부한 나로선 관세가 어떤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이런 혼란은 사람들에게 매우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나델라는 이와는 다른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관세에 대한 비판보다는) 자사의 인공지능을 홍보할 기회로 삼았다.
그는 “단기적으로 보면, 무슨 일이 일어나든, 어떤 조정이 일어나든, (관세 정책과는 무관하게) 우리는 처음으로 ‘지능’이라는 필수적이고 비내구적인 상품을 공급하고 있는 셈”이라며 “현재 가장 고심하는 것은 앞으로 25년에서 50년 후 세계가 얼마나 많은 컴퓨팅 파워를 필요로 할 것인가라는 것”임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싶다. 그러면서 지정학적 또는 경제적 변화가 어떠하든 그에 맞춰 적응할 수 있을 것”이리고 덧붙였다. 관세 정책 등 외부 변수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태도다.
머스크는 ‘예외적 행보’, 관세에 노골적 비판
그러나 일론 머스크는 예외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관세 철폐를 직접 호소하고 나섰다. 한 발 나아가서 트럼프 대통령의 수석 무역 고문인 피터 나바로를 향해 “멍청이”라거나, “벽돌 자루보다 더 멍청한 인물”이라는 등 모욕적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물론 나중에 머스크가 사과하긴 했다. 그러면서도 “그 비교(벽돌보다 멍청하다는 비교)가 ‘벽돌에 대한 너무 불공평한 말”이라고 함으로써 사과를 무색하게 했다. 이는 나바로가 머스크의 테슬라를 향해 “자동차 제조업체가 아니라 자동차 조립업체”라고 하자 발끈해서 퍼부은 욕설이다.
실제로 테슬라는 미국 외에서 조달되는 값싼 부품에 크게 의존한다. 머스크는 그러나 “테슬라는 가장 대표적인 미국산 자동차”라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여론은 “관세에 대한 머스크의 발언은 너무나 명백하게 이기적”이란 시각이 지배적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만을 따진다는 지적이다.
얼마 전만 해도 빅테크 기업들은 자사는 물론,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는 주요 사회·정치적 문제에 대해 공개적으로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뉴욕타임스’는 “하지만 이러한 발언은 대부분 과시적이며 그런 척(공익을 생각하는 척)했을 뿐”이라고 했다.
즉 “그들에게는 사실상 겉으론 침묵하고, 물밑으론 사적인 로비 활동을 벌이는게 하나의 법칙”이라며 “특히 유난히 변덕스러운 대통령을 상대할 때는 더욱 그렇다”고 꼬집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