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디지털자산 산업, 기술·시장·규제 변화로 전환점 맞아
2030 세대 투자 참여 급증, 글로벌 경쟁 속도 못 따라간다는 우려
D-CON 2025에서 전문가·산업계·정책 담당자, 향후 과제 논의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국내 디지털자산 산업이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기술, 시장, 규제 변화가 동시에 밀려오면서 젊은 투자자 참여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제도적 한계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평가다.
19일 진행된 D-CON 2025에서는 국내외 전문가와 산업계 관계자, 정책 담당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산업 현황과 향후 과제를 논의했다. 행사에서 공감대가 형성된 점은 기술 기반 투자 흐름이 이미 일상으로 들어왔다는 점이다.
동시에 참가자들은 국내 규제 체계로는 글로벌 경쟁 속도를 따라가기 어렵다는 우려도 드러냈다. 특히 2030 세대의 디지털자산 투자 참여가 크게 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글로벌 디지털자산 경쟁, 국가별 전략 차이 뚜렷
패널들은 디지털자산 산업이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국가 전략 경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각국의 대응 방식은 경제 구조와 정책 목표에 따라 크게 달랐다.
미국은 달러 기반 자산이 이미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스테이블코인 입법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는 통화 패권을 유지하고 디지털자산 시장을 제도권 안으로 끌어오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유럽은 미카(MiCA) 법안을 통해 규칙을 먼저 정하고, 글로벌 기술 기업 중심으로 흐르는 시장에서 새로운 산업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한다. 일본은 현금 중심 문화와 개인정보 보호를 고려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와 과세 체계 도입을 신중히 검토하는 단계다.
중동 국가들은 오일머니 이후를 대비해 디지털자산을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살피고 있고, 남미에서는 높은 인플레이션 때문에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생활 자산처럼 쓰이는 사례가 등장하고 있다.
패널들은 “누가 새로운 자산 체계를 먼저 주도하느냐에 따라 금융과 기술 산업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 규제는 장애물,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기회
국내 규제 환경도 논란의 중심이었다. 지금의 법 체계는 이용자 보호를 중심으로 설계돼 있지만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기본법이 없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현재 디지털자산 관련 법은 특정금융정보법과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이 핵심이다. 특정금융정보법은 자금세탁 방지를 중심으로 거래소 진입 장벽 역할을 하고,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은 불공정 거래와 고객 자산 보호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장기적인 산업 전략을 세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한국만의 규제 특수성도 존재한다. 외국인 투자 제한, 법인 투자 제한, 1거래소 1은행 규제 등이 대표적이다. 한 패널은 “규제가 누적되면서 국내 거래소의 경쟁력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 규제는 글로벌 경쟁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고착화돼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스테이블코인 논의에서도 “준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스테이블코인이 결제 수단으로 널리 쓰이면 국내 플랫폼에서 원화가 달러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이미 정기 구독 서비스나 해외 플랫폼 결제 확산으로 개인 단위에서도 원화 유출이 활발하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국내 결제 인프라는 강점으로 평가됐다. 카카오페이, 네이버페이, 토스 등 대규모 간편결제 이용자 기반과 실명 계좌 보유자 수, 일평균 거래 규모를 고려하면, 원화 스테이블코인 잠재 수요는 충분히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카드 가맹점 정산 주기와 수수료 체계를 고려하면 스테이블코인 기반 결제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패널들은 “한국 소비자는 빠른 정산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기회가 더 크다”고 강조했다.
2030 세대, 디지털자산에 익숙… 규제보다 판단 권리 강조
젊은 층의 투자 변화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디지털 환경에서 성장한 2030 세대는 기존 부동산 등 전통 자산보다 디지털자산에 더 익숙하다. 초기 자본 부담이 큰 기존 투자보다 접근성이 높은 디지털자산이 자연스럽게 선택지로 떠오른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 투자자들의 미국 주식 투자 흐름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비트코인 채굴 기업 등 디지털자산 관련 기업이 한국 투자자 순매수 상위권에 오르는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패널들은 “젊은 세대는 기술 기반 투자처에 더 친숙하며, 투자 판단에서 기술 변화 감각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젊은 세대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후견주의적 규제 논의가 나왔다. 패널들은 “투자 손실을 국가가 대신 떠안을 수도 없는데 일부 규제는 국민을 미리 막는 성격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또 국내 규제로 인해 투자자가 해외 거래소로 이동하면 부가가치세와 세수뿐 아니라 산업 성장 기회까지 함께 해외로 넘어간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산업 성장을 위해서는 안전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중심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혁신과 신뢰, 균형 잡힌 제도 필요
제도 설계에서는 혁신과 신뢰의 균형이 핵심으로 꼽혔다. 혁신만 강조하면 피해가 발생하고, 신뢰만 강조하면 산업이 정체될 수 있어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
디지털자산 파생상품 제도화, 기관 투자자를 위한 대여·중개·신용공여 시스템 도입도 논의됐다. 시장 참여자 확대와 난립 방지를 위해 일정 수준의 자기자본 요건을 두는 방안도 소개됐다.
산업계에서는 국내 거래소가 경제에 기여한 부분을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강한 규제 환경에서는 투자자 이동이 빨라 산업 성장 기반 확보가 쉽지 않다는 우려도 있었다.
학계, 디지털자산은 전략 관점에서 접근해야
학계에서는 디지털자산을 단순 규제가 아닌 국가 성장 전략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규제는 대부분 사후 규제 중심으로,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전략과 인프라 구상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패널들은 디지털자산을 기술 산업 전반의 변화 속에서 평가하고, 글로벌 경쟁 속 위치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헌법이 보장하는 경제적 자유와 창의성을 기준으로 규제는 시장 실패나 공익 보호 목적에 한정돼야 하며, 단순 위험 가능성만으로 규제를 강화하면 산업 발전을 막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디지털자산을 기존 산업과 연결해 기술 혁신을 이끌 수 있는 차세대 성장축으로 평가하며, 향후 국내 산업 전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내다봤다.
행사 전반에서 강조된 점은 글로벌 경쟁이 본격화한 상황에서 국내 제도와 산업도 늦지 않게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계, 정치권, 학계는 속도와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가 향후 논의의 핵심이라는 데 의견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