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센서·카메라·AI 프로세서 등 많은 장치들로 인해 전력 소모 커
중국, 휴머노이드 마라톤 대회 개최… 총 21대 중 4대 제한 시간 내 완주
삼성 SDI·현대차·테슬라 등 기업 간 휴머노이드 로봇 배터리 개발 경쟁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지난 19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세계 최초로 휴머노이드 로봇들이 참가하는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인간처럼 달릴 수 있는지’를 시험하는 이번 대회에는 21대의 로봇이 출전했으나, 4시간 제한 시간 안에 완주한 로봇은 단 4대에 불과했다. 우승자는 ‘티앙궁 울트라’로, 결승선까지 2시간 40분이 걸렸고 도중에 세 차례나 배터리를 교체해야 했다. 나머지 로봇들은 출발 직후 쓰러지거나, 중간에 연기를 뿜으며 멈춰 섰다.
이번 대회로 휴머노이드 로봇이 사람처럼 두 발로 걷고, 주어진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지능과 감각은 이미 일정 수준에 도달했지만, 정작 ‘얼마나 오래 일할 수 있느냐’는 문제 앞에서는 대부분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로봇이 지닌 고도화된 기술도,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지 못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된 셈이다.
이처럼 휴머노이드 로봇이 점점 더 똑똑해지고 정밀해질수록, 오히려 ‘배터리’가 상용화의 가장 큰 걸림돌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히 동작만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운반·조립·대화·보행 등 복합적인 작업을 수행하려면 그만큼 많은 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의 배터리 기술로는 이를 충분히 감당하기 어렵다. 로봇 산업이 실질적인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선, 이제 ‘에너지 효율’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성능 좋아질수록 전력 소모 커… 차세대 배터리 개발 필수
최근 몇 년 사이 휴머노이드 로봇은 빠르게 진화했다. 무거운 짐을 옮기거나 조립을 수행하고, 사람의 말에 반응해 물건을 전달하는 기능까지 구현되면서 산업과 일상 속 투입이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로봇이 인간의 역할을 완전히 대체하긴 어렵다. 결정적인 이유는 지속 작동 시간이 지나치게 짧기 때문이다.
현대차 그룹의 보스턴 다이내믹스가 개발한 ‘아틀라스’는 3700Wh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지만, 정적인 걷기 동작을 제외하면 1시간 이내에 멈춰 선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1세대는 2300Wh 수준이며, 미국 피규어AI, 중국 유비테크 등 글로벌 기업들의 최신 모델들도 2000~3000Wh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다. 외형이나 기능은 사람과 비슷하게 구현되고 있지만, 에너지 소모량은 그보다 훨씬 크다. 각종 센서, AI 프로세서, 모터, 통신 장치 등이 동시에 작동되면서, 실제로는 사람이 일할 때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휴머노이드가 하루 8시간 산업 현장에서 근무하려면 최소 2만Wh 이상을 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가 필요하다. 지금 기술 수준으로는 1시간 작동 후 충전하거나 교체해야 하는 구조인데, 이로는 생산성 있는 현장 배치가 어렵다.
배터리 기술이 로봇의 상용화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는 전망 속에, 주요 기업들은 빠르게 협업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현대차·기아와 삼성 SDI는 로봇 전용 고용량 배터리 공동 개발에 나섰다. 삼성 SDI가 배터리를 개발하면 현대차 로보틱스랩이 이를 로봇에 적용해 실제 사용 조건에서 성능과 수명을 테스트하는 방식이다. 이 배터리는 향후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모델에 탑재될 가능성이 높다.
테슬라도 LG 에너지솔루션과 손잡고 2세대 옵티머스에 4680 배터리를 탑재할 계획이다. 이 배터리는 기존 원통형 배터리보다 에너지 밀도가 30% 높아, 출력 유지 시간과 효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유비테크와 비야디(BYD) 역시 자체 휴머노이드 배터리 개발에 돌입하면서, 미국·한국·중국 3국의 배터리 개발 구도가 형성됐다. BYD는 2030년까지 배터리 밀도를 지금보다 두세 배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로봇 산업을 핵심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BYD와 샤오미 같은 민간 기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로봇에 필요한 배터리와 센서, 감속기 등 핵심 부품의 내재화를 추진하며, 전기차 공급망을 바탕으로 빠르게 인프라를 갖춰 가고 있다.
반면 미국은 중국산 부품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고관세를 부과하는 등 공급망 재편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핵심 부품의 국산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누가 먼저 ‘에너지 자립형 로봇 생태계’를 구축하느냐에 따라 향후 로봇 산업의 주도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작고, 오래 가는' 배터리의 시대
배터리 기술의 진화 방향은 뚜렷하다. 동일한 크기에 더 많은 전기를 담을 수 있어야 하고, 동시에 가볍고 작아야 한다. 자동차처럼 넓은 공간을 쓸 수 없는 로봇 특성상, ‘작고 강한 배터리’가 필요하다. 현재 로봇 전용 배터리 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은 4680 배터리를 포함한 ‘46 시리즈’다. 같은 크기 기준으로 기존 제품보다 에너지 밀도가 높고, 출력 유지 시간도 상대적으로 길다.
삼성 SDI와 LG 에너지솔루션은 올해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갔으며, 향후 1~2년 내 출시될 차세대 로봇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2세대도 이 제품을 탑재할 가능성이 크다. 최대 저장 용량은 8600Wh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46 시리즈 배터리로도 하루 8시간 연속 작동은 어렵다. 이를 넘어서려면 에너지 저장량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로의 전환이 필수다. 업계에선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2만Wh 이상의 용량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삼성 SDI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며, BYD도 유사 기술에 대한 연구에 착수했다. 전고체 배터리가 상용화되면 에너지 저장량을 2만Wh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어, 하루 8시간 연속 가동이 가능해질 전망이다.
더 멀리는 리튬에어 배터리도 거론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수소를 활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이 기술이 현재 이론상 기존 배터리보다 10배 이상 높은 에너지 밀도를 구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연구실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상용화는 빠르면 2035년 이후로 예상되고 있다. 한 번 충전으로 24시간 가동이 가능한 로봇이 나올 수도 있지만, 아직은 먼 미래의 얘기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30년까지 글로벌 휴머노이드 시장은 660억 달러(약 94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 전망이 실현되기 위해선 에너지 공급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실제로 지금 나오는 대부분의 휴머노이드들은 뛰어난 인공지능을 갖췄지만, 1시간을 버티지 못한다면 산업용, 서비스용 어디에도 실질적으로 쓰이기 어렵다. 일하고 충전하고, 다시 일하는 식의 효율성으로는 시장에서 생존이 어렵다는 뜻이다.
로봇 산업의 다음 단계는 더 많은 전기를 저장하면서도 크기와 무게를 줄이는 쪽으로 향하고 있다. 구동 시간은 길어야 하고, 충전 시간은 짧아야 한다. 이를 위한 소재 혁신과 폼팩터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향후 누가 더 오래, 안정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배터리를 먼저 확보하느냐에 따라 로봇 산업의 승패가 가려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