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만’ 표기 거들어, 외교적 논란에 ‘쐐기’
멕시코 반발 불구, “일방적 표기에 힘보태” 비판도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만(Gulf of Mexico)의 명칭을 '미국만(Gulf of America)'으로 변경하기로 한데 이어, 구글과 애플 등도 잇따라 지도앱에서 표기를 바꾸고 있다. 세계적 권위를 지닌 빅테크 앱들도 거들고 나서면서 ‘미국만’ 표기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히고 있다.
이같은 미국의 일방적인 지명 변경이 멕시코 측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선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데다, 세계 지도와 지명의 기준이 되다시피하는 구글과 애플이 힘을 실어주면서 그런 논란과 반발에 쐐기를 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애플(Apple)은 12일(현지시간) 자사 지도에서 공식적으로 '미국만'이라는 표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주 구글(google)이 같은 결정을 내린 데 따른 것이며,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 연방정부가 공식적으로 ‘미국만’으로 확정한 것을 염두에 둔 조치다. 블룸버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20일 행정명령을 통해 해당 수역의 명칭을 변경하도록 지시한 이후, 미국 주요 IT 기업들이 이를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며, 미국의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애플의 결정으로 '미국만'이라는 명칭이 글로벌 표준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플은 ”곧 전 세계적으로도 이 명칭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구글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정부의 공식 지도 변경에 따라 구글 지도에서도 '미국만'을 적용했다"고 발표했다. 미국 사용자들에게는 '미국만'이 단독 표기되지만, 멕시코에서는 기존의 '멕시코만'이 유지된다. 국제 사용자들에게는 '멕시코만(Gulf of Mexico)'이 우선 표기되고 '미국만(Gulf of America)'이 괄호로 함께 표시되는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대선에서 승리한 후, 지도 서비스 제공업체들은 이같은 연방 정부 방침을 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구글이 선제적으로 이를 반영한 데 이어 애플도 이에 대응함으로써 미국의 주요 지도 서비스가 모두 명칭을 바꾼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멕시코만으로 알려진 지역은 미국의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하며, "미국의 위대한 이름을 되찾겠다"면서 이같은 명칭 변경을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정책의 일환으로 설명했다. 이에 미국 지리이름위원회(U.S. Board on Geographic Names)에 지침을 하달, 미국 정부의 공식 문서와 지도에서도 '미국만' 명칭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미국 국립지리정보시스템(GNIS)이 명칭을 공식 변경하면서, 구글과 애플이 지도 서비스에 반영하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조치는 단순한 지도상의 명칭 변경을 넘어 트럼프의 국가주의적 정책이 더욱 공고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이미 “미국을 가장 위대한 나라로 만들겠다”(MAGA)며, “미국 내 지명뿐만 아니라 해외 지역 명칭까지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특히 지난 9일(현지시간)을 ‘미국만의 날(Gulf of America Day)’로 공식 지정하고,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로 향하는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이를 축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는 멕시코만 연안에 접근한 시점에 맞춰 서명하며, 명칭 변경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백악관은 이에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국만의 날을 맞아 에어포스원이 처음으로 ‘미국만‘ 상공을 비행했다”고 강조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서명 장면을 공개했다.
멕시코 "미국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문제 아냐"
그러나 명칭 변경을 둘러싼 논란은 외교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멕시코 정부는 미국이 일방적으로 해양 지명을 변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국제 해역에 걸쳐 있는 지명을 한 국가가 독단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며 "이는 명백한 주권 침해"라고 지적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1600년대 지도까지 꺼내 들며 "미국 남서부도 '아메리카 멕시카나(America Mexicana)'로 불러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멕시코는 국제적으로도 명칭을 통일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실제로 지명 변경 문제는 외교적 갈등으로 번지기도 했다. 과거에도 '페르시아만(Persian Gulf)'과 '아라비아만(Arabian Gulf)'처럼 해양 명칭을 두고 분쟁이 일어난 사례가 있으며, 우리나라도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를 둘러싸고 일본과 갈등을 겪고 있다. 국제연합 지명 전문가 그룹(UNGEGN)은 "국제적으로 명칭을 표준화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정치적 요소는 배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조치는 단순한 상징적 결정이 아니라, 향후 대선 전략과도 맞물려 있다. 트럼프는 지지층 결집을 위해 국수주의적 정책을 계속해서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 이미 국경 장벽 강화, 멕시코산 제품에 대한 고율 관세 부과 등 멕시코와 관련된 여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이번 명칭 변경을 계기로 다른 지리적 명칭 변경까지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미국 내 최고봉인 '데날리 산(Mount Denali)'을 다시 '매킨리 산(Mount McKinley)'으로 되돌릴 것을 지시했다. 이는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의 이름을 복원하겠다는 트럼프식 애국주의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블룸버그는 “미국의 지도 변경이 국제 표준으로 굳어질 가능성은 낮지만, 빅테크 기업들이 이를 반영한 만큼 파급력은 적지 않을 전망”이라며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글로벌 기업들의 서비스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향후 국제 사회의 대응이 주목된다.”고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