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성차 업계 실업사태 우려 불구, “또 다른 ‘기회’” 전망도
“전기차 인프라, 배터리․칩 등 연관 산업으로 패러다임 전환”

사진은 '2019서울모토쇼' 전시장 모습으로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사진은 '2019서울모토쇼' 전시장 모습으로 본문 기사와 직접 관련은 없음.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 오는 2030년까지 9년 동안 미국 전체 자동차의 절반을 전기자동차로 전환하겠다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선언에 국내 자동차업계도 초비상이 걸렸다. 물론 국내 완성차업계도 그 동안 친환경 디지털 시대에 갈음할 만한 전기차와 수소차 개발과 보급에 공을 들여왔다. 그러나 9일(미 현지시간) 미 백악관에서 들려온 소식은 업계로선 충격이라고 할 만큼, 갑작스런 변화의 시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물론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불과 9년 안으로 사실상 자동차 2대 중 1대를 전기차로 바꾼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현대․기아를 비롯한 완성차업계는 자칫 ‘패닉’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부품 관련 업체를 운영하는 이 관계자는 “그래서 갑작스럽게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열리는 만큼, 이에 맞는 급진적인 변화를 단행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내 메이저 완성차업계를 보면 그런 ‘급진적인 변화’가 쉽지 않다는게 또 다른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내연기관에 비해 부품이 비교적 단순하고, 조립과정도 간단한 전기차는 우선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 않다. 본격 전기차 시대가 10년도 채 안 된 시점에 이뤄진다면 당연히 완성차 업계의 대규모 구조조정 바람이 불 수 밖에 없다. 부산의 한 완성차업계 QC라인 책임자인 K모씨는 “현대차만 하더라도 지금 인력의 3분의 1 이상으로 줄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임시변통의 여지는 있다는게 K씨의 말이다. 즉 “다행인지 불행인지 몰라도, 현대차의 전체 인력의 약 50% 가까운 인력이 50대 이상”이라며 “만약 바이든의 말처럼 9년 내에 전기차 시대가 올 경우, 현재의 현대차 인력 절반은 자연 감소될 것이므로, 급속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갈등이나 사회적 비용은 덜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문제는 탈(脫)내연기관의 생산 공정으로 인해 자동차 산업 전체의 고용규모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이다.

한 대학의 자동차학과에 매주 출강하는 P모씨는 “현재 부양 가족들까지 포함해서 국내 완성차업계 관련 인구는 적어도 200만명은 넘을 것”이라며 닥쳐올 고용시장의 불안을 우려했다. 전기차 시대 개막으로 수많은 완성차업계 종사자들이 정년퇴직하거나, 도중 일자리를 그만 두었을 때 닥쳐올 대규모 실업사태는 그야말로 ‘재앙’ 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도 이 참에 일찌감치 ‘전기차 시대’를 적극적으로 대비하며, 혁명적인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게 그의 조언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우선 완성차 업계가 전기차와 수소차로 공정을 빠르게 전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또 영업과 마케팅 분야도 전기차 시장을 중심에 둔 체제로 전환하는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그런 과정에서 기술혁신과 끊임없는 개량과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대안을 모색하는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이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시급한 과제는 퇴직 인력들의 ‘밥벌이’ 수단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들은 각자 자동차 업계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만큼 그 중 정비나 부품 생산 분야로 진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좁은 문’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이른바 ‘카센터’로 불리는 자영업 규모의 자동차 정비업계도 최근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다. 고양시에서 40년 간 카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L씨는 “요즘은 국산차도 워낙에 품질이 좋다보니 예전처럼 고장도 잘 안나고 해서 그전보다 매출이 많이 떨어지는 추세”라며 “우리 업소뿐 아니라 다른 데도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실제로 한국자동차정비산업협회 추계에 따르면 자동차 보유대수는 크게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카센터 업체는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미미하게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앞서 P씨는 “앞으로 전기차와 관련된 인프라가 새로운 유망산업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를 들어 방치된 옛 공중전화기를 전기차 충전기로 활용하는 등 지금의 주유소 만큼 많은 수의 충전소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지하 저유고를 두고 운영하던 주유소들도 앞으론 전기차 특성에 맞게 급속하게 업태를 바꿔야 할 것이란 전망이다. 나아가선 완성차업계 뿐 아니라 석유화학 산업의 패러다임 시프트까지 유도할 것이라 예측도 나오고 있다.

이미 적지않은 전문가들은 전기차와 수소차 시대를 위한 다양한 인프라와 연관된 시장을 크게 키워나가는게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광역 충전 네트워크는 물론, 배터리와 칩 등 첨단 부품산업, 지금의 ‘카센터’를 대체할 만한 전기차 AS나 정비와 관련된 산업 등이 그런 사례다. 그래서 앞서 P씨는 “이번 바이든의 폭탄선언은 우리로선 자칫 재앙으로 가느냐, 아니면 새로운 전기차나 수소차 시대를 앞서 열어 또 다른 도약을 하느냐 하는 갈림길”이라고 했다. 많은 업계 전문가들도 대체로 이런 시각을 공유하며 ‘바이든 선언’ 이후 예상되는 국내외 완성차업계의 대처 방식과 행로를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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