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기’와 투기가 기승을 떨어설까. 자본시장의 이성을 확신하는 분석가들일수록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혐오의 농도가 짙다. 최근에도 자본시장연구원은 지난 8년 동안 세계 암호화폐 거래소 40%가 등록 폐지되었고, 그 중 90%가 3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고 경고를 날렸다. 나름대로 공을 들인 도식과 계량화를 통해 이 단체가 하고픈 말은 결국 “위험하니 섣불리 뛰어들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암호화폐(cryptocurrency)’가 아니라 ‘가상자산(virtual asset)’이라고 해야 맞다고 해 해석의 여지를 남기기도 했다.

정작 눈길을 끄는 건 바로 그 대목이다. 이 단체는 “화폐나 통화의 기능을 수행하는 가상화폐, 암호통화, 디지털통화는 존재하지 않는다”며 암호화폐 대신 가상자산으로 부를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그 취지가 무엇이든, 이는 단순한 호칭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작게는 화폐의 역할과 기능, 크게는 온․오프라인을 초월해야 할 디지털 문명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할지에까지 비화되는 것이다. 애초 암호, 화폐, 가상, 그리고 자산, 이 네 가지 단어는 블록체인과 화폐시장은 물론,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까지 유발하는 키워드다. 특히 ‘가상(현실)’이란 용어가 그렇다. ‘물리적 실존만이 타당한 실존이 아닐 수도 있고, 지각되는 눈앞의 대상 너머를 진술할 수도 있다’는 현상학적 추론을 디지털 기술로 치환한 것이 ‘가상’ 내지 ‘가상현실’이다.

사실 ‘가상’이란 말에는 ‘현실’을 옹위하는 다소 교조적인 경멸과 냉소가 배어있다. 지금의 비트코인 광풍이 그렇듯이, 그런 시선은 암호화폐 시장 참여자들이 자초한 바도 크다. 현재의 시장 생태계는 블록체인 본연의 실체에는 관심없다. 그저 잘하면 떼돈을 거머쥘 수도 있다는, 맹랑하지만 절박한 희망사항만 가득하다. 이런 마당에 분산네트워크 본연의 가치와, 현실보다 더 나은 현실을 위한 디지털 네트워크에 대한 담론은 눈에 들어올 리가 없다. 그래서 수리와 객관화의 달인들인 애널리스트들에겐 시장 자체가 ‘가상’의 허구로 보일 법도 하다.

그러나 ‘가상화폐’ 혹은 ‘가상자산’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논지는 수긍하기 어렵다. 사이버 세계일지언정, 디지털 공간에서 소스코드를 매개로 교환가치와 자산축적의 기능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암호화폐’라고 해야 옳다. VR과 온라인을 통한 정치, 경제, 사회적 행위를 모조리 ‘허구적 가상’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다. 참여자들의 실물에 대한 욕구가 분산기장을 통해 인증되고 약속되면서 효용과 만족을 구하는 것을 두고 허황된 ‘가상’으로 폄하할 수는 없다. 그저 치열하고 전투적인 현실의 경제표지로서 ‘암호화’된 화폐라고 해야 맞다.

‘화폐가 아니다’란 주장도 반론의 여지가 크다. 비(非)시장에서 블록체인 시티즌은 나름의 ‘삶의 방식’을 제품과 서비스 형태로 교환하고, 그 과정에서 채굴이나 선채굴, 비채굴 방식으로 ‘약속’한 특정 교환가치를 암호화된 그 무엇으로 표출하였다. 그게 ‘화폐’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암호화폐 출현을 계기로, 인간욕구와 한정된 자원을 조화시킬 화폐 본연의 임무에 대해 고민은 할지언정, 아예 ‘화폐가 아니다’라고 하는 건 너무 멀리 나간 주장이다. 오히려 암호화폐는 화폐로서 순기능도 많다. 독점적 매개자 없이 참여자 모두가 분산된 거래원장을 공유하며, 감시와 승인 하에 안전한 거래를 이어가는 선한 작동 원리가 그런 것들이다.

물론 암호화폐에 대한 맹목적 예찬은 금물이다. 작금의 롤러코스터 시장은 분명 비정상이다. 투기를 억제하고, 선의의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 대응이 시급하다는데엔 어떤 이견도 있을 수 없다. 다만 ‘가상화폐’가 아닌 ‘암호화폐’로서 그 팩트와 디테일을 정확히 알아내는게 중요하다. 하긴 암호화폐를 극도로 경계한 앞서의 자본시장연구원도 “투자를 하지말라”가 아니라 “섣불리 뛰어들지 말라”고 했다. 그들도 결론은 암호화폐 폐기 아닌 ‘역할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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