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카페글, ‘지식인’ 등 게시글 신속 삭제, 관련 업체들 ‘성황’ 이뤄

속칭 ‘디지털장의사’가 새삼 각광받고 있다. 정확한 명칭은 ‘디지털 삭제 전문가’인 이 직업은 지난 주 정부가 공인 사설탐정 등과 함께 공적 의미를 갖는 직업으로 하반기 중 법률로 규정키로 함으로써 유망직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새삼 주목을 받은 디지털장의사는 인터넷상의 각종 게시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국내외 포털사이트 게시물이나, SNS 게시물 등을 삭제해준다.

2개월 과정 삭제전문가 양성 과정도 인기
미국 등지에선 이미 ‘디지털 스크러버’(Digital scrubber)라는 이름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T기술가 디지털 문명이 발달할수록 각종 디지털 발자국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문제 있는 디지털 흔적을 지우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이같은 추세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직종이 바로 디지털장의사인 셈이다. 국내에서도 일정 비용을 받고 블로그, 카페글, ‘지식인’ 등을 비롯한 각종 게시글을 삭제해주는 업체들이 성행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부터 경기문화재단 등에선 2개월 과정의 ‘사이버기록삭제전문가’ 과정을 운영하는 등 인기 취․창업 직종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은 디지털정보 삭제 전문업체인 T사의 블로그 이미지를 캡처한 것임. 

오랜 논란 끝, ‘법제화’ 가능성 커져
디지털 장의사는 본인이나 유족의 의뢰에 따라 이용자가 남긴 인터넷 계정이나 게시물, 사진 등을 삭제하는 직업이다. 이에 관한 사회적 필요성이 높아짐에서 따라 관련 법안이 19대 국회에서 발의됐다. 하지만 디지털 장의사와 음란물 유통업체 간 카르텔이 형성될 우려나, 음란물 삭제 요청에 대해 부당이익을 편취할 가능성이 높다는 등의 부정적 시각으로 인해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1대 국회에 들어와서 정부는 디지털 장의사 등 새 직업에 따른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할 보완대책을 연구한 뒤 새로 관련 법안을 만들기로 했다.

디지털장의사 업체는 고객이 게시물 삭제를 요청하면 일단 리스트를 작성한다. 삭제할 내용의 범위와 삭제 건수에 따라 삭제 소요시간과 삭제를 위한 비용을 계산한다. 고객과 비용에 대한 합의를 한 후엔 삭제를 시작하는데, 긴급을 요하는 경우는 삭제 전담팀이 좀더 압축적인 삭제 작업을 하기도 한다. 이들 업체에 따르면 고객들이 긴급히 삭제를 요청해온 인터넷 기록은 ‘n번방’ 사건처럼 사생활과 관련된 불법 유출 동영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인 외에 기업․단체 등도 주요 고객
이는 또 개인 뿐 아니라, 각종 조직․단체나 기업들도 디지털정보 삭제 시장의 주요 고객이다  IT 마케팅애널리틱스 노하우로 신속하게 정보를 삭제할 수 있다는 디지털장의업체인 T사는 특히 “기업의 경우도 정보 삭제를 요청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회사측은 “기업의 경우 개인과는 또 다르게, 주로 허위사실에 대한 삭제나 저작권의 침해 기록물의 삭제 등에 대한 요청이 많다”면서 “이는 아무래도 대외적인 기업 이미지나 평판을 관리하는 측면에서 불리한 정보를 삭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구글, 유럽서 ‘잊혀질 권리’ 처음 선봬
애초 디지털장의사는 약 5년 전 유럽에서 디지털 정보 삭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그 당위성이 인정되기 시작했다. 당시 구글은 유럽 전역에서 ‘잊혀질 권리’를 위한 서비스를 시작한 바 있다. 구글은 유럽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와 관련있는 검색 링크를 삭제해달라는 사용자들의 요청을 받기 시작했다. 이 같은 결정은 유럽연합 최고법원의 판결에 따른 것이다. 법원은 자신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는 검색 결과를 삭제하고 싶은 사용자들은 검색 엔진 운영업체에 직접 이를 요구해 ‘잊혀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이에 구글은 법원의 판결을 수용해 소비자들에게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는 양식을 배포하기 시작했다. 사용자들은 삭제하고 싶은 내용이 들어있는 링크 URL과, 삭제할 페이지와 사용자의 연관성, 그리고 해당 검색 결과가 왜 “관련이 없거나, 오래되거나, 적절하지 않은지”를 설명한 내용을 적도록 한 양식이다.

당시 유럽연합 최고법원의 판결을 두고 일각에선 표현의 자유와 대중의 알권리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일기도 했다. 즉, 정부나 권력자에 대한 비판과 견제를 위한 게시물까지 없애려는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구글은 “우리는 개인의 요구를 평가하고, 개인정보 보호 권리와 대중의 알권리, 정보 배포 등 3가지 요소의 균형을 맞추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도 구글의 이런 입장은 각국에서 디지털정보 삭제의 사회적 정당성을 설명하는 ‘교범’처럼 여겨지고 있다. 

디지털 성범죄 기승 속 인기직종으로 주목
국내에서도 지난 2016년 처음으로 강원도청이 홈페이지 게시판에 ‘잊혀질 권리’를 명시함으로써 사회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당시 강원도청은 잊혀질 권리, 즉 디지털 소멸  솔루션인 DAS(Digital Aging System)를 선보였다. 또 DAS를 업로더할 수 함으로써 ‘잊혀질 권리’를 누릴 수 있게한 특허 기술을 바탕으로 한 솔루션을 배포했다. DAS 업로더는 네티즌 스스로가 인터넷 게시글이나 파일 등에 데이터 소멸시한을 설정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네티즌의 잊혀질 권리를 지켜준다. 이같은 강원도청의 시도 이후 점차 디지털장의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높아졌고, 최근 일련의 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앞으로 더욱 그 중요성이 강조되는 가운데, 차세대의 대표적인 유망직업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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