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생활화, 스타트업 천국, 전국민 ‘IT전문화’, 전자투표․전자신분증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IT스타트업의 요람인 ‘사이언스 파크 테크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의 IT스타트업의 요람인 ‘사이언스 파크 테크놀’

진정한 세계 최고의 IT강국은 어딜까. 세계적인 IT강국이라는 한국? 디지털 기술의 본산인 미국 아니면 유럽? 미국을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중국? 그러나 일부만 맞다. IT와 디지털기술이 개인의 일자리나 삶의 만족도, 나아가선 국민의 행복에 얼마 만큼 실질적인 영향을 주는가 하는 측면에선 이들 나라는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최고의 IT강국은 다름 아닌 북유럽 발트해 연안의 작은 나라 에스토니아다. 한때 소연방의 일부였던 이 나라는 남한의 절반 크기에다 인구 130만에 불과한 소국이지만, 이미 1990년대 이후 알게 모르게 지상 최고의 디지털 왕국으로 성장해왔다. 

국내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국내 IT업계가 이 나라를 주목하게 된 건 남다른 블록체인 기술이 발단이 되었다. 에스토니아는 이미 블록체인이 전 국민에게 생활화되어 있고, 정부와 지자체, 기업, 개인이 모두 이를 실생활에서 응용하고 있다. 이번 ‘코로나19’에서도 유감없이 그 유용성이 입증되면서 뒤늦게 이 나라의 IT문명에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특히 민감한 유전자 데이터를 국민들로부터 제공받아 블록체인으로 보존, 관리하는 등 만반의 IT방역시스템을 구축한 사실이 국내 전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기도 했다. 

초등학교부터 코딩교육, 전자 주민등록 시스템 도입
애초 유럽 변방의 빈국이었던 에스토니아는 그야말로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소련연방이 해체되고 독립된 직후 시급하게 먹거리를 마련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중요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1990년대 말부터 IT 혁명을 꿈꾸었다. 이까지는 IMF외환위기 직후 IT산업에 주력해 IT강국의 초석을 쌓은 한국의 김대중 정부와도 닮았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그러나 더욱 진취적이었다. IT의 중요성을 미리 간파해, 학생들에게 코딩교육을 시키고 전자 주민등록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최첨단 국가 신분증 시스템을 도입해 에스토니아 국민들은 디지털 서명을 통한 전자 신분증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엔 전 국민이 온라인으로 세금을 내고, 투표를 하고, 인터넷 뱅킹을 하거나 자신들의 건강 진료 기록을 열람한다. 공공 부문에선 세계 최초로 정부를 IT화 했고, 2007년에는 다시 한 번 세계 최초로 전자 투표를, 그리고 2008년에도 역시 세계 최초로 정부 기관에서 블록체인을 도입했다.

소련이 해체된 후 자체적으론 독재적 중앙집권체제 등이 없다보니 에스토니아는 블록체인의 기본 구도인 탈 중심화(decentraization)라는 핵심 원칙을 기반으로 모든 시스템을 설계할 수 있었다. 모든 정부 부처나 기업들이 모든 정보를 저장하는 데이터베이스를 중앙에 두지 않고, 상호 연결성과 무결성을 가진 자체적인 시스템을 만들도록 했던 것이다. 이런 노력이 시작되면서 디지털 사회를 향한 에스토니아의 눈부신 번영으로의 20년 대장정은 시작되었다. 1990년대에 정부는 모든 학급의 교실에 컴퓨터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 약속과 함께 교육 부분에서 파격적인 개혁이 이뤄졌고, 2000년 이후엔 모든 학교에 인터넷이 보급되었다. 정부는 또 성인 인구의 10%에게 무료로 컴퓨터 사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런 노력 덕분에 현재 에스토니아의 컴맹률은 전 인구의 5% 미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수도 탈린, ‘세계 스타트업의 1번지’
오늘날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은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에 비견될 정도로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생겨나는 창업허브로 유명하다. 에스토니아는 전 국민이 컴퓨터와 코딩, AI 와 빅데이터 관련 기술이 낯설지 않고, 이를 뒷받침해주는 인프라 또한 충분해 무모한 도전을 하는 스타트업이 생겨나기엔 딱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하물며 법인세율도 ‘제로’이다보니 우버나 세계 각국의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이 작은 나라의 도시에 자리를 잡고 있다.
그렇다보니 에스토니아는 기업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비상장 기업인 ‘테크 유니콘’들의 천국으로 알려져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결제 시스템 기업인 트랜스퍼 와이즈나 우버의 경쟁사인 택시파이 등이 이곳에 있다. 또 MS나 구글 등도 이곳에서 기술 시현을 한 후 제품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이 나라는 특히 세계 블록체인 스타트업들의 1번지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에 거주하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전자 시민권 시스템 덕분이기도 하다. 국적에 관계없이 자국의 전자 시민권을 발급하는 이-레지던시(e-Residency)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창업지망생들이나 기업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그렇다보니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인구 대비 6배나 많은 스타트업들이 붐비고 있다. 서울에서도 개최된 적이 있는 ‘글로벌 리더스 포럼’에 의하면 2018년 기준 에스토니아의 GDP 성장률은 4.9%에 달했다. 이는 EU(유럽 연합) 회원국의 평균 경제성장률인 2.0%의 두배가 넘는다. 

한국 등 세계 각국서 연수체험단 몰려
그 때문에 IT강국이라는 우리 업계에서도 최근 에스토니아와 핀란드 현지 연수와 견학을 가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에스토니아의 탈린이 IT와 스타트업의 천국으로 알려지면서 IT창업을 꿈꾸는 젊은층의 관심이 높다. 현지 연수를 주선하고 있는 지비산업정보원(주)에 따르면 이 나라는 역시 IT문명에 관한 한 세계 최고의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할 만하다.
에스토니아는 우선 인터넷 속도가 세계 1위다. ‘빨리빨리’ 문화의 한국보다 속도가 빠르다.  창업절차엔 5분 밖에 안 걸리고, 세계 최초의 전자투표로 IT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있으며, 각급 학교 코딩교육을 통해 전국민의 IT전문화를 지향하고 있다.
국가 도메인 ‘ee’는 어디서든 무료 와이파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법률로 정했다. 수도 탈린시청의 SW나, IT시스템, 코딩 수준, 메이커 운영 수준은 세계 공공기관 중 최고 수준이다. 특히 탈린 사이언스 파크 테크놀, 스타트업 문화의 온상인 ‘리프트 99’, ‘에스푸 이노베이션 가든’ 등은 에스토니아 IT기술과 산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명소로 꼽힌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연수단도 으레 이들 지역을 찾곤 한다.

사이언스 파크, ‘리프트99’ 등 세계적 IT산업 명소
지비산업정보원(주) 연수 프로그램에 의하면 탈린 사이언스 파크 테크놀은 북유럽 최고의 IT, 스타트업 클러스터로 알려져있다. 이곳에선 창업에 단 5분이면 되고, 전체 입주 스타트업들이 유기적인 네크워크로 엮여져있다. 이 나라 IT허브로서 150여 개 이상의 기술기업, 탈린 기술대학, IT 관련 대학 등이 자리하고 있는 북유럽 IT의 산실이라고 할 만한 곳이다. 또 180개 이상의 기업과 160개 이상의 비즈니스 서비스 업체가 입주해 있다. 창업부터 인큐베이팅을 지원하는 수 많은 신생기업이 있고, IT관련 연구개발 센터 5개와 실험실, 레저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다. 
‘리프트 99(Lift 99)’는 말 그대로 스타트업의 성장을 위한 부양을 위한 곳이다. 코워킹 스페이스, 즉 협업을 통한 에스토니아식 스타트업 문화가 발달한 곳으로 신생 기업, 크리에이티브 팀 및 프리랜서를 위한 공동 작업 공간이 있고, 최상위 워크스테이션 등 최적의 연구와 기업 환경을 겸비하고 있다. 이런 곳에서 미약한 출발을 한 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케이스도 많다. 택시 공유서비스 애플리케이션인 ‘Taxify’, Peer-to-peer 기술베이스 무료통화 애플리케이션인 ‘Skype, 전자송금서비스 ’TransferWise‘ 등이 대표적이다.

북유럽 최고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시스템을 갖추고, 성공할 때까지 전문가 그룹이 후원하는 요람과 같은 곳도 있다. 유명한 테크놀로지 비즈니스 센터 중 하나인 ‘테크놀 사이언스 파크’(Tehnopol Science Park)가 그곳이다. 이곳 창업인큐베이터엔 수 많은 창업 기업이 위치하고 있고, 여러 개의 과학 R&D 센터, 실험실, 레저 공간 등이 있다. 이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는 비즈니스 전문가, 국제적 멘토, 투자자, 시설 등과 연계할 수 있는 허브이며, 입주업체들은 비즈니스 모델, 마케팅 전략, 투자유치 등의 도움을 받는다. 

정부의 과감한 정책, 국민적 신뢰의 결실
에스토니아의 성공과 번영은 정부의 과감한 정책과 국민적 신뢰가 큰 밑거름이 되었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IT강국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폈던 루마스 헨드릭 일베스 전 에스토니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서울에서 열린 ‘글로벌 리더스 포럼’에서 자국의 성공 배경을 들려주기도 했다. 당시 그는 “에스토니아의 디지털 사회는 국민과 정부 기관, 민간 기업들 사이에 신뢰가 가장 큰 동력이었다. 신뢰는 기술적인 문제와는 관계없어 보이지만, 사실상 기술을 창조하는 마음가짐과 문화를 만들어낸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같은 에스토니아의 사례는 디지털 기술의 숙성과 4차산업혁명의 올바른 추진 방향 등을 두고 고민하는 세계 각국의 기업과 정부의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김홍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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