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운용 SW 등 고학력 전문직 중심, ‘노동시장 고도화’ 예상
흔히 로봇 자동화는 일자리를 크게 줄일 것으로 예측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란 반론도 만만찮다. 로봇 자동화가 완수될 경우 비숙련 노동력의 대거 해고 사태 등 노동대체효과가 매우 클 것이라는게 일반의 상식이다. 그러나 로봇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AI나 머신러닝, IoT 등의 기술을 이에 접목하거나 융합해 응용하기 위한 새로운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노동연구원, 현대경제연구원, KT경제연구소 등 관련 기관들의 조사, 분석에서도 이와 비슷한 분석과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오히려 로봇 자동화는 로봇 시스템에 걸맞은 ICT 역량을 갖춘 전문성을 띤 고학력 일자리를 크게 늘리는 ‘노동시장 고도화’를 기할 수 있다는 주장이 곁들여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초래되는 비숙련 일자리 감소를 보완할 별도의 지원책이나 재교육 등의 대안도 물론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비숙련 노동력 감소’에 대한 대안도 필요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조업에서 로봇을 도입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는 제조업 분야에 국한해서 본다면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고 광범위하게 로봇을 도입, 운용하고 있다. 국제로봇협회에 따르면 2017년 기준으로 제조업 작업자 1만 명 당 로봇 대수 통계에서 710대에 달한다. 그 동안 가장 많이 로봇을 사용해왔던 싱가포르도 670대에 그쳤고, 제조업 강국이라는 독일이 320대, 일본이 310대, 미국이 200대에 불과하다. 국내 제조업 내에서도 특히 전기·전자 업종과 자동차 업종에서 가장 많이 로봇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로봇 강국의 현실에서 로봇이 도입된 현장에 고학력 청년층에 적합한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생겨 청년층 실업 해소 등의 효과도 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로봇 도입으로 인해 작업 현장이 고도로 무인화됨에 따라 대규모 해고 및 실직 사태가 발생할 우려도 크다. 일단 고용 측면에서는 증가와 감소 효과 모두 예상되며, 전체 고용시장 확장을 위한 무역수지 개선이나 대체 산업 활성화 등의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전문가들은 로봇 도입은 고용을 늘리는 효과도 있고 감소시키는 효과도 있으므로, 이런 양면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로봇 도입은 불량률 저하와 품질 향상 등을 통해 기업 경쟁력을 높이고 매출을 늘려 생산 작업 현장 등의 일자리를 늘리는 노동 보완 효과가 있다.
반대로 로봇 도입으로 자동화된 공정의 노동자들이 해고되거나 보다 단순한 직무로 배치되며, 때론 기술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경우도 생기는 노동 대체 효과도 클 것이란 전망이다. 그래서 국내 로봇 산업이 활성화되어 기존에 수입에 의존했던 고부가가치 로봇을 국내에서 생산하게 되면 관련된 공정의일자리가 늘어나는 노동 측면에서의 수입 대체 효과에 대한 기대도 있다.
‘중소·중견 기업, 로봇 도입 후 일자리 변화없어’
노동연구원 등의 분석에 의하면 로봇을 도입한 초기엔 급격한 생산성 향상과 로봇을 운용할 인력에 대한 수요로 인해 일자리가 늘어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생산성이 늘어나고, 이에 맞게 사람을 줄이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로봇 집약도가 높은 전기·전자 및 자동차 업종만을 분석한 결과 이런 현상이 특히 두드러졌다. 로봇 도입에 따른 고용 변화 양상은 비슷하게 나타났으나, 많은 로봇 운용 경험 등으로 해당 업종의 기업들은 로봇 도입에 대해서 보다 빠르게 대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로봇을 많이 도입, 운용하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등 고학력 고숙련 전문 직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역시 전기·전자 및 자동차 업종에서 더욱 크게 확산되었다. 즉, 로봇 운용 경험이 축적될수록 로봇과 관련된 직군의 일자리가 오히려 늘어나는 것이다. 다른 제조업에서도 로봇을 많이 도입할수록, 운용 등과 관련된 SW 관련 인력에 대한 수요는 크게 늘어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노동연구원은 “중소·중견 기업에서 로봇 도입 이후 고용원 규모가 확연히 줄어드는 것을 확인치 못했으며, 통계적으로 도입 이전과 변화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노동시간으로 봤을 때도 적어도 중소·중견 기업에서는 로봇 도입 이후에도 근로시간이 뚜렷이 감소하진 않았다는 설명이다. 로봇 도입 이후 로봇과 관련된 직무의 내용과 숙련 요건은 한층 단순해졌으나, 이를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잘 다루어야 하는 전문인력에 대한 수요는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해당 직군의 학력 요건은 높아졌고, 결국 전문성이 있는 고학력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노동시장 고도화’를 유도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물론 로봇 보급으로 인한 저숙련 작업자의 일자리는 크게 감소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기술에 적응치 못하고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는 작업자들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봇 산업 활성화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에서의 수입 대체 효과로 노동시장 구조를 고도화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도 많다. 이에 국내 로봇 산업을 육성하고 수입 로봇을 국산화함으로써 로봇 산업 자체의 시장 규모를 키우는 한편, 노동집약적인 로봇 제작업종을 활성화해 이 분야의 고용 창출 효과도 극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관련 기관과 전문가들에게서 나오고 있다.
류정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