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실효성 있을까?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을 협박해 성착취물을 제작한 뒤 텔레그램을 통해 유포한 ‘n번방사건이 파문을 던졌다. 정부는 대책을 내놨고 국회는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는 남아있고 논란은 여전하다.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

국회는 디지털 성범죄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다. 불법 성적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한 사람은 물론 시청한 사람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신설했다.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촬영물을 이용해 협박한 자는 1년 이상의 징역에, 강요한 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현행법은 배포·판매만 처벌 대상이다.

특히 본인이 본인의 신체를 촬영한 영상물을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유포한 경우도 성폭력으로 처벌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기존에는 N번방 사례처럼 피해자가 직접 영상을 찍은 경우 타인이 이를 유포해도 처벌할 규정이 없었다.

정보 기술 업계도 n번방 재발 방지를 위한 협력에 나섰다. 특정 콘텐츠를 거름망으로 걸러내는 필터링 등의 기술적 조치가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을 이용한 필터링 기술도 개발 중이다. 네이버는 음란물 필터링 AI 기술을 개발해 부적절한 내용을 담은 이미지나 영상을 실시간으로 감지해 검색 노출을 막는다. 필터링 대상이 음란물의 특징과 얼마나 유사한지에 따라 음란물 지수가 측정되고, 이 지수를 기준으로 필터링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다크코인인 모네로 거래를 종료하고 나섰다. 암호화폐가 범죄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하지만 기술적 조치로 n번방 재발을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음란물을 100% 막는 기술은 없다. 근본적으로는 국내에서 디지털 성착취 범죄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더라도 이것이 해외 기업에 적용되지 않을 경우 소용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

 

보안성과 범죄

n번방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이토록 큰 범위로,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것은 높은 보안성을 제공하는 텔레그램의 특성 때문이다일반적으로 메신저를 이용할 경우, 메신저의 사용 내역은 발신자 본인의 디바이스와 메신저의 서버, 그리고 수신자의 디바이스에 모두 남게 된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본인의 디바이스는 물론 수신자의 디바이스에 남은 본인이 보낸 메시지도 삭제할 수 있다.

본래 러시아 기업이었던 텔레그램은 보안에 가장 큰 방점을 둔 기업이다. 특히 비밀채팅방에는 한층 더 보안성이 강화된다. 별도로 설정된 비밀번호를 통해 접속할 수 있는 채팅방은 서로 주고받은 대화를 일정 시간이 초과될 경우 자동 삭제·암호화되는 기능을 제공한다.

안전성을 위해 암호화폐를 이용하는 것도 일반 자금흐름보다 추적이 어려운 이유다. 물론 n번방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텔레그램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사이버범죄자들이 이번 사건으로 표면화된 텔레그램 대신 다른 보안성이 강한 메신저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고 있기도 하다. 근본적인 문제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익명성이 악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 방지법 논란

정부가 지난 23일 발표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에 따르면 n번방 사태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했을 때 이를 방관하기만 하고 선제적 조치를 취하지 않는 인터넷 플랫폼 사업자는 앞으로 정부가 '징벌적 과징금'을 부과한다. 관련 법도 플랫폼 사업자에게 의무를 강제하는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업계가 꼽는 첫 번째 문제점은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다. 통신비밀보호법은 범죄 수사를 제외하고는 전기통신 감청 또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제공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디지털 성범죄물 유통 방지를 위한 삭제·필터링 등 기술적 조치를 모든 부가통신사업자에 의무화하고 있지만 사업자가 이용자 통신 정보를 확인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통신비밀보호법에 위반되기 때문이다.

기술적 이슈도 있다. 포털과 SNS, 메신저 서비스 기업 등은 자사 서비스가 웹하드와는 다르기 때문에 필터링 같은 기술적 조치의무 적용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필터링 효과에 의문점도 제기된다. 서비스 다양성과 이용자 자유를 침해할 소지도 있다텔레그램같이 본사가 해외에 있는 기업에 국내법을 적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문제도 있다. 텔레그램의 경우 서버와 본사 위치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역외조항이 시행되더라도 실질적으로 규제할 수단이 없다. 결국 국내외 기업 간 역차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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