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만 한서대 교수
박경만 한서대 교수

삼성 ‘갤럭시Z플립 톰브라운’가 출시되는 순간, 접속자가 몰리면서 사이트가 마비되었고, 순식간에 완판되었다. 갤럭시S20울트라는 “달 표면까지 보인다”는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가히 삼성전자의 위세가 돋보였던 지난 주였다. 이 즈음 삼성과 애플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지고 잊혀진게 있다. 한 시절 최고의 영화를 누렸던 노키아다. 지금의 젊은층 소비자들에겐 잊혀진 존재가 되었을지 모르나, 노키아는 한때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하며, 극강(極强)의 운영체제 ‘심비안’으로 맹위를 떨쳤던 존재다. 폴더폰이든, 슬라이드폰이든, 지금의 스마트폰 시대도 따지고 보면 ‘심비안’에서 싹튼 것이다. 가격도 적당했고 내구성도 뛰어났던 ‘Nokia N9’(루미아)는 스마트폰 디자인의 한 획을 그었다. 노키아는 그렇게 유럽과 아시아 휴대폰 시장에서 최고의 베스트셀러로 군림했고, 핀란드의 국가적 아이콘으로 행세했다. 불과 10여 년 전의 얘기다. 그러나 노키아의 전성기는 딱 그 지점까지였다.

노키아는 심비안에 이은 운영체제 마에모를 만들었지만, 하필이면 사양길의 인텔과 손을 잡고 새로운 운영체제 ‘미고’로 갈아탔다. 그 후 루미아 브랜드로 윈도우폰을 만들면서 또 시행착오를 거듭하다가, 2013년에는 아예 스마트폰 제조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팔아버린다. 더 이상 노키아 이름으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게 되었고, 노키아 스마트폰은 그렇게 종언을 고한 것이다. 그런 노키아는 사실 기술과 제조 능력이 뛰어났다. ‘세계 최초’나 ‘최고’의 수사가 덧붙여진 온갖 기술과 제품을 생산해냈고, 특허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훌륭한 기업이 왜 사라졌을까? 여러 원인을 꼽을 수 있겠지만, 결정적인 건 시장과 소비자, 나아가선 시대와의 공감 부족이었다.

많은 경제 주체, 특히 기업들은 흔히 위기에 처하면 이노베이션을 추구한다. 노키아도 그랬다. 그러나 ‘무늬만’의 혁신일 뿐이었다. 실상은 자신들의 감정과 욕구에 충실한 나머지, 자신들이 확신하는 제품만 개발하고 상품화했다. 인텔과 손잡은 운영체제 ‘미고’도, 마이크로소프트와 연계된 윈도우폰에도, 결코 소비자의 욕망을 읽어내려는 성의나 의지가 결여되었다. 그저 소비자를 구매자로만 소비할 뿐이었다. 공감보다는 자아 도취에 빠졌다. 심하게 말하면 그들 자신조차 별로 사고픈 생각이 없는 물건을 만들어내곤 “이거야말로 고객들이 원하는 것”이라고 착각했거나, 소비자의 감수성엔 무지한채 모순된 자족감에만 빠졌을지도 모른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한 디지털 시대의 텍스트를 읽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는 결국 리더십의 상실, 사업부 간의 견고한 칸막이와 갈등을 야기했고, 의사결정은 거대하고 복잡하며 정체되었다. 비록 애플 아이폰이라는 외부의 강적 탓도 있겠지만, 화려했던 심비안 시절부터 이미 노키아 스마트폰은 금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품 라인이 늘어나기만 했을뿐, 소수의 전략적 제품에 집중함으로써 세계적 명품을 만드는데도 실패했다. 비록 지금도 ‘HMD글로벌’이란 회사가 노키아 브랜드의 스마트폰을 내놓곤 있지만 실상은 ‘노키아’가 아니다. 브랜드만 빌려준 것이다. MS와 HMD의 계약에 따라 적어도 2024년까지는 제대로 된 노키아 스마트폰이 못 나온다. 아마도 영영 못 나올 가능성이 크다.

많은 미래학자들은 기업활동에 있어서도 “생산보단 마케팅을, 판매보단 관계 중심으로 궤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관계’는 곧 소비의 결과로 얻는 고객의 아이디어, 경험과의 관계다. 다시 말해 소통과 공감능력이다. 기업으로선 고객과의 항구적 관계를 유지하며, 갓난아기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한 인간의 평생 라이프 스타일을 상품화하는 관계기술(R-기술)을 구사해야 한다. 공감은 사회와 공동체, 그리고 미래 기업의 생존 조건이다. 노키아가 부족했던 건, 바로 소비자 내지 고객과 ‘마음의 눈’(mindsight)을 공유하는 능력이었다. 그런 공감부재의 편협함으로는 기왕의 기업 역량을 하나로 집중해낼 수 없었고, 결국은 망할 수 밖에 없다. 2020년 애플과 삼성의 화려한 무대 뒤엔 그런 노키아의 씁쓸한 추억이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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