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시행 1년을 앞두고, AI·키오스크·스마트 가전 접근성 기준 마련 논의
고령층·취약계층 디지털 격차 해소, 교육·대체 수단 확대 계획 포함
기업·산업계 의견 적극 반영, 앱·웹·생활 단말기 재설계 필요성 대두

사람들이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모습.(사진:로이터 라이센스)
사람들이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모습.(사진:로이터 라이센스)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AI 기술이 생활 곳곳에 스며들면서, 개인별 또는 계층 간의 디지털 격차도 커지고 있다. 모바일 중심으로 행정·금융 서비스가 재편된 뒤,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업무도 스스로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곤 한다.

'디지털포용법'이 내년 시행을 앞두고 관심을 끄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디지털 기술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 디지털 격차를 줄이겠다는 목표다.

디지털포용법은 작년에 처음 마련된 법으로, 누구나 디지털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내용이 핵심이다. 단순한 스마트폰 활용 교육을 넘어서, AI 기반 서비스 사용 환경까지 폭넓게 지원하는 방향으로 틀이 잡혔다. 고령층과 장애인처럼 기술에 접근하기 어려운 계층을 염두에 둔 조항도 포함돼 있다. 온라인으로만 제공되는 행정 서비스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특정 계층만 따라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고령층·저소득층 격차 여전… AI 서비스 경험에서 가장 크게 벌어져

디지털 역량 전반은 개선되고 있지만, 계층 간 차이가 줄지 않는다는 지적은 꾸준히 나온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조사에서도 취약계층의 디지털 역량이 조금씩 높아지는 흐름은 확인됐지만, 고령층과 저소득층은 여전히 다른 계층과의 간격이 크게 벌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AI 서비스 경험에서는 차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전체 국민의 절반 이상이 AI 기반 서비스를 경험한 반면, 저소득층은 30%대에 머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AI 챗봇, 자동 응답 시스템, 모바일 기반 민원 서비스가 빠르게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런 격차는 단순한 불편을 넘어 서비스 이용 자체가 막히는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제는 기존 정보 격차 개념만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AI 시대에 맞는 새로운 디지털 포용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산업 전략과도 연결… “AI 경쟁력은 사용자가 만든다”

정부는 디지털포용법을 교육·복지 정책이 아니라 산업 전략의 일부로 보고 있다. AI 국가 전략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개발만이 아니라 이를 실제로 쓰는 ‘사용자 기반’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일정 수준 이상의 이용자가 있어야 새로운 서비스가 시장에 자리 잡을 수 있고, 기술 기업들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결국 디지털 접근성이 산업 생태계 확장에도 영향을 준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정부는 시행령 논의에서 디지털 교육 체계 정비를 주요 과제로 두고 있다. 생애 주기별 교육 프로그램 확대, 지역 간 격차 완화, 고령층과 장애인을 위한 대체 수단 마련 등이 대표적으로 논의되는 항목이다.

단순히 화면을 읽어주는 기능을 추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 바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접근성을 개선하자는 의견이 많다.

기업들도 법 시행 이후 서비스 전반을 다시 점검할 가능성이 크다. 앱과 웹 서비스뿐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주 마주치는 키오스크나 스마트 가전까지 접근성 기준을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화면 구성 단순화, 음성 안내 강화, 조작 단계 축소 등이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개선 방향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 있지만, 접근성 강화가 새로운 사용자층을 확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행령 세부 기준 조율 중… 업계·학계 의견 반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디지털포용법 시행령 마련을 위해 공청회를 열고 산업계·학계·시민단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키오스크 접근성 기준을 어디까지 적용할지, 웹·앱 외에 전자출판물이나 스마트 가전을 포함할지 등 세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제품 설계와 운영 방식에 직접 영향을 주는 내용이어서 업계 관심도 높다.

공청회에서는 비영리 기관을 ‘디지털 역량센터’로 지정해 생활 밀착형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주차 정산기처럼 용도가 특수한 단말기에 일반 키오스크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기업 참여를 의무보다는 인센티브 방식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 역시 나왔다.

과기정통부는 이런 의견을 반영해 시행령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법의 취지가 기술 접근성 강화인 만큼, 실제 현장에 맞지 않는 조항이 없도록 조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입법예고 기간에도 온라인 의견 접수가 계속 진행 중이다.

법 시행까지 약 1년이 남은 가운데, 제도적 기반을 갖추는 단계는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있다. 남은 과제는 이를 생활 속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로 이어지게 만드는 일이다. 고령층이나 취약계층이 겪는 불편을 줄이고, 새로운 디지털 환경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교육과 서비스 개선이 병행돼야 한다.

특히 키오스크나 온라인 행정 절차처럼 불편을 자주 마주하는 분야는 실질적인 개선이 없으면 정책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 이후에도 현장 점검과 기관·기업 간 협력이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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