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선순환 의료
[애플경제 서방우 대만특파원] 노년층 치아 재건에 전념하며 ‘인정 많은 치과의사’라 불리는 푸전치과 장줘잉 원장. 그의 의료 철학은 단순히 치아를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치과 치료의 본질은 단순한 수복(修復)이 아니라, 환자의 삶과 자신감을 복원하는 데 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의 손끝에서 회복된 것은 치아뿐만 아니라, 삶을 향한 미소와 존엄이었다.
외과의사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고 자라난 장 원장은 개원 초기에 하루 14시간 이상 진료하며 주 7일을 일에 매진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6일은 진료를 한다. 그의 병원은 화려한 광고보다 환자들의 진심 어린 입소문으로 알려졌다. 치료의 만족이 또 다른 신뢰로 이어진 결과이다.
그는 환자를 마주할 때마다 세심함과 인내심 그리고 책임감을 강조한다. 대만 명문인 타이베이 의과대학 치의학과를 전액 장학생으로 졸업한 그는 학생 시절부터 국제 교류와 연구에 적극적이었다. 전국 우수 청년 대표로 선정되고,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청년 대표로도 활동했다. 이후 국립타이완대학교 임상치의학연구소에 진학해 심미치과 및 보철 분야의 임상과 연구를 병행했다.
또 미국 유수의 치과대학에서 임플란트 과정을 이수하며 그는 국제임플란트치의학회(IDIA)로부터 최고 권위 자격인 ‘Diplomate’ 자격을 부여받으며, 그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모교 타이베이 의대 치의학과의 ‘우수 동문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에게 가장 큰 보람은 상이 아니라, 환자의 미소가 돌아오는 순간이다.
그가 잊지 못하는 환자는 90대의 과일 노점 할머니였다. 심한 치주질환으로 음식을 씹지 못해 치료가 필요했지만, 가족들은 고령과 질환을 이유로 수술을 주저했다.
장 원장은 가족들의 불안을 차분히 해소하며, 세심한 진료 계획 끝에 결국 아흔이 넘은 할머니의 전악(全顎) 재건 치료라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수술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치료 이후, 할머니는 다시 씹을 수 있는 힘을 되찾고 일상의 기쁨을 회복했다. 할머니는 “치과가 이렇게 따뜻할 줄은 몰랐다”며 미소 지었다.
이번 치료는 단순히 구강 기능을 회복한 데 그치지 않았다. 그 과정은 환자가 의료를 신뢰하게 되는 회복의 여정이기도 했다. 할머니는 시장 사람들에게 병원을 추천하고, 자신이 판매하는 과일을 손수 들고 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장 원장은 이 따뜻한 인연을 회상하며, “이런 평생의 신뢰와 진심 어린 감동은 어떤 부나 명예보다 더 소중한 가치입니다.”라고 말한다. 그에게 있어 진료란 단순한 치료 행위가 아니라, 세대를 넘어 마음을 잇는 인간적인 대화이자 따뜻한 교감인 것이다.
장 원장은 대학 시절부터 이미 ‘공감, 봉사’를 몸소 실천해왔다. 그는 정부 인가를 받은 공익 단체 ‘환우 희망회’를 설립하며 젊은 나이에 사회공헌 활동을 시작했다. 특히 그는 팀원들과 함께 무미(無味)의 파스타를 이용해 항암 치료 후 미각을 잃은 암환자의 어려움을 나타낸 영상을 제작해, 일반 대중이 암 환자의 현실을 보다 깊이 이해하도록 이끌었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그가 의료인의 길을 걸으며 세운 철학, 「의술은 덕을 바탕으로, 봉사는 진심으로」의 뿌리가 되었다.
의대 졸업 후, 그는 대도시의 안정된 진료 환경을 뒤로하고 의료 취약 지역으로의 봉사 진료를 택했다. 어린 시절 대만 동부 타이둥(台東)에서 자란 그는 도시와 지방의 의료 격차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윈린(雲林) 마이랴오(麥寮鄉) 지역에서 근무하며, 새벽 첫 고속철을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밤늦게 귀가하는 고된 일상을 이어갔다.
“몇 번이나 막차를 놓쳤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절은 힘들면서도 참 따뜻한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회상한다. 그가 버틸 수 있었던 힘은 환자들의 진심 어린 감사와 의료에 대한 변치 않는 그의 열정이었다. 이후 연수로 봉사 활동이 잠시 중단된 뒤에도, 마이랴오의 환자들의 지속적인 연락은 그의 헌신이 얼마나 깊은 신뢰와 울림으로 이어졌는지 잘 보여준다.
그의 진료실에는 언제나 환자를 향한 세심한 배려와 따뜻한 공감이 흐른다. 한 시골 마을에 사는 이씨 할아버지는 뇌졸중 후 치아가 거의 모두 흔들려, 죽처럼 곱게 갈은 음식만 먹으며 지내고 있었다. 진료할 병원을 찾기 어려웠던 그는 장 원장의 명성을 듣고, 편도 두 시간의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 장 원장은 치료가 가능한 치아를 최대한 보존하면서 효율적인 임플란트 치료를 병행했고,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세밀하게 치료 계획을 세웠다.
몇 달 뒤, 다시 진료실을 찾은 할아버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는 가족들과 정말 오랜만에 제대로 밥 한 끼 했네요. 새로 만든 내 이가 손주 것보다 더 튼튼해요!”
그 순간, 장 원장은 모든 노력이 보상받는 듯한 깊은 감동을 느꼈다.
장 원장은 의료 접근의 경제적·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실천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는 65세 이상 노인과 저소득층 환자를 대상으로 진료 예약비(접수비) 면제 제도를 꾸준히 운영하며, 누구나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다.
또한 초진 환자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의료진이 세심하게 상담하고, 간호 인력이 따뜻한 돌봄을 이어가며 신뢰를 쌓아간다. 덕분에 수년간 치과 치료를 두려워했던 환자들도 이제는 환한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장 원장은 더 나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마음으로, 타오위안(桃園)과 먀오리(苗栗) 두 곳에 푸전(璞真)치과를 설립했다. 두 곳 모두 지역 사회에 뿌리내린 전문 구강의료센터로 자리 잡고 있다.
장줘잉(蔣卓穎) 원장은 단순히 병원을 운영하는 경영자가 아니라, 전문성과 가치의 전승을 사명으로 여기는 리더이다. 그는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의료의 본질적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믿는다. 그래서 우수한 인재를 양성하고, 선의(善意)를 중심으로 한 의료 생태계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장줘잉 원장의 의료 철학은 두 스승에게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치과 인생을 이끌어준 첫 번째 스승은 타이완 웨이청(維成)구강의료그룹의 류싱청(劉興成) 총재로, “좋은 의사가 되라, 유명한 의사가 되지 말라”는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며 의사로서 부모의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 책임감을 심어주었다.
또 다른 스승인 국립타이완대학교 임상치의학연구소의 천민후이(陳敏慧) 소장은 학문적 연구와 전문 기술을 아낌없이 지도하며 그를 임플란트 의학의 길로 이끌었다.
이 두 스승으로부터 이어받은 가르침은 장 원장의 확고한 신념 「의덕(醫德)은 옥과 같고, 의술(醫術)은 금과 같으며, 좋은 사람이 되어야 비로소 참된 의사가 된다」로 이어지고 있다.
그는 팀원들에게 「의료는 단순한 치료가 아니라, 희망을 창조하고 세상을 바꾸는 일」임을 강조하며, 직원 모두가 직접 봉사와 공익 활동에 참여하도록 독려한다. 그의 철학 아래 푸전치과는 ‘선의가 중심이 되는 의료기관’, ‘전문성과 인간미가 공존하는 의료 문화’를 실천하는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장 원장에게 ‘성공’의 의미는 이미 직함이나 수입, 사회적 지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그는 언젠가 인생을 돌아볼 때 이렇게 말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진심으로 내 능력을 다해 많은 사람들의 삶을 도왔다고.”
그가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은 삶의 철학은 명확하다. 「능력은 타인을 위해 쓰일 때 비로소 가치가 있고, 행복은 나눔 속에서 완성된다. 베푸는 삶이 받는 삶보다 더 큰 축복이다.」
사람들이 언젠가 그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그것은 뛰어난 그의 기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수많은 환자들의 고통을 어루만지고, 웃음을 되찾게 하며, 잃어버린 존엄을 다시 밝혀준 따뜻한 손을 가진 의사이기 때문이다.
글|푸치룬(傅啟倫) 촬영|궈수하오(郭書豪)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