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칩’ 밀수 급증, 주로 싱가포르, 말레이 등 우회
美 칩 위치추적장치 등 강력 대응 불구, 고성능 밀수 지속
중국 내 수리업체들, RTX 4090에 메모리 추가, 성능 높이기도
밀수 루트 탐사 다큐멘터리 ‘생생한 밀수 수법·경로’ 눈길

중국 내의 수리업체들은 RTX4090의 성능을 고도화하는 업그레이드 작업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출처=게이머넥서스)
중국 내의 수리업체들은 RTX4090의 성능을 고도화하는 업그레이드 작업을 하는 것으로도 알려졌다. (출처=게이머넥서스)

[애플경제 엄정원 기자] 미국의 AI칩 수출 통제가 강화된 이후에도 중국으로 최신 GPU가 사실상 자유롭게 반입되고 있다. 대부분 밀수 내지 밀반입 경로를 통한 것이다. 그로 인해 중국내 엔비디아 칩 암시장이 급속도로 확산되면서 일부 보도에 따르면 최근엔 10억 달러 규모의 밀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이에 미 정부도 이를 제어하기 위한 법안은 물론, 해외 수출용 GPU에 추적용 ‘칩’을 필수적으로 장착하도록 하며 단속에 나서고 있다. 엔비디아 GPU 획득을 둘러싼 미 정부와 중국 기업 간의 ‘창과 방패’ 대결이 가열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최신 엔비디아 ‘B200’까지 불법 유통되며, 중국의 데이터센터와 수리 시장 등으로 널리 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반도체 전문 사이트인 ‘게이머 넥서스’의 최근 다큐멘터리도 이같은 중국의 GPU 밀수 경로를 소상히 알리고 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GPU 밀수는 매우 활발해서, 심지어는 엔비디아 48GB RTX 4090은 물론, ‘5090’도 쉽게 들여오고 있다.

특히 RTX 4090의 경우 메모리 칩을 추가, AI 워크로드 처리 성능이 훨씬 향상된 48GB 카드로 만드는 등 현지에서 다시 만들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처럼 카드를 분해, AI에 최적화하는 것은 가장 흔한 밀반입의 수법이다. 중국 내 수리점들은 이미 밀수업자를 통한 칩을 고객이 원하는대로 최적화하기 위해 카드를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中 고속 AI 하드웨어 획득에 큰 지장 없어’

중국 기업들은 데이터 센터 및 AI 교육용 최신 GPU 하드웨어가 절실한 형편이다. 공식적으론 이를 손에 넣는게 무척 힘들다보니 광범위한 밀수 작전이 벌어지고 있다. 게이머 넥서스가 자사 사이트와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토록 강력한 미 정부의 단속에도 불구, 중국이 고속 AI 하드웨어에 접근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음이 밝혀졌다.

중국 기업들은 진작부터 GPU와 프로세서를 중국으로 밀수해왔다. 그러나 금년 들어 트럼프 관세정책과 그로 인한 세계 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밀수가 몇 배나 더 활발해졌다. 지난 한 해 동안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10억 달러 상당의 GPU가 중국으로 유입되었다는 보도가 나오기까지 했다.

유튜브를 통해 방영된 해당 다큐멘터리를 보면 밀수 행위의 작동 방식과 경로가 생생하게 소개되고 있다. 특히 10여 년 전 암호화폐 채굴이 활성화된 이후 GPU 밀수가 지속되어 왔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AI 붐’으로 인해 이러한 과정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GPU 밀수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거대한 산업으로 성장했다.

미 정부의 엄격한 금수 조치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여전히 엔비디아 A100과 H100 GPU, 심지어 최신 RTX 5090까지 사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르면 GPU는 또한 복잡한 중개업체와 수리점 네트워크를 통해 중국으로 유입되고 있다.

기술매체 ‘비디오카드즈’(VideoCardz)는 “유학생들이 GPU를 짐에 넣어 귀국하는 경우도 있다”며 “이들은 그래픽 카드 한 장당 최대 1,400달러를 벌기도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끈다.

중국엔 이미 최신 고성능 칩도 대거 밀반입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게이머넥서스)
중국엔 이미 최신 고성능 칩도 대거 밀반입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사진=게이머넥서스)

엔비디아 큰 시장 싱가포르 우회 많아

게이머넥서스 다큐멘터리에 의하면 애초 지난 2월 엔비디아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연례 보고서를 제출했다. 해당 보고서에서 엔비디아는 “싱가포르가 2024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지역별 매출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대만은 3위, 중국은 4위였다.

싱가포르는 고객 청구 기준으로 엔비디아 2025 회계연도 총 매출의 18%를 차지했다. 이들 고객들은 싱가포르를 통해 청구서를 처리하지만, 정작 엔비디아 제품은 대부분 ‘다른 지역’으로 배송된다. 배송 목적지가 싱가포르인 경우는 전체 매출의 2% 미만으로 알려졌다. ‘다른 지역’, 특히 중국으로 대규모 물량이 흘러들어감을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실제로 그 무렵 싱가포르에서 중국으로 AI GPU가 밀수되었다는 추측이 제기되었다. 싱가포르 당국은 AI GPU가 탑재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서버 관련 사기 혐의로 용의자 3명을 체포했다가, 몇 주 후 보석을 허가했다.

이에 미 의회는 지난 5월 초당파적 의결로 고성능 AI 칩 밀수를 막기 위한 ‘칩 보안법’(Chips Security Act)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기업들이 고성능 AI 칩의 ‘위치 확인 기능’을 확보하고, 제품이 전용되거나 위치가 변경된 경우 보고하도록 했다. 즉, 중국 밀수를 막기 위해 모든 GPU에 위치 추적 장치를 달도록 한 것이다. 이는 엄격한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엔비디아(NVIDIA) 제품을 포함한 칩의 중국 밀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첩보에 기인한 것이다.

말레이 정부도 대중 제재 적극 동참

특히 말레이시아 정부도 미국에서 수입하는 모든 고성능 AI 칩에 대한 ‘무역 허가’를 의무화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성명을 통해 “투자통상산업부(MITI)는 미국산 고성능 AI 칩의 모든 수출, 환적 및 운송에 대해 전략 무역 허가가 즉시 적용된다는 사실을 발표하고자 한다”며 “이러한 권한은 ‘2010년 전략 무역법(STA 2010)’ 12조에 따라 부여된 포괄 통제 조항”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개인이나 기업은 전략물자목록(SIL)에 명시적으로 등재되지 않은 품목을 수출, 환적 또는 환적하려면 최소 30일 전에 관련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 다만 “해당 품목이 오용되거나 제한된 활동에 사용될 것임을 알고 있거나 의심할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경우”라고 단서를 달았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STA 2010 또는 관련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판명될 경우 엄격한 법적 조치를 받게 된다”며 “개인이나 기업의 수출 통제 회피, 또는 불법 무역 행위 등 모든 시도를 단호히 배격한다”고 강조했다.

제3국을 경유, 중국으로 고성능 칩이 밀반입되고 있다.
제3국을 경유, 중국으로 고성능 칩이 밀반입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 그 무렵 ‘파이낸셜 타임스’는 10억 달러 이상의 엔비디아의 AI 칩이 중국으로 밀수되었다고 보도, 논란이 일었다. 이에 대해 엔비디아는 “밀수 제품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하는 것은 실패작일 수 밖에 없다”며 “데이터센터에는 서비스와 인프라 지원이 필요하며, 당사는 인증된 엔비디아 제품에만 이러한 지원을 제공한다.”고 해당 보도를 반박했다. (질 낮은)밀수품으로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수 없으므로, 해당 보도는 근거가 희박하다는 얘기다.

이 무렵 미국 법무부는 캘리포니아에서 “인공지능(AI) 애플리케이션에 사용되는 수천만 달러 상당의 민감한 마이크로칩으로 추정되는 고성능 GPU를 중국으로 밀수한 혐의로 2명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BBC는 법원 문서를 인용, “해당 선적물에는 엔비디아 H100과 RTX 4090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 보도에 대해 엔비디아는 ‘테크크런치’ 등을 통해 오히려 “"이 사건은 밀수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저희는 주로 OEM을 포함한 유명 파트너에게 제품을 판매하며, 이들은 모든 판매가 미국 수출 통제 규정을 준수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비교적 소규모 수출업체 및 선적물조차도 철저한 검토와 정밀 검사를 거치며, 우회된 제품에는 서비스, 지원 또는 업데이트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적극 해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정부는 중국으로의 우회 경로를 적발, 단속하기 위해 AI 칩 선적물에 추적 장치를 내장했다. ‘톰스 하드웨어’는 “미국 당국이나, 중국으로 향하는 AI 칩 선적물에 비밀 추적 장치가 부착되어있다”고 밝히며, “특히 엔비디아와 AMD 칩을 탑재한 특정 선적물의 포장과 서버 자체에 추적 장치가 부착되어 있다”고 했다.

반도체 전문 사이트 게이머 넥서스가 중국의 GPU밀수 경로를 탐사 보도한 다큐멘터리 유튜브. (출처=게이머넥서스)
반도체 전문 사이트 게이머 넥서스가 중국의 GPU밀수 경로를 탐사 보도한 다큐멘터리 유튜브. (출처=게이머넥서스)

中 정부, 위치추적장치 우려, “H20 칩 구매 금지”

이에 중국 정부도 역으로 통제에 나섰다. 중국 정부는 “국가 안보 및 정부 업무에 엔비디아 H20 칩을 구매하고 사용하지 말라”고 국내 기업들에 촉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자국 내 기업들에게 “엔비디아 칩에서 이런 감시 장치를 발견했는지 여부를 확인하라”고 지시했다.

이번에도 엔비디아는 ‘H20’은 군수품이나 정부 인프라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중국이 충분한 국산 칩 공급을 확보하고 있으며, 공공용으로 미국산 칩을 의존하지 않을 것이며, 앞으로도 의존한 적이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공방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지난 11일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에 개조된 블랙웰 칩을 판매하는 것을 허용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또한, “엔비디아 CEO 젠슨 황과 중국 내 H20 판매를 허용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히며 새삼 유화책을 제시했다. 대신 사실상의 수출거래세인 15%를 제시한 상황이어서, 실질적으론 대중 수출 통제의 연장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