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와 트럼프 결별에 투자자, 빅테크, 투자회사 등 ‘편 가르기’
“어느 쪽에 설까” 눈치보기 치열, 실리콘밸리 내 ‘우파’ 분열 가속화
“머스크, 실리콘밸리의 ‘좌파로 유턴하는 관문’ 될지가 관전 포인트”
[애플경제 이윤순 기자] 실리콘밸리가 전에없이 치열한 정치적 격랑에 휘말렸다. 일론 머스크와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으면서, 실리콘밸리의 투자자들과 기업가들은 과연 두 사람 중 누구편에 설 것인지를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애초 실리콘밸리의 억만장자나 벤처캐피탈, 그리고 빅테크 CEO들은 대체로 머스크의 동선을 따라 친 트럼프 태세를 지켜왔다. 그러나 이젠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결별함으로써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다.
“일부는 우회적으로 머스크 편, 백악관 비판은 자제”
두 사람의 불화로 인해 특히 실리콘밸리를 대표하는 명망가들의 고민이 크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인공지능(AI) 및 암호화폐 보좌관 역할을 해온 데이비드 삭스, 마크 앤드리슨 등이 있고, 많은 벤처캐피탈과 거액의 투자자들도 그런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 중엔 일단 머스크를 지지하면서도 백악관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진 않는 등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세쿼이아 캐피털’의 파트너이자 작년 트럼프에게 30만 달러를 기부했다고 밝힌 숀 맥과이어가 그런 경우다. 그는 X에 “일론(머스크)은 경기장에서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자신이 믿는 것을 굴하지않고 앞세운다”면서 “(비록 그와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모습에 영감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일단 (백악관을 비판하지 않으면서도) 머스크에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다.
또 다른 투자자문회사 ‘알티미터 캐피털’(Altimeter Capital)의 설립자 브래드 거스트너도 일단 머스크에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는 두 사람의 파국을 부른 직접적인 원인인 트럼프의 ‘감세법안’에 대해 ‘블룸버그’에 “이 나라에 균형 예산 개정안이 필요하다고 믿으며 30년 동안 이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감세안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러면서 “곧 만기가 될 신용카드로 빚을 갚으며 당장은 높은 생활 수준을 누리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이라며 “저는 일론 머스크의 열렬한 팬”이라고 머스크 지지를 표했다.
앞서 머스크는 소셜 미디어에 트럼프와 그의 행정부를 비판하는 일련의 게시물을 연달아 올리며 2억 2천만 명이 넘는 팔로워들에게 “미국에서 중산층 80%를 진정으로 대표하는 새로운 정당을 창당해야 할 때인지”라고 질문했다. 마치 자신이 직접 나서 새로운 정당을 만들기라도 할 것 같은 태도다.
이같은 머스크에 공감하며, 우회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지의 벤처 캐피털 회장인 게리 탠은 “부지런한 헛소리와 미덕 과시, 문화 전쟁보다는 ‘식탁 위의 풍요로움’을 우선시해야 한다”고 사실상 트럼프를 비유했다. 클라우드 스토리지 회사인 ‘Box’의 CEO 에런 레비 또한 ‘와이어드’를 통해 머스크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DOGE에 분노했던 투자자들은 “머스크 비판”
반면에 일부 투자자와 기술 전문가들이 머스크가 DOGE를 처리한 방식에 분노하고 실망했기 때문에 머스크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즉 많은 사람들이 DOGE가 정부를 ‘뒤흔들 수 있다’는 생각에 엄청난 우려를 한 바 있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트럼프 지지자 중 일부는 트럼프-머스크 갈등이 격화되는 동안 대부분 침묵을 지켰거나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리려는 모습들이다. 앞서 데이비드 삭스와 차마스 팔리하피티야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내각 인사들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면, 이런 입장의 팟캐스트 ‘올인(All In)’으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팔리하피티야는 X에 암호화폐에 대한 글을 올렸고, 삭스는 최근 뉴욕타임스에 실린 AI 정책에 대한 기고문을 실었다. 그러나 다른 팟캐스트 진행자인 데이비드 프리드버그 등은 두 사람의 불화를 일종의 ‘드라마’에 비유하며, 은근히 머스크를 비판하고 나섰다.
프리드버그는 X에 “정치에는 진정한 친구가 없다. 오직 공통의 이익만 있을 뿐이다”라면서 한 드라마 속에서 불화를 빚는 주인공들과 오버랩된 머스크를 묘사한 밈을 올렸다.
특히 전직 테슬라 임직원들은 대체로 머스크에 대해 비판덕이다. 전에 테슬라에서 제품 매니저를 일했던 한 관계자는 “‘All In 팟캐스트’ 출연자들(트럼프-머스크를 비유한 표현)의 정치적 신념이 하룻밤 사이에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다”며 졸지에 적으로 돌아선 두 사람의 모습을 비꼬았다.
“실리콘밸리에 끼칠 영향 분석이 우선” 지적도
그러나 두 사람의 불화를 둔 실리콘밸리의 이런 어정쩡한 모습을 두고, “현 상황이 진정 실리콘밸리에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전 구글 임원이자 기술 업계 단체 진보회의소(Chamber of Progress)의 CEO인 애덤 코바세비치는 ‘와이어드’에 “머스크와 트럼프의 이번 불화에서 대부분의 기술 업계 리더들은 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해 진정으로 우려하는 바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작 이번 사태의 ‘맥락’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코바세비치는 “현 상황의 의미를 과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기술 업계의 대다수는 현재 두 사람 중 누구와도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SEC의 암호화폐 관련 소송을 취소하고, 바이든의 AI 관련 행정명령을 철회한 것을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관세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며, 현재 기술 업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그런 가운데 기술 투자자문 회사에서 일하는 전직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트럼프와 머스크의 싸움은 실리콘밸리로선 어느 한쪽 편을 드는게 쉬운 결정이 아닐 것이라고 했다. “지금은 트럼프 동맹을 구성하는 다양한 세력들이 있다.”면서 “근본적인 문제는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기술 업계에서 일론 머스크가 보기 드물게 ‘트럼프와 공화당으로 넘어가는 관문’이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현 상황은 그런 점에서 “일론 머스크가 다시 기술 업계가 ‘좌파로 돌아가는 관문’이 될 수 있을지가 관전 포인트”라고 주장했다. 우파 성향의 또 다른 기술투자자들은 X와 언론 인터뷰, 블로그 등을 통해 “그들의 싸움이 곧 끝날 기미는 거의 보이지 않고, 오히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그 결과는 (머스크 지지성향의) 기술 우파와 (친 트럼프 성향의) 포퓰리스트 우파의 거대한 분열”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