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해부터 생태계까지 본격 시동, 생산부터 저장 기술 고도화
수전해 국산화도 속도, K-water·삼성E&A·현대차 등 수소 생태계 확산 주도
"정책·인프라·지역 거점 삼박자 갖춰야 수소 시장 주도 가능"

삼성E&A가 선보인 '컴퍼스H2'.(사진:삼성E&A)
삼성E&A가 선보인 '컴퍼스H2'.(사진:삼성E&A)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청정수소가 에너지 패러다임의 핵심 키워드로 자리 잡으면서, 정부와 기업, 연구기관이 기술 고도화와 생태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를 이용해 물에서 수소를 뽑아내는 수전해, 촉매 성능을 좌우하는 소재 기술, 그리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저장 기술까지, 청정수소의 전 주기 기술 경쟁은 이제 초기 실험 단계를 넘어 상용화 진입을 앞두고 있다.

이에 정부는 수소법과 청정수소발전의무화 제도를 통해 제도적 기반을 다지고 있다. 국내 주요 기업과 연구기관은 저마다의 기술 전략을 앞세워 수소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고, 지역 공기업과 지방자치단체 역시 에너지 자립과 청정 도시 전환을 내세우며 수소 생태계 구축에 참여하고 있다.

수전해 기술, 국산화 기반 다지고 상용화 도전

청정수소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수전해다. 물을 전기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 과정에 재생에너지를 활용하면 완전한 무탄소 생산이 가능하다.

하지만 수전해 기술은 전력 소모가 크고, 장비 단가도 높아 상용화까지는 기술적 허들이 많다. 현재 세계 시장은 넬(Nel), 티센크루프(ThyssenKrupp), ITM파워 같은 유럽 기업이 주도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이제 막 자체 기술 기반을 정립하는 단계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E&A는 수전해 전문 기업 ‘넬(Nel)’과 공동 개발한 통합 생산 솔루션 ‘컴퍼스H2’를 세계 수소 서밋에서 처음 선보였다. 이 솔루션은 수전해 장비와 설계, 시공, 유지 관리까지 통합해 제공하는 형태로, 수소 플랜트 건설을 단순화시킨 점이 특징이다.

특히 설계 효율화를 통해 공장 면적을 기존 대비 20% 줄였고, 주요 장치들의 배치를 최적화해 생산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했다.

대학과 연구기관도 기술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포스텍과 서울대는 철 기반 촉매에 대한 원자 수준 분석을 통해 기존보다 두 배 이상 효율적인 물 분해 촉매를 제시했다.

기존 촉매가 고온에서만 반응하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연구진은 산소를 들고 나르는 ‘산소 스펀지’ 역할의 니켈-철 복합산화물 구조를 재설계했다. 그 결과, 낮은 온도에서도 산소를 흡수하고 방출하는 ‘레독스 스윙’ 구조를 구현해 수소 생산 효율을 크게 높였다.

공기업 중심의 실증 프로젝트도 활발하다. K-water는 전국의 수력 발전 인프라를 활용해 청정수소 생산 거점을 구축 중이다. PEM 방식 수전해 설비는 반응 속도가 빠르고, 전력 부하 대응이 유리해 재생에너지 연계에 적합하다.

성남·밀양·충주에 각각 1MW급 수전해 설비를 설치해 하루 수소 수백 kg을 생산하고 있으며, 이는 수소차 수십 대를 하루 충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처럼 국내 수전해 기술은 소재부터 설비까지 국산화를 진행하면서 점차 외산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가고 있다. 다만 여전히 수전해 효율과 내구성, 단가 문제는 상용화의 걸림돌로 남아 있다. 기술 경쟁력과 함께 대량 생산 기반까지 확보해야만 글로벌 수소 시장에서 존재감을 높일 수 있다.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소터빈.(사진:두산에너빌리티 유튜브)
두산에너빌리티의 수소터빈.(사진:두산에너빌리티 유튜브)

수소 저장과 활용 기술, 산업 전반으로 확장 중

수소는 생산도 중요하지만, 저장과 활용이 어렵다. 압축해 저장하거나 액화 또는 화합물 형태로 변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크고 인프라 비용도 부담이 크다. 최근에는 저압·대용량 저장 기술, 고체 흡착 소재 기반 저장, 암모니아 기반 간접 저장 등 다양한 방식이 병행 발전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청정수소 저장·활용 전략연구단을 출범시키고, 전 주기 기술 확보를 위한 로드맵을 공개했다. 이 연구단은 수소를 고체와 액체 형태로 병행 저장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시스템, 암모니아 분해 기반 수소 생산 기술 등 다양한 응용 기술을 통합적으로 실증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관련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연구 성과의 산업적 연계도 강화하고 있다.

암모니아를 활용한 수소 저장은 최근 각광받는 분야다. 액체 상태로 저장과 운송이 용이한 암모니아를 분해해 수소를 추출하는 방식은 특히 대규모 발전, 수소 터빈, 연료전지 등 고정형 활용처에서 유리하다.

현대차는 글로벌 파트너사들과 이 기술을 활용한 국제 수소 공급망 구축을 추진 중이며, 이를 통해 장거리 운송과 수요처 확보라는 두 가지 과제를 동시에 풀려 하고 있다.

울산에서는 청정수소 100%를 사용하는 ‘전소 발전소’도 준비 중이다. 한국남부발전과 울산시는 135MW 규모의 수소 터빈 발전소를 2031년까지 완공할 계획이다. 이 설비는 수소만을 연료로 쓰기 때문에 탄소 배출이 전혀 없으며, 석탄·LNG 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실질적인 무탄소 발전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수소 활용 분야는 연료전지차, 고정형 발전, 산업용 보일러까지 확장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전력망 보완용 피크 전력 대응 기술로서 수소 터빈의 역할이 부각되고 있다.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수소 기반 부하 추종 발전 기술은 향후 에너지 시장의 안정성 측면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

밀양댐 소수력 기반 그린수소 인프라 구축 조감도.(사진:한국수자원공사)
밀양댐 소수력 기반 그린수소 인프라 구축 조감도.(사진:한국수자원공사)

K-water부터 태백까지…지역으로 퍼지는 수소 거점

기술이 발전하더라도 이를 실현할 인프라가 따라주지 않으면 생태계는 구축되지 않는다. 지금 국내에서는 수소 인프라를 지역 중심으로 구축하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K-water는 기존의 댐과 정수장을 활용해 소규모 수소 생산–활용 거점을 만드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성남정수장에서는 수력 발전으로 얻은 전기를 활용해 하루 188kg의 수소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 수소는 인근 이동형 충전소에 직접 공급된다. 밀양, 충주에서도 유사한 구조의 인프라가 설계되고 있고, 이들 거점을 연계하면 지역 중심의 분산형 수소 생태계를 실현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자립형 에너지 전략을 수소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강원 태백시는 도심 내 첫 수소충전소 건설을 시작했다.

하루 최대 25kg의 수소를 공급할 수 있는 이 충전소는 남부 강원권의 수소차 운행 기반을 마련해주는 동시에, 탄광 중심 산업 구조에서 친환경 중심으로의 전환을 시도하는 상징적 프로젝트다.

이와 같은 지역형 생태계 모델은 단지 수소차 보급을 위한 충전소 구축을 넘어서 수소 기반 산업 유치, 지자체 차원의 에너지 자립, 청정도시 브랜드 형성으로 확장될 수 있다. 특히 탄소중립이 무역 장벽으로 작용하는 시대에, 지역 단위의 수소 인프라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RE100’ 대응 수단이 될 수 있다.

수소 경쟁력의 조건, 기술보다 중요한 건 실행력

국내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이미 수소차, 연료전지, 수소충전소 등 일부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수소경제의 근간이 되는 수소 생산 기술, 저장·운송 인프라, 청정수소 인증 제도 등에서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보고 있다.

청정수소발전의무화 제도(CHPS)는 수소 발전 확대를 위한 첫 정책이지만, 석탄·암모니아 혼소 발전도 청정수소로 인정하는 기준 때문에 ‘그린워싱’ 논란에 휩싸였다. 실제로 일부 시민단체는 이 제도가 석탄 발전의 수명 연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기술과 제도, 시장의 균형이 맞아야 수소 생태계는 자생력을 갖는다. 정책 목표가 선언에 그치지 않으려면, 수소 생산부터 저장, 활용까지 기술 기반을 갖춘 기업들이 사업화와 동시에 실증 기반을 확보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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