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Meta)의 사장급 인물이 일론 머스크를 두고 워싱턴 정가의 ‘킹 메이커’가 될 것이라고 했다. 호사가들은 트럼프 당선 이후 머스크를 ‘그림자 대통령’에 비유하기까지 했다. 정작 머스크는 ‘정부 효율성부(DOGE)’란 신설 부서의 수장을 맡기로 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일원으로서 나라 살림을 직접 감독하는 요직 중의 요직이다. 우리식으로 보면 영낙없는 ‘정경 유착’에 다름 아니다. 실제로 그의 전기차, 우주항공사업, AI 개발사업 등이 ‘날개’를 달 공산이 크다.
물론 머스크가 공동으로 이끄는 ‘DOGE’가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알려지기론 연방 지출을 대폭 줄이고, 모든 부서의 돈씀씀이를 일일이 간섭한다고 하니, 막강한 권력기관임엔 분명하다. 심지어 트럼프는 “예산을 크게 절감해서 연방 기관을 ‘재구조화’할 것”이라고 했다. 연방정부의 체질을 근본에서부터 뜯어고치는 일을 머스크에게 맡긴 것이다. 일개 기업가가 이처럼 막강한 공적 권한을 갖는 일은 매우 드문 일이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업과 정치권력의 결탁이다. 그러나 그건 겉으로 본 관측일 뿐이다. 정작 이번 미국 대선이 야기한, 미묘하게 얽혀있는 또 다른 텍스추어가 그 아래 숨어있다.
트럼프의 당선을 두고 아직까지도 오만가지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거론되는 것은 미국 사회 비주류로 몰린 중·하층 서민들의 파괴적 에너지다. ‘러스트 밸리’가 대변하듯, 삶에 대한 에너지와 충동이 방해를 받을수록, 그런 적대적 파괴성은 커지기 마련이다. 애초 프로테스탄트적 금욕과 청교도 정신의 심연에도 그런 적개심이 자리하고 있다. 곧 도덕적 분노다. “내딴엔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라는 회한은, 미처 실현되지 않은 현실과 부딪히며, 분노와 욕망으로 분출되곤 한다. 인생을 뜻한 바대로 살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격렬한 시기심이기도 하다. 하류 중산층으로 갈수록 그 농도는 더해진다. 마침내 그런 파괴적 분노와 적개심이 트럼프의 선동적 ‘마가(MAGA, Make America Great Again)’로 폭발한 것이다. 여기서 ‘위대한 아메리카’는 곧 자신들의 확장된 생존 모습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여느 트럼프 지지자들과 또 다른 맥락에서 그의 당선에 힘을 보탠 부류가 있다. IT산업을 포함한 실리콘밸리가 그들이다. 본래 일부 부유한 벤처투자가들을 제외하면 미국 기술산업 전반의 정서는 ‘反트럼프’다. 그런데 왜 이번엔 트럼프쪽으로 기울었을까. 이 대목에서 합리적 선택이나 진실이 아닌, ‘탈진실’의 위력을 생각할 수 있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한다”는 것과 같은, 자명한 ‘합리적 진리’는 교조적일 수 밖에 없다. 정치인에게 흔히 ‘거짓말쟁이’라고 욕한다. 그러나 정치인에게 도덕적 교조주의는 금물이다. 오히려 정치적 ‘거짓말’은 ‘도덕적 결함’과는 별개의, 객관적 사실과는 또 다른 대안적 사실이기도 하다. 만약 ‘오로지 진실’만을 고집하면, 이는 자칫 非정치적 내지 독선이 될 수 있다.
트럼프는 객관적 사실을 그런 '사실적 진리'로 요리하는데 능한 인물이다. AI와 암호화폐 등에 대한 대중의 감정과 믿음에 영합하며 거짓말인 듯, 아닌 듯한 상상력을 부추겼다. 사실보다는,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달리한 ‘포스트 트루스’를 내걸었다. 이에 실리콘밸리도 믿어보기로 한 것이다. 메타의 마크 저커버그, MS 사티아 나델라 등도 경로만 다를 뿐 행동거지는 똑같았다. 자신의 신념, 곧 입맛에 맞는 것만 쏙쏙 빼먹는 ‘체리 피킹’(Cherry Picking)의 유혹을 일단 물리쳤다. 평소 생각이 무엇이든 관계치않았다. 대신에 대선 국면의 사실을, 자신만의 진실로 재해석한 ‘사실적 진리’를 기준삼아 트럼프에 줄을 섰다. 나름의 치밀한 득실계산과 함께 ‘포스트 트루스’의 맥락에서 억만금을 선사하며 트럼프 지지에 나선 것이다.
그런 전후 사정을 가장 잘 보여준게 머스크다. 머스크야말로 합리적 진리보단, 철저하게 영악한 탈진실의 영역을 저격한 것이다. 물론 이를 손가락질 하는 사람도 많다. 머스크의 정치성향에 불만을 품은 X 사용자들의 가열찬 ‘엑소더스’가 한창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의 그의 욕망을 결코 잠재우기엔 턱도 없다. 오히려 가열찬 사업계획과 승승장구만을 꿈꾸느라 그는 요즘 바쁘다. 그렇게 그는 미국 정치의 스폿라이트를 한껏 즐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