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 UAE, 쿠웨이트, 카타르 등 ‘중동 펀드’, 실리콘밸리에 ‘돈벼락’
석유 자원 고갈 이후 먹거리로 ‘AI 투자’, 오픈AI 등 美스타트업에 집중
“잘못하면 ‘돈의 홍수’에 익사” 비유, ‘투자기업 파산’ 등 경고도
[애플경제 김예지 기자] 오일머니가 실리콘밸리로 쏟아지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쿠웨이트, 카타르등 석유 자원이 풍부한 국가들은 이제 더 이상 오일머니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절박감을 갖고 있다. 석유 자원이 언젠가 고갈되면, 또 다른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다급함으로 최근엔 너도나도 경제와 산업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그 중 현재의 오일머니로 가장 수익성 높은 수단으로 떠오른 것이 실리콘밸리 등 해외 기술 투자다. 최근엔 이를 기술 투자를 헤지로 전환하며 최대한의 고수익을 노리고 있다.
시장조사기관 피치북(Pitchbook)에 따르면, 작년에 중동 각국의 정부가 지원하는 펀드의 AI 투자 수준이 5배나 증가했다.
그 중 아랍에미리트에서 나온 펀드인 MGX는 이번 주 오픈AI가 대대적으로 유치하고 있는 펀딩 라운드에도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샘 앨트먼과 오픈AI는 향후 ‘초지능’을 개발한다는 목표로 현재 주로 중동의 부국들을 대상으로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고 있다. 중동의 오일머니가 인공지능 개발에 몰입하고 있는 실리콘 밸리의 주요 자금줄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사우디 국부펀드, UAE AI펀드 MGX 등
특히 아랍에미리트에서 나온 새로운 AI 펀드인 MGX는 오픈AI가 자사가 조성한 최신 펀드 모금에서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투자자 중 하나다. 최근 ‘영리법인’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샘 앨트먼과 오픈AI는 자사의 가치를 1,500억 달러로 평가할 예정이다. 그만한 몸값에 버금가는 거액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앨트먼 스스로가 최근 중동 국가를 순회하며, 손을 벌리고 있다.
물론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등과 경쟁할 만한 벤처 펀드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이들 중동 국가의 펀드 역시 AI개발과 거래를 위한 현금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최근 몇 년 동안 특히 석유 가격이 상승한 덕분에 막대한 투자 여력을 갖고 있다.
골드만 삭스에 따르면, 걸프 협력 위원회(GCC) 회원국들의 총 자산은 2026년까지 2조 7,000억 달러에서 3조 5,00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사우디 공공 투자 기금(PIF)은 9,250억 달러를 돌파했으며,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의 ‘비전 2030’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PIF는 우버를 포함한 회사에 투자하는 한편, LIV 골프 리그와 프로 축구에도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비단 사우디아라비아만이 아니다. UAE의 ‘무바달라’는 3,020억 달러를 관리하고 있으며, 아부다비 투자청은 1조 달러를 관리하고 있다. 카타르 투자청은 4,750억 달러를 관리하고 있으며, 쿠웨이트의 펀드는 8,000억 달러를 돌파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부다비에 본사를 둔 MGX는 최근 블랙록, 마이크로소프트, 글로벌 인스트럭처 파트너즈(Global Infrastructure Partners)와 AI 인프라 파트너십을 맺고, 데이터 센터와 기타 인프라 투자를 위해 최대 1,000억 달러를 모금하는 것을 목표로 내세웠다. MGX는 지난 3월에 전담 AI 펀드로 출범한데 이어, 아부다비의 무바달라와 AI 회사 G42가 창립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특히 UAE의 ‘무바달라’는 오픈AI 경쟁사인 앤트로픽에도 투자했다. 피치북에 따르면 ‘무바달라’는 지난 4년 동안 8건의 AI 거래를 성사시킬 만큼, 가장 활발한 벤처 투자자 중 한 명이다. 다만 CNBC는 “앤트로픽은 국가 안보를 이유로 마지막 펀딩 라운드에서 사우디로부터 자금을 받는 것은 배제했다”고 전했다.
서방국가들 ‘인권문제’, 국가 안보 등 경계도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의 PIF는 미국 벤처 캐피털 회사인 안드레센 호로비츠와 400억 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맺기 위한 협상을 진행 중이다. 이는 또한 SCAI(Saudi Company for Artificial Intelligence)라는 전담 AI 펀드를 출범시키도 했다. 펀드 이름에 AI를 넣을 만큼 인공지능 투자에 대한 큰 관심을 엿보게 한다.
그러나 사우디는 최근의 인권문제로 인해 일부 서방 국가 정부로부터 불신을 받거나, 기업 투자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2018년 ‘워싱턴 포스트’ 기자 자말 카쇼기가 살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각국 정부와 기업계에서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물론 글로벌 AI 투자를 위해 돈을 뿌리는 것은 중동만이 아니다. 피치북에 따르면 프랑스 국부펀드 ‘Bpifrance’도 지난 4년 동안 161건의 AI 및 머신러닝 거래를 체결했고, 싱가포르의 ‘Temase’도 47건을 계약했다. 싱가포르가 지원하는 또 다른 펀드인 GIC는 24건의 거래를 성사시킨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실리콘밸리 투자자들은 ‘현금의 홍수’에 익사할 뻔한 마사요시 손의 비전 펀드를 언급하며, ‘소프트뱅크 효과’를 우려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한때 우버와 위워크를 지원하여 상장 전에 이 회사의 가치를 엄청나게 높였다. 그러나 위워크에 대해 소프트뱅크가 2019년에 470억 달러로 평가한 후, 작년에 파산 위기에 빠졌다.
미국의 경우는 우선 중동 국부펀드 등이 중국과 같은 적대국이 아닌, 자국 기업에 투자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골드만삭스 글로벌 연구소의 평가처럼 “사우디아라비아와 UAE와 같은 국가에서 자본이 불균형적으로 많이 유입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