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가 비공개 채팅 신고, 관리자 직접 관리 등 ‘정책 변경’”
AI 성범죄 만연에 태도 변화…재판 앞둔 CEO 두로프도 “상당 수준 개선”
“CEO가 제3자 범죄 책임지나” 반발도, 텔레그램 ‘피난처’ 역할도 시험대
[애플경제 이윤순 기자] AI 딥페이크 등 디지털 성범죄로 인해 악화된 세계 여론 때문일까. 텔레그램의 파벨 두로프 CEO가 체포 후 기소를 앞두고 풀려나면서 처음으로 “범죄 활동을 제어하기 위해 (텔레그램 운영을) ‘상당 수준으로 개선’하겠다”고 다짐했다. 두로프의 이런 입장 변화를 미리 반영하듯, 이보다 하루 앞서 텔레그램은 “사용자가 비공개 채팅을 관리자에게 신고할 수 있도록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즉, 종전과 달리 필요할 경우 텔레그램 운영진이 직접 나서 문제가 되는 콘텐츠를 ‘관리’한다는 얘기다.
관리자들, ‘신고’ 이메일의 문제 콘텐츠 ‘링크’ 접속
AI 이미지 툴을 악용, 텔레그램을 메신저삼아 자행되는 광범위한 딥페이크 성범죄가 한국에서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특별히 눈길을 끈다. 그러나 일부 외신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텔레그램은 사용자가 비공개 채팅을 신고할 수 있도록 ‘조용히’ 정책을 업데이트했다”고 표현한 점에 주목했다. 공식 성명 등이 아닌, ‘조용하고’ 은밀한 방식의 마지못해 결정한 듯한 태도를 비꼰 것이다.
두로프 자신도 ‘상당 수준 개선’을 약속했지만, “스마트폰이 생기기 전의 법률을 지금의 기술에 갖다대며, 플랫폼에서 제3자가 저지른 범죄로 CEO를 기소하는 것은 잘못된 접근 방식”이라고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텔레그램이 워낙에 급속히 성장하다보니, 경찰과 사법당국이 단속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은 인정한다”고 사실상 자신의 책임을 노출하기도 했다. 앞으로 닥칠 재판을 염두에 둔 태도로 읽히기도 한다.
두로프의 언급에 앞서 텔레그램은 관리 매뉴얼을 다소 엄격하게 바꾸기로 했다. 사측은 “모든 텔레그램 앱에는 ‘신고’ 버튼이 있어, 몇 번만 탭하면 모더레이터(관리자)에게 불법 콘텐츠를 신고할 수 있다”면서 “본사는 그 중 많이 제기되는 질문들을 업데이트한 페이지에 이런 사실을 명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또한 자동화된 삭제 요청을 할 수 있도록 별도 이메일 주소도 제공, 관리자들이 사용자들이 보낸 문제적 콘텐츠에 대한 링크를 포함하도록 했다. 이런 정도의 개선 노력이 각국의 사법기관 요청에 대응하는 텔레그램의 능력에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다. 이 회사는 이미 그 전에도 법원 명령에 협조, 사용자에 대한 일부 정보를 공유한 적이 있다.
두로프 “매일 삭제해야 할 ‘유해 게시물’ 수 백 만개” 자백?
그나마 이런 태도 변화는 아동에 대한 성적 학대 이미지 방관, 그리고 마약 거래 및 사기 거래와 관련된 범죄 조장 등을 수사하고 있는 프랑스 당국이 두로프를 체포한 후의 일이다. 현재 두로프는 조사를 받은 후 일단 풀려났으며, 당분간 프랑스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두로프는 텔레그램이 그 동안 범죄자들로 가득 차 있다는 주장을 반박했다.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듯, 텔레그램이 ‘무정부적 낙원’이라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우리는 매일 수백만 개의 유해한 게시물과 채널을 삭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도치않게, ‘유해 게시물과 채널’이 매일 수 백 만개를 삭제해야 할 만큼 넘쳐난다는 사실은 자백한 셈이다.
그는 또 “텔레글매의 사용자 수가 9억 5천만 명으로 갑자기 증가한데 따른 ‘성장통’으로 범죄자들이 우리 플랫폼을 쉽게 남용하기에 이르렀다”면서 “저는 이와 관련하여 상황을 크게 개선하는 것을 개인적인 목표로 삼았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풀려난 후에도 두로프는 “프랑스 당국의 조치가 여러 가지 이유로 놀랍다”고 이를 수긍하지 않았다. 프랑스 당국은 “텔레그램에서 범죄 활동을 퇴치하기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며, 또한 이에 대한 사법당국의 조회나 조치 요구 등에 대해서도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고 두로프 체포 이유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두로프는 6일 텔레그램 ‘채널’에 올린 공개 게시물에서 “저와 회사에 (당국이) 연락하는게 결코 어렵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는 “‘텔레그램 EU 법 집행 주소’를 구글에서 검색만 하면, 바로 두바이 본사에 연락처를 알 수 있다”면서 “텔레그램은 EU의 요청을 수락하고 답변하는 공식 담당자가 있다. 프랑스 당국은 또 두바이 주재 프랑스 영사관 등 저에게 연락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다”고 해명했다.
‘사용자 보호로 피난처 역할’에 관한 논쟁도
이번 사건은 텔레그램의 범죄 방임 여부 등과는 별개의 논쟁도 이어지고 있다. ‘사용자 개인정보보호’를 철칙으로 하며, 일종의 정치․사회적 피난처가 되었던 텔레그램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이미 일부 언론은 “두로프가 재판을 받게되면서 (사용자들의) ‘프라이버시’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지난주 파리에서 두로프가 체포된 후, 이런 주장을 펴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일론 머스크나, VPN 전문기업인 프로톤(Proton) CEO 앤디 옌은 프랑스 당국의 조치를 “미친 짓”이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이런 논쟁은 계속되었고, 일각에선 “텔레그램이 더 이상 사용자를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라고 불신을 표하기도 했다. 보안 메시징 앱 시그널(Signal)의 CEO인 메레디스 휘태커도 “텔레그램은 오랫동안 사용자 상호 작용에 대한 최소한의 감독으로 명성을 유지해 왔는데, 이제 그게 어렵게 되었다”고 전망했다.
이런 점을 들어 두로프는 자신과 텔레그램의 ‘정당성’을 강변하고 있다. 그는 “그 동안 텔레그램은 특정 국가 규제기관과의 갈등을 조정할 수 없을 경우는 기꺼이 그 나라에선 철수하곤 했다.”면서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즉 “러시아 당국이 감시를 할 수 있는 ‘암호화 키'를 내놓으라고 요구했을 때, 우리는 거부했고, 텔레그램은 러시아에서 금지되었다. 이란이 평화적인 시위대의 채널을 차단하라고 요구했을 때, 우리는 거부했고, 역시 이란에서 텔레그램은 금지되었다.”는 것이다.
당국에 대한 불만 속 ‘엄격한 관리 약속’, 실현 여부 관심사
그러나 범죄자들이 암호화된 애플리케이션을 사용해 범죄를 은폐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각국 정부는 텔레그램이 그 동안 구사해온 개인정보 보호 기술을 주목하고 있다. 이런 기술과 도구는 비판적 언론인, 반체제 인사, 학대 생존자 등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들에겐 필수적이다. 이에 두로프는 “우리는 돈을 위해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의 원칙과 맞지 않는 시장(혹은 국가)을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두로프는 그러면서 “어느 나라든 특정 인터넷 서비스에 대해 불만이 있으며, 해당 서비스에 대해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제3자의 행위에 대해 CEO를 형사적으로 책임지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반발했다. 또 “기업가가 소비자들이 제품을 남용할 가능성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한다면, 어떤 혁신가도 새로운 제품이나 도구를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불만 속에서도 한편에선 문제 콘텐츠에 대해 ‘상당한 수준의 개선’을 취하고, 필요할 경우 삭제를 포함한 엄격한 관리도 시사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