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만 ‘AI 활용’, 사실상 AI와 무관한 ‘AI 워싱’ 팽배
기업 가치 올리고 투자 유치 위해 소비자 현혹도 불사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장삼이사가 ‘AI’를 말하는 시대다. 심지어 AI와는 전혀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AI로 만들거나 활용한 제품인양 허위의 과장된 마케팅을 벌이는 기업들도 많다. 마치 ‘친환경’을 사칭하는 ‘그린워싱’(Greenwashing)이 기업의 부도덕성을 대변하듯, 최근엔 AI를 사칭하는 ‘AI 워싱’(AI Washing)이 횡행하고 있다. 제품이나 기업 경영에서 실제론 AI기술과 거리가 먼데도 불구, 마치 이를 널리 활용하고 있는 것처럼 과장, 홍보하는 것이다. 이는 ‘AI 열풍’을 악용한 또 다른 악덕 상혼(商魂)인 셈이다.
‘AI 열풍 악용한 악덕 상혼(商魂)으로 비판
‘AI워싱’이란 흥미로운 테마로 최근 보고서를 낸 KB금융경제연구소의 송원호 책임연구원은 “기업은 AI 기술 사용을 강조함으로써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투자 대상으로 인식되어 더 많은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며 “또한 혁신적이고 기술 선도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비즈니스에서 경쟁사보다 유리한 위치를 점함으로써 기업 가치의 상승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지적했다.
송 연구원은 그러면서 ‘포브스’를 인용, 좀더 구체적인 원인을 분석했다. ‘포브스’에 따르면 투자를 유치할 때 AI를 언급한 스타트업이 훨씬 유리하다. AI를 언급하지 않은 기업보다 적게는 15%, 많게는 50%나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부 기업들은 자금 조달을 위해 AI 역량을 과장하고, 창업자는 투자를 유치할 때 AI를 언급하지 않으면 불리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말로만 ‘AI 역량’을 주장하는 기업과, 진짜 AI 기업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영국 VC 펀드 MMC벤처스는 이를 뒷받침하듯, “유럽 AI 스타트업의 40%는 사실상 AI를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기업 자원 왜곡, 소비자 신뢰 저하, ‘AI산업 전반에 피해’
특히 가전업계의 ‘AI워싱’이 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전제품 제조업체들은 하나같이 자사 제품에 AI 기술이 적용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은 AI와 무관한 제품이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 AI를 사칭하는 것은 겉보기에 더 스마트해 보여, 매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저 인터넷을 통해 작동하는 수준에 불과함에도 불구, AI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홍보하거나, 기껏해야 상담 챗봇을 추가하는 정도가 대부분”이란 지적이다.
이같은 ‘AI워싱’은 그러나 단순한 ‘AI사칭’이나, 과장된 홍보에 그치지 않는다는게 문제다. 그로 인해 적절한 투자를 왜곡시키고, 소비자 신뢰도 크게 떨어뜨리는 등 부작용이 크다.
소위 ‘혁신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포장하는 기업에 자칫 소비자의 관심과 함께 투자가 집중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투자 재원이 몰릴 경우 정작 AI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원활한 자금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
특히 소비자 신뢰가 크게 저하된다는게 더 큰 문제다. ‘AI워싱’ 기업이 늘어날수록, 소비자는 AI의 성능에 의문을 갖게 된다. 실제 제품을 통해 AI기능에 대한 불신이 생기면서, AI 기술 자체에 대한 신뢰도가 저하될 수 있다. 결국 그 피해는 AI기술에 매진하는 기업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지적이다.
기업으로서도 이는 자원을 낭비하게 된다. 소수의 ‘AI 워싱’ 기업의 과장된 주장을 의식한 나머지 정상적인 AI기업마저 과도한 목표와 실적을 내세울 수도 있다. 그 결과는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의미 있는 AI 역량을 개발하는 대신, 피상적인 기능 개선에 주력함으로써 정작 AI기술 발전을 더디게 한다는 지적이다.
해외에선 ‘AI워싱’이 일종의 트렌드로 자리잡아
국내에서 이같은 사례가 있지만, 미국과 유럽 등에선 ‘AI워싱’이 트렌드로 자리잡다시피 한다. 무인 매장 아마존고(Amazon Go)의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은 고객 퇴점 시 자동으로 결제가 청구되는 시스템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사실은 일부 지사 직원들이 수동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안겼다.
채용 스타트업 준코(Joonko)는 AI를 기반으로 기업 지원자를 추천한다는 허위 정보를 유포해 투자 자금을 유치했다. 그로 인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법무부로부터 기소되기까지 했다.
델피아는 “AI 를 활용, 어떤 기업과 트렌드가 크게 성장할 것인지 예측해 고객이 선제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이 회사가 실제론 AI나 머신러닝 기술을 갖추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글로벌프레딕션스 역시 홈페이지, 소셜미디어, 이메일을 통해 “최초의 AI 금융 자문사로 전문가 수준의 AI 기반 예측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고, 실제로도 AI 기술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델피아와 글로벌프레딕션스는 ‘AI 워싱’ 행위로 美증권거래위원회로부터 각각 22만 5천 달러와 17만 5천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유명한 코카콜라 역시 “AI를 사용하여 새로운 음료를 만들었다”고 홍보했다. 신빙성을 얻기 어려운 주장이란 비판이 일었고, 결국 ‘AI 워싱’임이 드러나 업계의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투명한 AI 기술 사용을 통해 소비자와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함으로써 진정한 혁신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앞서 송 책임연구원은 “‘AI 워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투명한 기술과 정보를 제공하며, 소비자들이 AI 기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과장된 주장에 현혹되지 않도록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특히 소비자와 투자자는 주체적으로 정보를 검토하고 검증하는 태도를 가져야 하며, 단순히 ‘혁신적’ 또는 ‘지능적’이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것이 아닌지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