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수호자’ 자처 트럼프, “CBDC는 ‘빅브라더…용납안돼”
민주당과 진보진영 '긍적적', 대선 결과 따라 미 CBDC졍책 정반대 전개

CBDC 이미지 (출처=디크립트)
CBDC 이미지 (출처=디크립트)

[애플경제 이윤순 기자] 암호화폐에 이어, CBDC도 미국 대선에서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그 불씨는 역시 트럼프가 붙였다. 미국 대선의 유력 후보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암호화폐와는 달리, 중앙은행이 발행할 CBDC에 대해선 쌍수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과 진보진영은 이에 긍정적이어서, 향후 대선 결과에 따라서 미국의 CBDC 정책이 정반대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럴 경우 미국 뿐 아니라, 중국을 제외한 서방 진영의 CBDC 발행․운영 계획에 끼칠 영향도 적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트럼프가 이처럼 CBDC에 반대하는 가운데,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디지털 달러에 대해 “새로운 것은 없다”는 입장을 일단 밝혔다. 연준은 현재로선 CBDC나 디지털 달러를 발행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지만, 보수층 사이에서는 CBDC나 디지털 달러가 발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계하는 분위기다.

미 공화당 등 보수진영으로선 중앙집권의 CBDC를 결코 달갑지않게 생각한다. 반면에 진보진영에서 시중의 암호화폐에 대해선 회의적이지만, CBDC에 대해선 대체로 호의적이다. 트럼프의 反CBDC 입장도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다.

앞서 선거 유세에서 트럼프는 특히 암호화폐 주자자들에게 “디지털 달러의 ‘오웰’적 의미에 대해 우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조지 오웰의 ‘빅브라더’를 연상케하며, 경각심을 부추긴 것이다. 그러나 제롬 파월에 따르면, 연준은 일단 공식적으론 내부적으로도 중앙은행 디지털 통화(CBDC) 개발을 추진하지 않고 있다. 지난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파월은 “CBDC에 관해선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며 “전혀 진행 중인 것도 없다.”고 단언했다.

트럼프 “나의 집권 후 행정부, 그런 일 안할 것”

사실 CBDC는 중앙은행 입장에서 실물을 발행할 필요가 없어 비용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한 개인 혹은 기업이 돈을 얼마나 갖고,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어 ‘빅 브러더’ 논란도 크다. 중앙은행은 CBDC를 통해 개인의 금융 거래를 빠짐없이 확인할 수도 있다. 덕분에 암시장을 줄이거나 자금세탁을 방지하는 효과도 크다. 각국 중앙은행이 이를 적극 검토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CBDC가 개인의 사생활을 통제하는 이른바 ‘빅브러더’ 도구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도 크다. 중앙은행 등이 CBDC를 매개로 개인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며 개인과 기업이 경제 활동 전반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보안문제도 있다. CBDC와 결제시스템이 몰리는 중앙은행이 만약 사이버공격을 받으면 자칫 금융시스템 전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또 기존 은행권의 자금 조달이 크게 어려워질 수도 있다. 개인이 CBDC를 전자지갑에 직접 보관하므로, 굳이 은행 요구불예금 등과 같은 수시입출금이나 단기예금 계좌를 사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은행으로선 자금이 줄어들고, 대출 여력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출금리가 높아지고 신용도가 높은 개인이나 기업만 대출을 받게 된다는 지적이다.

이런 이유로 논쟁적 사안이 되고 있는 CBDC 혹은 디지털 달러에 대해 공화당과 보수 진영은 극구 반대해왔다. 특히 정치인들로선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명분도 되었다. 특히 공화당은 “정부가 통제하는 스테이블코인과 유사한 기술이 다시 미국인을 감시하거나, 총기와 가솔린 구매를 줄이는 데 사용될 수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2024 비트코인 컨퍼런스'에 참가한 미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셔터 스톡)
'2024 비트코인 컨퍼런스'에 참가한 미 대선 후보인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사진=셔터 스톡)

지난주 내슈빌에서 열린 ‘Bitcoin 2024’ 컨퍼런스에서 트럼프는 ‘암호화폐 수호자’를 자처하는 한편, 비트코인 투자자들에게 “나의 행정부에서는 CBDC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재무부와 다른 연방 기관에 CBDC 생성과 관련된 모든 움직임을 즉시 중단하도록 명령하겠다”고 다짐했다. 트럼프는 “내가 미국 대통령인 한 CBDC는 절대 없을 것”이라며 “(CBDC는) 이제 잊으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럼에도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디크립트에 따르면 지난주에도 공화당의 톰 에머 원내총무는 “연방준비제도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CBDC를 구현하거나, 적어도 연구를 계속하기로 결심했을 수 있다”고 한 문서를 인용해 밝히기도 했다. 그가 “중앙은행 직원으로부터 그날 받았다”고 한 파일을 공개하며, “이 문서는 (CBDC를 포함한) 통화 발행과 정부의 재정 기관으로서의 운영과 같은 연방준비제도의 ‘핵심 업무’를 명시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말의 의혹을 제기했다.

트럼프는 한때 암호화폐에 부정적이었다가 다시 ‘암호화폐 대통령’으로 돌아선 바 있다. 그러나 그런 태도 변화가 있기 훨씬 전부터 그는 CBDC에 반대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지난 1월에도 한 집회에서 트럼프는 “이 기술이 미국 정부의 재정에 대한 광범위한 통제권을 부여할 것”이라며 “정부가 당신의 돈을 가져가도, 당신은 그것이 사라진 줄도 모를 것”이라고 다소 과장된 논리까지 동원해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Bitcoin 2024 컨퍼런스’에서 ‘미국을 위한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을 약속했다. 그러면서 “내가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된다면, (비트코인 비축과 CBDC 발행금지는) 나의 행정부, 즉 미국의 정책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공화당 주도 ‘CBDC발행 의회 결의 의무화’ 법안 하원 통과

현재 미 의회에선 양당 간에 CBDC를 두고 뚜렷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다. 무소속 대선 후보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민주당에서 탈당하기 전에도 CBDC를 비판했지만, 대체로 진보적 의원들 사이에서는 CBDC에 대해 긍정적이다. 앞서 중앙은행 문서를 입수했다는 공화당 톰 에머 의원은 개인과 기업 등에 대한 CBDC의 감시 기능을 원천적으로 방지한다는 취지의 ‘CBDC 감시 금지법’을 제출, 지난 5월 미국 하원에서 통과되었다. 당시 3명의 민주당 의원이 213명의 공화당 의원과 합류하여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예외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민주․공화 양당은 정반대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톰 에머의 ‘감시 금지법’은 연방준비제도가 의회의 승인 없이 CBDC를 발행하는 것을 막는게 골자다. 에머는 해당 법안이 하원을 통과한 후 “선출되지 않은 관료들이 우리의 미국적 가치를 근본적으로 훼손하는 금융 감시 도구를 발행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현재 상원의 ‘은행, 주택 및 도시 문제 위원회’에 회부되어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파월과 연준은 “현재는 검토하고 있지않다”는 원론적 입장을 보이면서도, 가능성은 열어놓고 있는 듯한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지난주 기자 회견에서 파월은 “중앙은행이 현재 ‘세계의 거의 모든 주요 중앙은행처럼’ 이 분야의 ‘발전’을 따라가고 있다”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며, 앞으로 매우 유익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파월은 “일부 국가는 실제로 CBDC 구현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지만, 우리는 정말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특히 그는 “일상적인 결제를 위한 CBDC를 발행하려면 의회의 승인이 필요하다”고 재확인하는가 하면, “은행들이 서로 결제에 사용할 수 있는 은행간 유통 CBDC는 (의회 승인이 필요한지) 덜 명확하다”고 여운을 남기기도 했다.

국제 관계 기구인 ‘Atlantic Council’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73개국이 현재 CBDC를 연구하거나 개발하고 있다. 36개국은 이미 시범 운영 중이다. 실제로 지금까지 CBDC를 출시한 국가는 자메이카, 바하마, 나이지리아 3개국뿐이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