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고위험성AI’ 열거, ‘금지된 AI’ 명시는 부적절”
“‘인공지능위원회’, 민간위원 과반수, 타 부처보다 ‘과기부’ 중심” 제안
교육이나 자금 지원 대상, ‘중견기업으로 넓혀야’ 주장도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 제21대 국회에서 폐기된 후 다시 22대 국회에서 ‘인공지능기본법’이 다수 발의되었고, 이에 따른 논의가 본격화되고 있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지난달 26일까지 여야가 각기 3건씩 모두 6건의 유사한 인공지능 법안이 발의되었다.
인공지능법안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진흥’과 ‘규제’, 어느 쪽에 무게를 둘 것인지가 논의의 핵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업계와 정부가 입법을 주도하는 분위기에서 ‘규제보다는 진흥’쪽에 방점을 찍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국회에서 한국인공지능윤리협회와 업계가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서도 과기정통부는 “복잡한 현안들을 모두 한꺼번에 반영하기보단, 우선 입법부터 한 후 시행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규제 등 보완사항을 충족시키면 될 것”이란 입장이다. 또 다른 정부 측 인사도 “기술개발을 규제하는 것보다는 지금 우리나라 상황은 기술개발을 조금 더 진흥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야 된다. 많은 자원을 투입해 기술개발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법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등의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고위험영역 인공지능’ 대통령령에 위임해야”
현재 발의된 대부분의 법안은 우선 ‘고위험영역 인공지능’을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는 다소 부정적이다. 다만 권칠승 의원 발의안은 구체적 열거 대신,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는 형식으로 규정하고 있다.
또 AI개발사업자와 이용사업자로 나누어 규정하는데 법안과 사업자를 구체적으로 구분하지 않는 법안이 함께 발의된 상태다. 또한 모든 발의안들이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위원회를 도입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나, 구체적 운영 등에는 일부 차이가 있다. 이 밖에 산업발전이나 윤리·신뢰 관련 조문도 전체적으로는 유사한 체계다. 다만 고위험 인공지능 관련 책무 수준, 벌칙규정 여부 등 세부적 규정에선 각기 다르다.
이에 대해 업계는 최근 정보통신산업연합회 보고서를 통해 사실상 이들 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법안의 뼈대를 ‘산업발전’과 ‘윤리·신뢰’ 등의 측면으로 파악하되, 전자에 대해 좀더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한 분위기다. 인공지능기본법 제정 논의가 본격화된 가운데 정부와 업계는 이처럼 규제보단 발전 내지 진흥을 아젠다로 내걸고 있는 셈이다.
촘촘한 규제 경계, ‘세밀한 정의’에 부정적
업계는(혹은 정부도) 우선 산업진흥 측면에서 “향후 기술발전 방향을 현재 시점에서 예측하기 매우 어려운 인공지능의 특성상, 다른 법률보다 정의 규정을 세심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으며, 지나치게 세부적인 내용을 규정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세밀한 규제의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특히 ‘고위험 인공지능’ 등에 대한 정의를 문제삼고 있다. 즉, 현재 열거식으로 규정된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정의는 일관된 기준이나 타당성이 부족하고 기술변화에 따른 변화를 적시에 반영하기도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러므로 이는 “지정 분야의 발전을 저해할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는 방식이 바람직할 수 있다”면서 “설사 ‘고위험 인공지능’에 대한 별도 규제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산·학·연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고, 적시성있게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다만 “대통령령으로 위임하는 방식의 발의안에 대해 다소 포괄적인 용어로 불명확하게 규정함으로써 수범자의 불확실성을 높인다는 우려도 있으나, 향후 예측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대통령령 및 소관부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면 이런 우려를 일부 완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비해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 주장도 있다. 즉, ‘생성형 인공지능’이란 용어처럼 “일시적 유행으로 그치거나 특정한 세부유형에 해당할 수도 있는 내용을 기본법 수준에서 별도로 정의·규제할 필요성이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한 부분이 이에 해당한다. 또 ‘AI 개발사업자’와 ‘이용사업자’는 이해관계나 특성이 매우 이질적이므로, 별도로 구분해 정의할 것도 주문했다. 그러면서 “특히 개발사업자의 의무는 최소화할 때 기술 발전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금지된 인공지능’ 규정은 ‘헌법가치’에 저촉?
연합회 등 업계와 정부는 특히 ‘금지된 인공지능’을 별도로 규정하는데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특정 수준의 인공지능을 아예 ‘금지’하는 것은 (창작과 경제적 자유 등) 일반 헌법가치에 비춰봐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인공지능기본법에서 이에 대한 정의가 필요한 사안인지 이견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업계는 EU를 제외한 주요국들도 아직 이를 도입할지 여부를 논의 중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에 맞서 나름의 ‘소브린 AI’를 관철하려는 EU의 경우 이를 적극 규정하며, 명확한 정의를 통해 규제하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로선 국내 업계는 “향후에 국제논의 동향에 맞추어 반영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다.
이 밖에도 업계는 새로 신설되는 기구나 제도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정부와 민간이 함께 참여하는 ‘인공지능위원회’에 대해선 비교적 긍정적이다. 이를 통해 민간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만, “구체적인 거버넌스·운영 등에 관해서는 추가적인 검토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추진체계를 설계함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기술의 개발과 산업 발전에 대한 국가적 지원을 강화할 수 있는 강력한 범정부적 추진력 확보 및 민간위원 역할”을 주문했다.
그런 의미에서 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보다는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 “국가 전체의 전략적 방향에서 의사결정을 내림으로써 강력한 추진력을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또한 민간전문가의 실제 현장 경험과 전문성을 반영할 수 있도록 위원장(정부)· 부위원장(민간) 체계보다는, 민·관 공동위원장 체계를 통해 민간위원이 과반수가 되도록 구성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건의했다. “다만 대통령 소속 위원회로 설치하는 경우 대통령과 민간위원을 동일하게 위원장으로 구성하는 방안은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단서를 달았다.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도 제안
또 위원회 내에 민간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를 제안했다. 그래서 산업별 특성이 고려된 전문위원들이 확보되어야 하므로, 이를 위한 ‘선언적 조문’도 제의했다. 또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에 힘을 실어주는 태도를 보여 눈길을 끈다. 즉 이를 통해 “중앙행정기관· 지자체의 관련 계획과 시책을 종합하고, 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확정하도록 규정함으로써, 부처·지역 이기주의 등에 따른 추진력 악화를 방지하고 산·학·연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업계는 또 ‘국가인공지능센터’·‘안전연구소’ 설립(기존 공공기관 중 지정 포함)에 대해선 적극 찬동했다.
한편 발의안들은 공통적으로 인공지능의 도입·활용을 위해 교육이나 자금을 지원할 대상기업을 중소기업·벤처기업으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중견기업들이 기술혁신을 촉진,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지원 대상기업을 중견기업까지 확대하는 것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지난해 3월 ‘중견기업법’이 혁신역량과 잠재력을 가진 중견기업의 지속적 성장을 도모하기 위한 취지로 상시법으로 전환된 사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다.
이외에 업계는 일부 발의안에서 ‘인공지능집적단지 지정’이나, ‘재원 확충’에 관한 명시적 별도 조문이 빠져있음도 지적했다. 이는 “인공지능 기술 및 산업의 발전을 위한다는 입법취지를 고려할때 법에서 제외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