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뉴질랜드 등 아바타 ‘AI 정치인’ 등장, ‘정치혐오증’도 반영
“AI, 민주주의의 미래? 아니면 자유에 대한 위협?” 질문도
“양질의 정보로 더 나은 정치적 선택 돕는다면 바람직한 일”

'AI 정치인' 이미지. (어도비 스톡)
'AI 정치인' 이미지. (어도비 스톡)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반 대중의 정치혐오증은 심각한 수준이다. 그로 인해 득을 보는 세력은 이를 마냥 부추기며, 대중으로 하여금 정치를 외면하도록 유도하곤 한다. 최근 해외 일부 국가에서 이른바 ‘AI정치인’이 등장한 것도 그런 분위기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특히 2024년은 한국을 비롯해 미국, 인도, EU, 영국 등 여러 국가와 지역에서 2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선거에 투표하거나 참여하고 있다. 그야말로 “민주주의에 있어 중요한 해”라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러나 투표소에서 만약 ‘사람’ 후보가 아닌, ‘AI 후보’에게 투표하는 상황을 고려할 수 있을까.

이런 질문을 던진 시사잡지 ‘포브스’는 “그렇게까진 아니더라도, 만약 AI가 나라를 이끌 가장 적합한 후보자를 선택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AI가 여론조사 결과와 유권자 선택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생각할 법 하다”고 나름의 화두를 던져 눈길을 끈다.

‘포브스’의 질문처럼 다른 삶의 영역과 마찬가지로 AI는 선거, 민주주의, 거버넌스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특히 ‘지구촌 선거의 해’인 2024년에 ‘AI와 선거’는 새삼 중요한 정치․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유권자와 소통, 토론하는 ‘AI 정치인’

AI 기술을 바탕으로 한 ‘AI 정치인’은 이미 현실에서 등장한 바 있다. 일종의 가상 정치인이라고 할 ‘AI 정치인’은 실제로 선거를 치르고 있는 세계 여러 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영국 브라이튼에서는 사업가 ‘스티브 엔다콧’이란 인물이 만든 아바타 ‘AI 스티브(AI Steve)’가 선거에 출마하기도 했다. 유권자들은 ‘AI 스티브’와 대화하고 소통하며 지역 주택문제부터 ‘LGBTQ’ 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문제에 대한 그의 정책에 대해 토론하거나 질문할 수 있다.

일각에선 ‘스티브’는 자신의 ‘유권자’들의 견해와 가치를 대표하려고 시도하면서, 이를 정책으로 반영할 것이란 기대다. 물론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심드렁하다. 한 주민은 이를 취재한 로이터에 “AI와 정치인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둘다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이라고 냉소적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AI 정치인’은 ‘스티브’뿐만 아니다. 뉴질랜드에서는 닉 게리첸이란 SW개발자가 소셜 미디어 구성원의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샘’(SAM)이라는 ‘AI정치인’을 만들었다. 또 지난 2018년 러시아 대통령 선거에서 등장한 ‘알리사’도 마찬가지다. “명확한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합리적인 결정을 바탕으로 구축된 미래의 정치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등장, 블라디미르 푸틴과 맞붙었다. 알리사는 선거 후엔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덴마크에서는 아스케르 사타우네라는 학자가 설립한 정당 ‘The Synthetic Party’가 역시 AI와 정치, 혹은 민주주의를 융합하는 또 다른 시도를 선보였다. 이 정당은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덴마크인 20%의 견해를 대표하는 정당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1970년대부터 덴마크 비주류 정당이 만든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기계 학습을 통해 정책을 생성했다.

그러나 정작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AI를 개발한 기업 스스로는 이런 현상을 꺼려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오픈AI다. 챗GPT를 개발, 생성AI 시대를 연 오픈AI는 최근 자사의 AI기술을 기반으로 한 가상의 ‘AI 후보’가 미국 내 시장 선거에 출마하는 것을 금지했다. 또 만약 선거 유세를 벌일 경우, 사용자 라이선스를 위반한 것으로 간주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사당 전경.
국회의사당 전경.

이미 선거에 ‘AI 알고리즘’ 영향 커

책 <호모데우스>로 유명한 작가 유발 하라리는 “우리가 설사 ‘AI 정치인’에게 투표하진 않더라도, AI가 우리의 견해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인간 후보자를 결정하여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는지 선택하도록 돕는 상황을 고려할 수 있을까”라며 “좀 더 불길한 관점을 취하자면, 이런 일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포브스’에 반문했다.

하라리는 “소셜 미디어에서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중적 알고리즘으로 인해 이미 AI가 유권자들의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한다. 플랫폼에서 지속적으로 구동해온 알고리즘은 ‘확증 편향’과 같은 프로세스를 통해 유권자들의 의사 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호모데우스>에서도 “AI가 유권자들의 신념과 선호도를 깊이 이해하고, 세상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 가능성이 가장 높은 정당 및 후보자와 연결해 주는 능력을 통해 지지 후보 선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했다.

‘딥페이크’라는 AI괴물의 등장

AI는 이미 딥페이크나 가짜정보로 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 이미 지구촌의 각종 선거에서 의도적으로 가짜정보를 퍼뜨리기 위해 알고리즘을 활용하고 있다. 특히 ‘선거의 해’인 2024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이런 식으로 남용될 수 있는 강력한 AI도구와 기술이 횡행하고 있다는게 이들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포브스’는 “특히 실제 사람의 모습을 모방할 수 있는 합성기술로 생성된 딥페이크는 민주주의에 실질적인 위협이 된다”고 최근의 사례에 주목했다. 조 바이든, 리시 수낙 영국 총리 등 정치인들의 설득력 있는 가짜 영상이 큰 파장을 부른 바 있다. 이는 물론 판을 뒤집을 만큼 절대적인 영향력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CT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선 해당 가짜영상에 등장하는 정치인의 평판이 손상될 우려가 크다.

이런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딥페이크를 탐지할 수 있는 도구를 개발하거나, 이를 방지하는 입법이 추진되기도 한다. 중국의 경우 누군가를 허위로 묘사하는 것을 범죄로 규정하는 AI법률을 제정했다. 또 교육을 통해 AI로 어떤 짓이든 꾸밀 수 있고, 온라인에서 보는 모든 것이 사실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도록 하는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AI가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기술은 날로 정교해지고 널리 확산됨에 따라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치며 부작용을 일으킬 위험은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테크리퍼블릭은 “유권자들이 아직은 ‘AI 정치인’에게 투표하는 풍조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이와 관련한 ‘실험’은 계속될 것”이라고 해 눈길을 끈다.

다만 다른 많은 분야와 마찬가지로 AI가 정치 영역에도 널리 적용될 것이란 점은 분명하다는 분석이다. 정치인이나 후보자들은 AI를 활용하여 효율적인 의사결정과 전략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유권자들의 이익에 부합하는 데이터 기반 결정을 내리고, 제안이나 선언문, 법안을 분석하고 초안을 작성하며, 개별 유권자를 보다 효과적으로 타겟팅할 수 있는 개인화된 메시지를 생성할 수 있다.

또 유권자들 역시 AI를 활용해 정당과 선출된 정치인들에게 기대했던 기준을 얼마나 잘 준수하는지를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러나 AI를 접목하는 과정에서 책임성, 투명성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다. 또 가짜 정보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강력한 입법과, 이와 관련한 윤리적 문제도 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I가 민주주의 개념 전체에 유익한 방식으로 발전하고, 더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더 나은 정치적 선택을 하도록 도울 수 있으면 바람직한 일”이라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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