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SJ ‘침공’ 시나리오 제시…“현지 ASML 장비도 작동 불능케”
中 기술탈취 원천 차단, 美 ‘실제 상황’ 대응책, 대만에 주문
현실화 경우 반도체 시장의 ‘재앙’, 일각선 ‘전쟁 기정사실화’ 비판도

ASML의 EUV가 보관된 클린룸으로 대만을 중국이 침공할 경우 불능상태로 만들 것이란 예상이다. (사진=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ASML의 EUV가 보관된 클린룸으로 대만을 중국이 침공할 경우 불능상태로 만들 것이란 예상이다. (사진=블룸버그, 월스트리트저널)

[애플경제 김홍기 기자] 중국이 만약 대만을 침공한다면 TSMC는 어떤 운명에 처할까. 그럴 경우 TSMC는 물론, ASML 역시 모든 침공으로 인한 기술탈취나 유출을 막기 위해 생산시설과 시스템을 원격으로 비활성화시킬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ASML은 TSMC에 첨단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등 핵심 장비와 부품을 제공하는 네덜란드 기업이다. 네덜란드 벨트호벤에 본사를 둔 ASML은 대당 2억 유로(2억 1700만 달러) 이상에 판매되는 이러한 기계를 생산하는 세계 유일의 제조업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1일 해당 기업 관계자들과 미국 관리들의 의견을 토대로 이같은 시나리오를 헤드라인으로 제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중국이 2027년 이전에 대만을 침공할 것”이란 미국의 예측을 뒷받침하며, 이를 기정사실화한 듯 한 것이어서 한편으론 국제사회에서 우려를 낳기도 한다.

WSJ, 미 당국자 예측 근거해 보도

중국의 ‘대만 침공’설에 대해선 주로 미 백악관과 의회에서 많이 제기되어왔다. 어느 정도 개연성은 있지만, 자칫 동아시아의 평화 무드를 해칠 수도 있는 과장된 위협이란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다시 WSJ라는 유력 매체를 통해 비공식 라인의 미 당국자가 그 가능성을 성급하게 내비쳤다는 지적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SJ의 이번 보도는 가장 민감한 이슈인 ‘반도체’ 공급에 치명적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 상황을 미리 가늠해본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이 신문은 ‘이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을 인용해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ASML Holding NV’와, TSMC가 만역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칩 생산설비와 장비를 다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도록 가동 불능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전했다. 미 행정부 관계자로 추측되는 WSJ의 ‘정통한 소식통’은 만일 중국이 세계 첨단 반도체의 대다수를 생산하는 대만과 TSMC에 대한 공격으로 확대될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우려하면서 이같은 가능성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ASML, 네덜란드 정부도 ‘시뮬레이션’

특히 ASML은 네덜란드 정부 당국자들에게 기계를 원격으로 비활성화할 수 있는 능력을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또 “네덜란드 정부는 중국의 침공으로 인한 위험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침략 가능성에 대한 시뮬레이션도 실행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ASML, TSMC, 네덜란드 무역부 대변인 등 공식라인에선 WSJ의 이같은 보도에 대한 코멘트를 거부했다.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미 국방부, 미 상무부 대변인 역시 WSJ의 의견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이는 그 만큼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네덜란드의 ASML 본사 사옥. (사진=게티이미지)
네덜란드의 ASML 본사 사옥. (사진=게티이미지)

이번에 언급된 원격 차단은 업계에서 EUV로 알려진 네덜란드 기반 ASML의 극자외선 기계 제품군에 적용되며, TSMC는 해당 제품의 가장 큰 고객이다. EUV는 고주파 광파를 활용하여 현존하는 가장 작은 마이크로칩 트랜지스터를 인쇄, 인공 지능 개발과 구동은 물론 보다 민감한 군사용 애플리케이션을 갖춘 칩을 만들 수 있다.

흔히 버스 정도의 크기인 EUV는 정기적인 서비스와 업데이트가 필요하다. WSJ는 익명의 관계자의 말을 빌려 “ASML은 킬 스위치 역할을 하는 차단을 원격으로 강제할 수 있다”고 전했다. ASML의 기술은 오랫동안 잘못된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의 간섭을 받아왔다. 특히 네덜란드는 회사가 EUV 기계를 중국에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이 글로벌 칩 전쟁에서 경쟁자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특히 ‘극자외선 노광장비(EUV)’ 기밀 보호 중요

네덜란드가 올해 ASML의 차세대 첨단 칩 제조 기계 수출을 중단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요청 때문이다. 앞서 블룸버그 통신은 “대중 수출 금지령이 발효되기 전에도 미국은 ASML에게 이전에 예정된 중국 고객에 대한 일부 배송을 취소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 회사는 올해 중국을 대상으로 한 매출의 15%가 이번 수출통제조치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그런 수출 통제에도 불구하고, ASML의 가장 큰 시장이자 고객이다. 항간에선 “이미 수출 제한 조치가 중국의 진출을 막기에는 너무 늦었을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화웨이는 작년에 구형 ASML 프린터로 만든 칩과 미국 공급업체 등 두 곳에서 입수한 장비를 결합, 애플 아이폰과 경쟁할 만한 스마트폰을 생산하기도 했다. 이런 사실은 블룸버그가 작년 10월 해당 스마트폰을 분해해서 분석해본 결과 드러난 바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제재 이후 기술 자급자족을 국가 우선순위로 삼고 있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자국산 칩 설계와 제조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은 1949년 중국공산당 정부 수립 이후 지속해서 대만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해 왔다. 마침내 시진핑 주석이 집권한 후엔 ‘통일’을 주장하며, 최악의 경우 군사 개입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을 움직임을 보였다. 중국은 이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볼 수 없었던 규모로 군사력과 핵무기를 구축해 왔다. 지난 3월 미군 최고 사령관은 “2027년까지 대만을 침공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증언하기도 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ASML의 주요 판매처 순위. 중국이 가장 많고, 그 뒤를 한국과 대만, 미국 등이 잇고 있다. (출처=블룸버그)
ASML의 주요 판매처 순위. 중국이 가장 많고, 그 뒤를 한국과 대만, 미국 등이 잇고 있다. (출처=블룸버그)

美, ‘양안사태’ 대비, 자국 내 칩 생산시설 확충

이에 지난 달 미국 의회는 대만의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한 80억 달러의 지원을 승인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또한 향후 (중국 침공으로 인한) 공급망 중단에 대비하기 위해 TSMC에 390억 달러의 보조금을 약속하면서 미국 땅에서 반도체 생산을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계 최첨단 칩의 약 90%가 대만에서 제조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5월 20일, 대만에선 중국이 ‘전쟁 선동자’로 비난하는 라이칭더가 총통에 당선, 취임함으로써 양안 간의 긴장은 더욱 높아가고 있다.

ASML의 EUV 기계는 이 회사의 시가총액이 유럽 최고이자, 고객사인 인텔의 2배가 넘는 3,700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지난 2016년 처음 개발된 이후 생사량 중 200대 이상을 중국 이외의 고객에게 판매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양이 TSMC에게 팔렸다. 이 장비는 수시로 작업을 중단, 유지관리를 반복해야 하며 예비 부품 없이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고 예민하다. EUV는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 늘 엔지니어가 특수 복장을 착용해야 하는 클린룸에 보관되어 있다. 그 때문에 현장 유지 관리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ASML은 일부 고객과는 정기적인 유지 관리를 직접 수행하는 공동 서비스 계약도 맺고 있다. 그래서 TSMC와 같은 고객이 자신의 기계 시스템에 액세스할 수 있도록 한다. 다만 “고객이 보유한 독점 데이터에 접근할 수는 없다”고 한다. 앞서 TSMC 회장 마크 류는 지난 9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대만을 침략한 그 누구라도 본사의 칩 제조 기계가 고장난 것을 발견할 것”이라면 “아무도 TSMC를 강제로 통제할 수 없다. 만약 (중국의)군사적 침공이 있으면 TSMC 공장은 그 즉시 기능을 멈출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현장 분위기를 엿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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