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내내 걱정되는게 있다. 2024년 우리 ‘기술입국’의 노정은 과연 어떠할까. 위정자의 자의적 판단에 국가 R&D예산이 뭉텅 잘려나간 판에 그 길이 순탄치 않을 듯 하다. R&D예산을 잘라낸 가장 큰 이유인즉, ‘과학계의 카르텔’ 수술이다. 얼핏 과학자의 ‘자기통치(self-government)’라는 말이 나올 만큼, 견고한 그들만의 울타리라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히 따지고 들면, 우리네와는 거리가 먼 관측이다. 과연 독점적 ‘카르텔’ 타령을 할 만큼 우리네 R&D 현실이 그렇게 배가 부른가. 그 열매를 누가 더 나눠가지냐 다툴만큼 R&D의 파이가 클까. 결코 그렇지 않다. 수 백 년 전부터 과학 선진국들이 벌여온 ‘카르텔 논쟁’을 짚어봐도 그렇다. 그들은 21세기 이 땅의 현실과는 전혀 다른, 과학계의 가치와 역학(力學)을 따지는 ‘카르텔’ 논쟁을 이어왔다. 그래서다. 우리 현실에 ‘카르텔’이란 용어를 대입하는 건 자못 생뚱맞기까지 하다.
원론적 의미에서 ‘과학 카르텔’ 논쟁은 과학 엘리티시즘을 둔 갑론을박으로부터 촉발된 것이다. 20세기 초반 물리학자 마이클 폴라니는 “오직 전문가들만이 과학에 관해 결정을 내릴 능력이 있고, ‘대중의 의지’는 그런 숙의 과정에서 전혀 기여할 수 없다”고 했다. 모든 기술과 아이디어는 독립된 과학자의 고독한 연구와 실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들만의 왕국’을 선언한 셈이다. 그러나 또 다른 과학자 존 버널은 달랐다. “과학은 오로지 사회 발전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사람들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어야 한다”며 공동체적 감시와 참여를 강조했다. 폴라니의 ‘오만함’을 질타한 것이다.
그런 반발 기류가 이어지며, 1990년대 미국 시민사회에선 ‘대중역학’(popular epidemiology)이 등장했다. 과학기술의 대중적 공유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미래 기술사회에 또 다른 방법론적 키워드를 암시한 것이다. ‘대중역학’은 특정 애그리게이터의 독점을 견제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전문가들의 지식과 자원을 총괄하고 동원하는’ 프로세서(processor)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 틈에 토마스 쿤은 기득권적 ‘정상과학’을 깨부수는데 일생을 바쳤다. 처음엔 비웃음을 샀던 ‘비정상 과학’을 기존 ‘정상과학’의 자리에 앉힌 후, 결국 진보된 최첨단 과학으로 승격시키곤 했다. ‘대중역학’의 처절한 실천이었던 것이다.
또 다른 과학적 사변을 하나 덧붙인다면, 시장 창조를 위한 정부의 역할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았고, 선뜻 누구도 나서길 꺼려하는 황무지 개척에 정부와 공공부문이 나서는 것이다. 그럴 경우 국가는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다. 특히 디지털시대엔 나노기술, 생명공학, 청정에너지, 신약 개발과 같은 미지의 세계를 개척할 결사대를 전폭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국가와 정부는 최소한의 방임적 규제자에 머물러야 한다는 신고전주의는 그래서 유통기한이 지난지 오래다.
심지어 新케인지언을 경멸하는 미국조차 지금은 다르다. 국가는 일론 머스크, 순다르 피차이, 팀 쿡, 제프 베이조스, 샘 앨트먼의 선의에만 기대지 않는다.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써가며 ‘이노베이션’을 핑계댄 민간기업들의 욕망을 조절한다. 욕망의 경계를 긋고, 무늬만’이 아닌 진짜 ‘이타적 혁신’을 견인하는 것이다. 생성AI 너머 AGI나, 휴머노이드가 눈앞에 온 지금, R&D 예산으로 대표될 공적 부조는 그토록 절실한 것이다. 그야말로 죽고 사는 문제가 되고 있다.
무릇 과학사를 복기하면 늘 이런 ‘카르텔’ 논쟁이 있어왔다. 만약 지금 우리 위정자들의 의사결정 과정에 그런 격조있는 논쟁적 언어들이 섞였더라면, 한 국가․사회의 R&D예산이 좌우된들 문제될 게 없다. 역대급 삭감을 하든 말든, 그런 사변적 고뇌의 결과라면 이의를 달 여지가 없겠다. 허나 그런 품위있는 숙고 대신, 그저 “과학 카르텔을 제로베이스로 검토하라”는 최고 권력자의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뒤바뀌었다. 빈대잡자고 ‘과학’이라는 초가 삼간을 태워버린 격이다. 그 와중에 과학계 일부는 연구비나 짬짜미하는 부류로 치부되고 말았다.
정작 검토하라던 ‘과학 카르텔’은 연구 현장의 극소수 지엽말단의 낭비적 행태일 뿐이다. 과학사적 카르텔 논쟁과는 그 궤도와 품격부터가 다르다. 허나 1960년대 이래 초유의 R&D 예산 삭감에 당장은 어쩔 수 없게 되었다. 그저 ‘AI 입국’, ‘양자혁명’,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 따위의 공허한 구두선을 하릴없이 지켜볼 수 밖에 없게 되었다. 2024년의 가장 큰 걱정거리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