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경제 김남주 대기자]좋은 맞수는 항상 상대에게 채찍이 된다. 게을러지고 싶지만 맞수의 질주에 마음 편할 자 어디 있겠는가. 경쟁에 낙후되지 않으려면 가열차게 투쟁해야 한다. 투쟁 본능이 사라지면 그땐 도태의 수순이다. 누군들 평화를 원치 않겠는가. 그러나 살려고 하면 투쟁해야 하고, 전쟁은 불가피하다. 내가 상대를 대적할 수 있거나 우위에 있어야 평화 공존을 주장할 수 있다. 약자의 평화 주창은 거지 근성에 지나지 않는다. 공짜 평화가 어디 있단 말인가. 선심으로 베풀어진 평화는 유리알보다도 부서지기 쉽다. 개인간, 기업간 치열한 경쟁은 진보의 촉매제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도전에 응전하지 못하면 파멸한다. 패권싸움은 그래서 늘 있어 왔다. 군웅이 할거하지만 결국 패권자에게 파워는 통합된다. 그래서일까 세계 양대 강국 미중 패권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최근 대만 총통 선거에서 중국과는 독자노선을 추구하면서 친미·반중 성향을 보인 민주진보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당선된 뒤 글로벌 패권경쟁은 더욱 요란한 모습이다.
다른 분야도 경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반도체·배터리·모빌리티·에너지 분야에 필수적인 희토류와 리튬 등 핵심 광물 확보를 놓고 첨예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은 자원 탐사 확대에 나서면서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과의 자원 연대 전략을 펴고 있고 중국은 엄청난 내수 시장을 바탕으로 자체 공급망 구축과 핵심 자원 수출통제에 나섰다. 중국은 리튬·희토류·니켈·코발트·구리 등 핵심 광물 가공 분야를 장악해 세계 공급망(supply chain)을 지배하고 있다. 중국은 이 같은 우위를 활용해 미국의 반도체·배터리 제재에 대응해 지난달부터 ‘산업용 금’이라 불리는 희토류 가공 기술 수출 금지 등 희토류·흑연 수출규제에 들어갔다. 리튬의 경우 중국은 자국 생산량이 세계 16% 선에 그치지만 대규모 해외 광산 투자와 높은 제련·정제 공정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기차의 전구체·리튬·양극재·음극재·배터리 시장을 장악했다.
중국은 우주를 향한 굴기(崛起) 의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번엔 ‘우주 반도체’에 공을 들이고 있다. 28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보도 내용에 따르면 중국우주기술연구원(CAST)은 지난달 한 학술지에 우주정거장 ‘톈궁’에서 100개 이상의 컴퓨터 프로세서를 동시 시험할 수 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진은 28~16나노미터 공정을 통해 고성능 반도체 20여개가 이미 테스트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톈궁에서 시험한 반도체가 100% 중국에서 설계·제조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중국이 독자 개발한 ‘스페이스OS’ 운영 시스템에서 테스트가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은 머지않아 많은 중국 반도체 회사가 각 사의 최고 제품을 우주에서 시험하기 위해 톈궁에 줄을 설 것으로 전망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주 반도체는 미국이 중국에 뒤처졌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우주전문가들에 따르면 실제 NASA가 우주에서 사용하는 칩은 30년 전 기술에 기반하고 있다. 낙후됐다는 얘기다. 투쟁에 이기기 위한 분투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톈궁에 20여개의 연구실을 설치해 10년간 1000건 이상의 과학 실험을 진행했다. 원심 분리기, 영하 80도의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저온 체임버 및 고온 가열기, 다중 레이저 및 광학 원자시계 등 첨단 과학 장비를 갖췄다. 특히 미국 제재 때문에 한계를 겪고 있는 첨단 반도체 개발을 위해 우주정거장을 적극 활용하겠단 계획을 세웠다.
미중 패권 갈등 속에 문제는 우리나라가 핵심 광물을 대부분 중국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한국광해광업공단에 따르면 2022년 기준 반도체·배터리·디스플레이·경량 소재 등에 쓰이는 핵심 광물 33종의 수입의존도가 무려 99.9%에 달했다. 4000여 종의 광물 중 첨단산업과 재생에너지의 핵심인 리튬·희토류·흑연·코발트·니켈·백금 같은 6대 핵심 광물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가 2030년까지 핵심 광물의 중국 수입 비중을 50% 이하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잡고 있는 것지만 결코 쉽지 않는 청사진이다.
삼국사기에 이런 글이 있다.“648년 12월 김춘추는 아들과 함께 당(唐)에 입조하였고, 태종(太宗)의 환대를 받았다. 그는 당 태종으로부터 특진(特進)의 벼슬을 받고, 당에 체류하던 중 태종의 호출로 불려가 만나게 된 자리에서 백제 침공을 위한 지원군을 요청해 허락받았다. 김춘추가 신라로 돌아갈 때 당 태종은 3품 이상의 관인들을 불러 송별연을 열었고, 귀한 책과 글씨를 선물했으며, 장안성(長安城)의 동문(東門) 밖까지 나가 직접 전송했다.”
유연한 외교명수 김춘추. 국제외교학 교과서 ‘Contending theories of international relations’는 국가간 외교전술의 지난함을 설파했다. 외교전략에서 선명성은 무엇인가. 상수인가 하수인가. 굴신왕래(屈伸往來)가 자유로워 기변(機變)에 응전할 수 있는 외교술이 현재로선 필요하지 않을까. 미중 패권 전쟁을, 잘 하면 우리에게 유리한 레버리지로 활용할 현책은 얼마든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