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테크’(Deep-tech)가 새롭게 조명을 받고 있다. 고도의 디지털 기술문명, 곧 하이테크와는 층위를 달리하는 개념이라고 할까. 달리 보면 ‘싱귤레리티(Singularity)’에 대한 근원적 물음도 된다. 인류가 더 이상 탐할 여지가 없을 것 같은 극단적 하이테크의 경지, 곧 ‘싱귤레리티’의 오만함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딥테크는 이진법적 디지털 기술의 하이테크 너머에 시선을 둔다. 쉽게 말해 인문학적 사유와 기초과학의 원리를 융합하고 있다. 여기서 ‘기초과학’이란 그저 응용과학에 앞선 개념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에게 IT문명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인본적 함의를 탑재한 것이다. 다른 말로 ‘사람의, 사람에 의한, 사람을 위한 기술과 과학’을 존중하는 태도로 해석된다.

딥테크의 취지는 기특한 면도 있다. 디지털 영역을 넘어 실체가 있는 대상을 연구 개발 영역으로 한다. 기술에만 집중하다보니, ‘사람’은 없고 ‘기술’만 존재했던 것에 대한 반성이다. 우리 눈앞엔 수천억 혹은 조 단위 패러미터의 LLM이 등장하고, 이를 조작해서 ‘제2의 인간세계’를 생성하려는 생성형AI가 극성하고 있다. 미러링과 복합현실로 또 하나의 메타 우주를 만들기도 한다. 인간도, 인간이 아닌 것도 아닌, 디지털휴먼쯤은 이제 상식이 되었다. 그렇다보니 언젠가부턴 그 동안 ‘설마’했던 트랜스휴머니즘이 그 실체를 드러내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 즈음 그래서 소환될 수 밖에 없는 것이 효용만능주의다.

욕망이 빚은 효용만능은 몰가치적 성취에 대한 숭배다. 지금의 IT와 ICT 질서부터가 그렇다. 인간 경험의 복잡성을 기계학습이나, GAN(적대적 신경망)의 ‘경우의 수’로 단순화, 일반화하는게 특기다. 그 과정에서 인문적 복잡성은 배제된다. 왜 이런 천문학적 패러미터가 수집, 작동되고, 사회공학적 도구가 되어야 하는지도 대체로 무시된다. 당장의 ‘효용’ 창출에 바빠서 그럴 틈이 없다. 생성AI의 편견과 오류와 무지가 그냥 우연히 생겨난게 아니다. 그런 무개념과 무책임 탓이다. 이대로라면 오로지 무기물의 창백한 테크노피아가 판치게 생겼다.

이를 보다못해 나선 이들이 SW개발자들이다. 데브옵스(DevOps)니 데브섹옵스(DevSecOps)니 하는 초첨단의 융합적 사고에 눈을 뜬 이들 개발자들은 선각자적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막무가내식 하이테크의 야심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다. ‘테크’(Tech) 세상이 대체 무엇을 위해, 어떤 세상을 향해 그토록 미친 듯이 달려가는가 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먼저 던진 아젠다가 ‘딥테크’다.

딥테크는 일단 문제 중심적이다. 문제에 대한 복잡하고 근원적 해결책을 찾는 것이 중요하며, 섣불리 단번에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는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근원적인 연원과 프로세스를 먼저 인간의 재능에 내면화시키는데 집중한다. 세상사의 모든 것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하이테크와는 다르다. 특히 무형의 디지털이 아닌 실체가 있는 대상인 ‘사람’이 그 모든 과정의 중심에 있다.

여기서 또한 ‘지속 가능 성장’이라는 진지한 임무도 부여받고 있다. “대체 이 연구가 산업이나 인간 사회에 어떤 지속 가능한 기여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사람들의 건강과 복지에 어떻게 기여할 것이며, 기후변화를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도시는? 그리고 인간에게 가장 이상적인 삶의 영역은? 등의 질문과 대답이 오간다. 그야말로 ‘딥테크’의 전공 분야다.

딥테크를 두고 AI개발자 중 누군가는 그랬다. “물리적 실체가 있는 실존하는 사람들이 문제의 중심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곧 효용이 아닌 ‘효율’에 바탕을 둔 ‘인간 실존’의 재발견이다. 그래서다. AI규제 논의를 촉발했듯, 당장의 조바심에서 우러난 기술지상주의는 반(反)실존적이다. 트랜스휴먼이니 뭐니 하며, 근시안적 원근법에 의한 미래 예측을 섣불리 해서도 안된다. 양자기술이니, 나노, 초전도니, 호모데우스니 하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딥테크는 대학교, 대기업 연구소 등이 주체가 되어, 기초 연구와 개념 생성, 증명분석에 집중한다. 기본부터 철저하다. 그런 다음 어느 정도 가시화되면 비로소 ‘과학’을 넘어 ‘공학’으로 넘어간다. 그리곤 비즈니스로 이어진다. 기술 한 가지를 개발하려해도, 이타적 검열이 필수가 되어야 하고, 인문과 디지털 플랫폼이 충분히 융합되어야 한다. 딥테크는 그런 것이다. 인본적 기술문명의 소스코드가 될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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