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개신교회, 수 백 명 신자들 ‘챗봇 목사’ 집전 예배 참석
기도와 설교, 묵도 등 진행, “대체로 진부했지만 40분을 혼자 진행”
참석자들 “어떤 교감, 영성도 없어”, 그럼에도 “실험 자체가 충격적”
[애플경제 전윤미 기자]금요일인 지난 9일 독일 뉘른베르크의 한 교회에선 진풍경이 벌어졌다. 수백 명의 독일 개신교 신자들이 목회자가 없이, AI가 설교하는 예배에 참석한 것이다.
AP통신에 의하면 이날 제단 위의 거대한 화면에는 각기 다른 아바타로 의인화된 챗GPT 챗봇이 40분간의 기도와 찬송, 설교, 그리고 마지막 축도에 이르기까지 예배 순서를 끝까지 진행했다. 이들의 기도와 설교에 따라 참석자들은 나름대로 경건하게(?) 예배를 마쳤다.
이날 예배는 비엔나 대학의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조나스 부울라인 교수가 챗GPT를 단상에 올리면서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챗봇, “다들 일어나 주 찬양하라” 예배 시작
이날 인공지능 챗봇은 이곳 성 바오로 교회의 신자들에게 “다들 일어나서 주님을 찬양할 것”을 명하면서 예배를 집전하기 시작했다.
제단 위의 거대한 스크린에 수염을 기른 흑인 모습의 아바타로 의인화된 챗GPT 챗봇은 어떤 사람의 도움없이 전적으로 예배를 도맡았다.
특히 설교가 가장 큰 관심사였다. 챗봇 아바타는 무표정한 얼굴과 단조로운 목소리로 “친애하는 여러분, 올해 독일에서 열린 개신교 대회에서 첫 인공지능으로 여러분에게 설교하게 되어 영광입니다”라고 예배 순서를 개시했다.
다만 설교, 기도, 음악을 포함한 40분간의 예배에 앞서 조나스 부울라인 교수는 사전에 챗GPT를 이에 맞게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열린 ‘인공지능 교회 예배’는 독일 바이에른의 뉘른베르크와 이웃한 푸어트 마을에서 열린 수백 개 종교 행사 중 하나로 열렸다. 이는 행사 이전부터 지역사회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정작 예배 당일엔 시작 몇 시간 전부터 19세기 신고딕풍의 교회당 앞에는 ‘인공지능 목사’를 만나고 싶은 참석자들의 긴 줄이 들어서기도 했다.
이번 종교 행사는 2년마다 한 차례씩 매년 여름에 열리고 있다. 매년 수만 명의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고, 노래하고, 신앙에 대해 토론하곤 한다. 또한 당면한 지구촌의 문제, 특히 올해는 지구 온난화,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AI를 포함한 각종 기술 문명이 초래하는 문제점 등에 대한 토론도 이어졌다.
‘챗봇 목사, “죽음 극복, 과거 잊고 현재에 도전” 설교
그런 행사의 일환으로 인공지능 목사가 집전하는 예배가 열린 것이다. 올해 예배 모임은 “지금이 때(Now is the time)”라는 모토 아래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열렸다. ‘지금이 때’라는 슬로건은 부울라인 교수가 챗봇에게 설교를 개발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입력시킨 문장 중 하나다.
그는 예배에 앞서 챗GPT에게 “우리는 교회 행사를 열고 있는데, 당신이 설교자이다. 교회 예배는 어떻게 열려야 할까요?”라고 질문했다. 또한 설교에 ‘시편’이 포함될 것과, 기도와 함께 마지막에는 축도가 있어야 한다고 요청했다.
그 결과 ‘챗봇 목사’는 “과거를 뒤로 하고, 현재의 도전에 집중하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골자의 설교를 이어갔고, 이에 신자들 모두가 귀를 기울여 경청했다.
때로는 인공지능이 만든 아바타가 너무나 ‘진부한’ 문장을 표현, 신자들의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즉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기도하고, 교회에 가야 한다”는 하나마나한 표현으로 웃음을 사기도 한 것이다.
‘챗봇 목사’에 의해 진행된 예배 시간에 어떤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그 행사를 정성들여 녹화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런 행사 자체를 비판적으로 보며, 다같이 주기도문을 낭송할때도 침묵을 지키는 모습도 보였다.
“진부한 표현, 감정없는 언어에 짜증” 반응도
이날 IT 분야에서 일한다는 54세의 한 남성 참석자는 “예배가 시작될 때만 해도 흥분되고 궁금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AI챗봇 목사의 진부한 표현과 서투른 진행에 점점 더 짜증이 났다”고 AP통신에 털어놓았다. 그는 “어떤 심령이나 마음의 표현도 없었다”고 했다.
그는 “아바타들은 전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고, 어떤 바디랭귀지도 없었으며, 너무나 빠르고 단조롭게 말을 해서, 뭘 말하는지 이해하기도 어려웠다”면서 “아직은 인공지능에게 예배 진행을 맡기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지만 이 모든 것(AI기술 등)을 가지고 자란 젊은 세대들에게는 다를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또 다른 루터교 목사인 마크 얀센은 “이런 실험에 감명받았다”고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다.
“나는 사실 이런 시도 자체가 나쁜 짓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정작 예배 진행 모습을 보곤 상당히 놀랐습니다. 비록 인공지능의 설교는 여전히 부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순조로운 편”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그 역시 “어떤 감성이나 영성이 빠진 느낌”이라며 “이는 설교를 준비할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주최자 “AI, 목회자 대체 아닌, 보좌 도구일뿐”
한편 이번 실험적 행사를 준비한 부울라인 교수는 “이번 AI 예배가 종교 지도자들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면서 “그보단, 앞으로 교회에서도 AI를 예배와 회중의 편의를 돕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다만 그는 “일부 목회자들이 문학 등에서도 영감을 찾듯이, AI 역시 설교와 관련된 아이디어를 구하는 도구로 활용하면 어떨까 싶다”면서 “특히 교구민들의 개별적인 영적 지도를 위한 시간을 더 갖기를 원하는 목회자들이라면, 그런 중요한 임무를 위해 시간을 절약하는 의미에서라도 챗봇의 도움으로 설교를 준비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이번의 실험적인 교회 예배는 종교행사에서 아직은 AI를 본격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다.
이날 현장을 취재한 AP통신은 “신자들과 챗봇 사이에는 실질적인 상호작용이 거의 없었다. ‘인간 목사’와 달리 ‘챗봇 목사’는 회중과 함께 하지도 않았고, 어떠한 교감도 없었으며, 그저 ‘삭막한’ 언어만 던져줄 뿐이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