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증권시장과 유사한 특성, ‘자본시장법’ 수준은 돼야”
이용자보호, 시장교란 등 불공정거래, 거래소 자격요건 등 빠져있어
“EU 가상자산규제법 ‘MiCA과도 큰 대조, 업계 이익만을 대변”

최근 투자 열풍을 부르며, 큰 변동폭을 보이고 있는 '솔라나' 이미지.(출처=디크립트)
최근 투자 열풍을 부르며, 큰 변동폭을 보이고 있는 '솔라나' 이미지.(출처=디크립트)

[애플경제 박문석 기자] 국회에 제출된 유사한 18개 법안을 통합한 ‘가상자산법’(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지난 25일 마침내 국회 정무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했다. 그러나 이는 그 특성이 비슷한 증권시장을 규제하는 ‘자본시장법’과 비교하면 매우 규제가 미흡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특히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불공정거래행위 규제,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규제와 공시의무 등 핵심사안은 모두 제외되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증권과 유사하면서도, 더욱 규제가 필요한 가상자산의 특성을 도외시한 법안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가상자산은 내재가치가 없고 적정가격 판단이 불가능하며, 실시간 시세 변동이 예측불가한데다, 이용자 재산권 보호 장치도 전문하다시피하다. 그러나 모든 거래가 중앙의 플랫폼인 가상자산거래소에서 이뤄지는 등 사실상 증권시장의 메커니즘과 유사함에도 입법 절차가 진행중인 ‘가상자산법’의 규제는 미약하기 짝이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세계 최초로 가상자산규제를 법률로 제정한 EU의 ‘가상자산시장(MiCA) 법안’과 비교해봐도 크게 대조를 이룬다는 비판이다. 이에 “불공정거래나 가상자산거래업체의 자격 요건 등을 비롯해 현행 ‘자본시장법’에 버금가는 수준의 규제를 가해야 옳다”는게 많은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이들은 또 “업계의 이익만을 반영한 나머지, 이용자를 보호하고, 건전한 자산거래를 외면한 반쪽짜리 법안”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전문가, “증권시장 규제에 비해 매우 제한적” 비판

KB금융지주경제연구소의 이태영 연구위원도 그런 경우다. 이 연구위원은 “증권시장은 시장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고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본시장법’에 따라 공시 규제, 불공정거래 규제, 금융투자업자 규제, 거래소 규제 등의 4가지 체계로 규율하고 있다”면서 “이에 반해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가상자산 통합 법안은 일부 불공정거래에 한해서만 규율하고 있어, 증권시장 규제에 비해 매우 제한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 연구위원은 특히 ‘가상자산 입법동향과 증권시장 규제체계와의 비교’ 연구 보고서에서 EU의 ‘가상자산시장(MiCA) 법안’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실제로 문제의 MiCA법안은 가상자산 투자자 보호를 위해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규제를 견고하게 규정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가상자산업을 운영하려면 거래소 형태나, 모집, 자문, 보관/관리 등의 유형에 따라 최대 15만 유로까지의 자본금을 갖고 있어야 한다. 또한 일정 기준의 재무건전성을 유지하고,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등 전형적인 “금융투자업자가 갖춰야 할 자격요건 수준의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4월27일(현지시각) 비트코인 시세 변동 그래프. (자료=코인젝코).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음에도, 실시간으로 큰 시세변동을 보임으로써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4월27일(현지시각) 비트코인 시세 변동 그래프. (자료=코인젝코). 암호화폐는 내재가치가 없음에도, 실시간으로 큰 시세변동을 보임으로써 이에 대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거래소 자격요건, 정보 비대칭성도 규제없어

거래시스템에서도 현행 ‘자본시장법’과는 차이가 크다는 지적이다. 증권시장은 법적 중개기관인 한국거래소(KRX)를 중심으로 투명하고 공정한 거래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는 평가다. 그러나 가상자산시장은 시장 조성에서부터 중개, 예탁관리 등 모든 절차가 오로지 민간 거래소와 역시 민간인 사용자 개인이 자의적으로 직접 거래하고 있다.

특히 사용자와 가상자산거래소 간의 ‘정보 비대칭성’도 지적되고 있다. 즉, 정보격차로 인한 불공정거래행위 우려가 크지만, 공시의무 등의 규제는 새 법안에도 빠져있다. 이에 대해 이 연구위원은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자산의 경우 오로지 수요와 공급, 시황 등에 따라 가격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면서 “그 때문에 이용자들은 증권시장보다 더 큰 리스크를 부담할 수밖에 없음에도, 사업자 규제 등 증권시장의 기본적인 규제체계조차도 (새 법안에) 마련되어있지 않다”고 꼬집었다.

또한 증권시장은 상․하한가 제한이나, 매매 일시정지 제도(서킷 브레이커즈)등과 같은 비정상적인 거래를 견제하는 장치를 두고 있다. 그러나 “가상자산시장에선 이런 ‘시장질서교란행위’를 규제하는 장치를 두고 있지 않다”는 비판이다.

이 연구위원 뿐만 아니라, 많은 전문가들은 특히 가상자산사업자에 대한 규제가 미흡함을 지목하고 있다. 이는 최근 미국의 FTX사태나, 루나-테라 사태 등이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이들은 이용자들이 맡긴 암호화폐 등 가상자산을 ‘쌈짓돈’ 쓰듯이 유용하거나, 이를 담보로 거액의 부채를 지는 등 도덕적 해이를 노출하기도 했다.

FTX사태나, 루나-테라 사태 등의 사례도 외면

그래서 “영업 인가나, 시행 업무 등록, 재무건전성, 대주주와의 거래 제한, 영업행위 규칙 등 ‘자본시장법’ 수준의 자격기준을 규정하는게 타당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현재 논의 중인 ‘가상자산법’은 이런 규정을 모두 배제하고 있다.

그나마 가상자산 사업을 규제하고 있는 ‘특정금융정보법’은 거래소를 금융정보분석원장 신고ㆍ수리사항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자본력이나 인력, 시설, 경영진 등 인가 요건이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고, ‘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만으로 운영되고 있는 정도란 비판이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이용자 재산권 보호가 크게 미흡하다는게 문제다. 앞서 FTX나 루나-테라 사태에서 보듯이 이용자들은 자칫 하루 아침에 자산을 날릴 수도 있다.

세부기준, 기속력 약한 ‘시행령’ 위임도 문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시장법’은 단순히 고유자산과 분리, 은행 등의 공신력있는 기관에 신탁하거나 예치하도록 규정하고 있을 뿐, 나머지 세부기준은 대통령령에 위임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이용자 예치금 보호를 위해 매우 구체적인 예치기준을 두고 있는 ‘자본시장법’과 극명하게 대조된다는 비판이다.

한편 국회 정무위원회는 지난 3월말 소위에서 18개의 가상자산 관련 발의안을 통합한 입법 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먼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규제를 도입하고, 가상자산시장에 대한 국제기준이 가시화되는대로 보완해나갈 것을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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