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에 소극적이고, 미래 세대에 '폭탄' 떠넘겨” 비판
31일 ‘거꾸로 가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기본계획 평가 긴급토론회’
정부의 ‘2030년 온실가스 40% 감축’ 발표 ‘탄소중립’외면 비판
[애플경제 안정현 기자]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국가 기본계획'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높다. 최근 이에 관해 열린 한 ‘평가 토론회’에선 기후위기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탄소중립으로 나아가는 국제적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것은 물론, 차기 정부와 미래 세대에게 감축 부담을 전가하는 '폭탄돌리기'”라는 지적도 나왔다. 가장 중요한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비판이다.
지난달 31일 국회의원회관 제1세미나실에서 환경부 장관을 지낸 한정애 의원(민주당) 주최로 개최된 열린 '거꾸로 가는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기본계획 평가 긴급토론회'에서는 정부의 계획안을 두고 이처럼 날선 비판이 나왔다.
앞서 정부는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40%를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기본계획을 지난달 21일 발표했다. 그러면서도 "원료수급 등 현실적인 국내 여건을 고려해 산업 부문의 감축목표는 완화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특히 원전 발전 비중은 32.4%로 늘리고, 신재생에너지 비중은 21.6%로 설정함으로써 세계 주요국의 흐름과는 역행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실현 가능성 운운 안돼···이번 계획안은 '벼락치기'"
이날 토론회 시작에 앞서 한정애 의원은 "많은 것들이 거꾸로 가는 와중에 탄소중립 정책마저도 뒤로가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2030년이 되면 유럽의 강력한 탄소중립 정책이 우리에게 일종의 관세처럼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또한 이에 맞춰 탄소중립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결국엔 에너지 전환이 가장 시급한 문제이며, 우리와 토양 환경이 비슷한 일본마저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인 만큼 우리도 '실현가능성'만을 운운하는 것보다 과감한 목표를 설정하고 (탄소중립 정책 등을) 시도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발제를 맡은 권경락 플랜 1.5 활동가는 이번 계획안을 "막판에 몰아서 감축하는 벼락치기"라고 평가했다. 권 활동가에 따르면 기본계획에 담긴 오는 2027년까지 5년간의 연평균 감축률은 2%에 불과한데, 나머지 3년 동안의 연평균 감축률은 9.3%다. "이런 경로는 사실상 감축 부담의 75%를 차기 정부로 넘기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산업 부문 감축률이 기존 14.5%에서 11.5%로 축소됐는데, 이렇게 줄어든 분량은 결국 다른 부문에 전가됐다"고도 지적했다. "이미 SK이노베이션을 비롯한 석유화학 업종이 자발적으로 최대 51%에 달하는 감축목표를 제시한 바 있는데, 이번 계획의 산업 부문 감축률 감소는 오히려 기업들의 감축 투자 유인을 저해하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태양광 이격거리 규제 등 혁신해야 재생에너지 확대 가능"
한가희 기후솔루션 연구원도 "산업계의 사정을 봐준 이같은 목표 설정은 향후 변화할 무역 환경을 고려했을 때 정부가 산업계에게 명백하게 잘못된 시그널을 보여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IRA나 CBAM 등의 정책을 통해 해외 국가들은 자국 산업의 탈탄소를 추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산업도 '연착륙'을 위해 탈탄소로의 산업 전환을 발빠르게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연구원은 "재생에너지 사업에 걸쳐있는 복잡한 규제를 풀어야 보급을 규모화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태양광 이격거리를 100m로 줄이고 풍력 인허가 창구를 단순화함으로써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PPA(전력구매계약)가 크게 확대되기 어려운 한전 중심의 전력 시장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한전의 망 사업과 발전 사업을 분리하는 구조 개선을 통해 전력시장 내 이해 상충 요소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짚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기업 입장에서 가장 접근 가능한 솔루션은 재셍에너지를 적극 활용해 탄소를 줄이는 것이다"라며 "결국 탄소중립은 환경 뿐만이 아니라 산업과 경제의 문제라는 점에서 정부가 지금 가장 중요한 5년이라는 시간을 허비하며 '폭탄돌리기'를 하면 결국 폭탄의 후폭풍은 미래 세대가 맞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력망 확충도 필요···RPS 25% 달성 시점도 늦어져"
권필석 녹색에너지전략연구소 소장은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전력망 확충도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언론에서 보도된 것처럼 현재 재생에너지 비중이 높은 제주도와 호남지방에서는 재생에너지 출력제약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했다. 실제로 지난달 24일 산업통상자원부는 태양광 발전의 급격한 증가로 전력계통 운영이 어렵게 됐다며 이달부터 호남 등의 일부 태양광 설비를 대상으로 최대 1.05GW까지 출력제어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권 소장은 "생산됐지만 출력제어로 사용되지 못하는 재생에너지는 탄소감축이 되지 않는다"며 "전력망 설비에 다소 시간이 필요한 재생에너지가 감축수단으로 제대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빠르고 구체적인 인프라 투자 계획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정부는 '신에너지 및 재생에너지 개발·이용·보급 촉진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 골자는 '신재생에너지 의무공급비율(RPS)' 25% 달성 시점을 2026년에서 2030년으로 4년 늦추는 것이다. 이에 대해 권 소장은 "재생에너지 투자 활성화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폭넓은 시민의 목소리 반영 안돼”
한편 이번 계획안의 절차적 문제도 화두에 올랐다. 안재훈 환경운동연합 활동처장은 "법 시행일로부터 불과 3일 앞둔 시점인 3월 22일에 공청회를 개최한 것과, 이마저도 공청회 하루 전에 공개한 것은 사실상 국민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지 않았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청년 및 시민단체 토론회를 개최하겠다고 했지만, 기후위기비상행동 등 시민단체들은 '구색 맞추기 1회성 토론회'를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