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비대면 진료 법안' 통과 불발
의사·약사·플랫폼, 초진이냐 재진이냐 두고 이견과 갈등
의사회 "안전성 우려" vs. 플랫폼 업계 "산업 생존해야"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애플경제 안정현 기자] 비대면 진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이 또 다시 보류되면서, 이해관계자들 간의 논쟁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지난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제1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비대면 진료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내용의 의료법 개정안에 대해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보류 판정을 내렸다. 정부 핵심 부처를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 많긴 하지만, 의료계와 약업계, 그리고 관련 플랫폼 기업 등 민간업계 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면서, 결국 입법화가 다시 지연된 것이다.

국회 문턱 못 넘어···"보다 신중해야" 의견도

일부 의원들도 법안에 대한 신중한 검토를 주장하면서 법제화가 다시 지연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공중보건비상사태 조정 발표가 오는 5월 예고돼 있다. 국내 입법화 지연으로 당초 '심각' 단계에서만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5월 단계 조정 후에는 불가능해질 전망이다. 이에 그 전에 입법화하거나, 혹은 일시적으로 비대면 서비스를 종료한 뒤 제도화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예상된다.

당시 의원들은 관련 법안이 졸속으로 만들어져 업계 간 합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지적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대면 진료 이후의 약 처방·배달 등 엮여있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좀 더 진지하게 고민한 뒤 법안을 촘촘하게 만들자는 취지다.

의사, 약사, 플랫폼 기업 등은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구체적인 환자 범위 ▲약 배송 여부 등을 두고 한 치의 양보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던 코로나 대유행 기간 동안 사업을 확장시켜왔던 플랫폼 기업들은 '줄도산'의 위기에 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의사 집단은 초진 환자에게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면 안전성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다. 약사들은 비대면 진료에 따른 약 처방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되지 않았고 약물 오남용 위험이 높아 제도화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강수를 두었다.

플랫폼 기업 "재진 한정 시 의료접근성 저해···산업 자체가 위태롭다"

(사진=닥터나우)
(사진=닥터나우)

실제로 이해관계 단체들은 저마다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우선 가장 전전긍긍해하는 곳은 의료기관을 연결해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제공해오던 플랫폼 기업 측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이하 원산협)는 지난 15일 성명서를 발표하며 "보건당국이 추진하는 비대면 진료는 재진 환자만을 위한 제도로, 명백한 포지티브 규제'라며 "워킹맘, 직장인의 의료접근성을 저해하고 청년 스타트업이 대다수인 비대면 진료 플랫폼 산업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난 1월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25697개 의료기관에서 총 1379만명이 3661만건의 비대면 진료를 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실시한 만족도 조사 결과, 전화상담 치료를 받은 응답자의 77.8%가 만족한다고 답했으며, 87.8%가 재이용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소비자(환자)들의 수요 및 만족도가 앞으로도 향상될 것으로 해석할수 있다.

이처럼 비대면 진료 만족도가 높았다는 조사 결과와 관련해, 소비자단체도 비대면 진료 대상을 초진으로 넓혀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운동 단체 컨슈머워치는 지난 21일 "재진만 허용하는 제도는 사실상 비대면진료를 금지하는 정책"이라며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허용하고 있는 비대면 진료를 IT 강국인 대한민국에서 금지한다는 사실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의협 "오진 위험성 높고, 플랫폼 기업만 배불린다"

국가별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 현황. (사진=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국가별 비대면 진료 초진 허용 현황. (사진=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이에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이하 연구소)는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비대면 진료를 통한 초진은 국민의 건강 침해 위험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연구소 측은 이에 대한 근거로 ▲대면 진료의 기본진찰 방법 중 촉진(환부를 만짐)과 타진(병소를 두들겨 봄)이 불가능하다는 점 ▲혈액·영상·기능 검사가 불가능해 오진 위험성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아울러 이미 외국에서는 비대면 진료를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이들 국가가) 코로나19 이전 초진은 허용되지 않았고, 재진 허용 초진 불가 방침을 고수해왔다"고 바로잡았다. "코로나 대유행 시기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 초진을 허용했으나 코로나19 심각 상태가 어느정도 해소된 이후 프랑스, 호주의 경우는 다시 초진을 제한했다"고도 설명했다. 의사 단체가 글로벌 흐름에 뒤쳐지며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비판에 정면으로 맞선 것이다.

그러면서 사고 발생 시 플랫폼 기업의 책임이 희박하다는 점을 비판했다. "비대면 진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환자 건강에 대한 위험성 부담은 오롯이 의사의 책임이며, 이처럼 환자 건강에 위험할 수 있는 방법을 책임도 없는 플랫폼 업체들의 요구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 연구소의 주장이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또한 지난 21일 성명서를 통해 "비대면진료가 과잉의료를 부추기고 플랫폼업체 등을 배불리는 의료 상업화의 도구일 뿐"이라며 "의약품 오남용 주장, 의료기관과 약국을 플랫폼이 주선하는 불공정거래, 무자격자의 의약품 조제 등 다양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부작용 근거로는 비대면 진료를 통해 피부미용과 관련된 약물을 건강보험 급여 기준을 무시하고 급여처방한 사례가 작년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바를 들었다.

약사회 "약물 오남용 심각”

다른 한편으로 비대면 진료 이후의 약 처방도 골치 아픈 문제로 떠올랐다. 비대면 진료 대상으로 재진 환자로 가닥이 잡혀가는 분위기임에도, 약 배달과 관련한 심층적인 논의는 거의 없다. 현재 플랫폼 기업과 제휴한 약국만이 약 배달을 허용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오남용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약사들 사이에서 나온다. 실제로 약사단체는 비대면 진료 플랫폼 닥터나우를 고발하기까지 하며 약 배달에 부정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서울시약사회는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비대면 진료에 필수적인 성분명 처방 의무화와 공적 전자처방전 환경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때문에 각종 플랫폼 기업들이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보건의료 현장을 '난장판'으로 만들 것이란 우려를 제기했다. "이들 기업은 비대면 진료를 이용해 편법적인 환자 알선, 무분별한 과대광고와 약물 오남용 조장, 약가와 배송비 할인 등 보건의료환경을 난장판으로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이 약사회의 입장이다.

그러면서 비대면 진료와 약 배달의 제도화는 열어서는 안 되는 '판도라의 상자'에 빗댔다. 공적 성격이 강한 의료현장에 플랫폼 기업의 광고, 할인, 입점 제휴 등 상업적 요소가 확산되면 결국 국민 의료비 상승이라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같은 첨예한 갈등으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까지는 시간이 소요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본격적 제도화를 위해선 정부가 너무 서두르기 보다는, 플랫폼의 독과점 우려를 해소하고 의약품 처방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 및 의료사고 방지 대책을 내세워야 한다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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