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영화 ‘Her’ 방불케하는 성별 구분 로봇 출시 가능성
“남녀 성별 고정관념 부여” vs “로봇 의인화, 더욱 애착 가질 것”
해외 연구 “성별 구분이 마케팅에 유리 판단, 곧 등장” 예상
[애플경제 박문석 기자]만약 로봇에게도 여성 또는 남성으로 구분된 성별(Gender)을 부여하면 어떨까.
2014년 미국 영화 <Her>는 실제 이를 연상케하는 줄거리다. 극중에서 아내와 별거 중인 남자 주인공은 집에 있는 인공지능(AI) OS를 깊이 사랑하게 된다. 지금의 챗GPT를 연상케하는 AI OS인 ‘사만다’는 테오도르와 교감하고, 희로애락을 나누며, 모든 일상을 함께 한다. 그 결과 주인공은 사만다를 깊이 사랑하지만, 결국 ‘그녀’는 “나는 당신의 것이자, 또한 모두의 것”이라며 거리를 둔다는 내용이다.
최근 실리콘밸리와 현지 학계 일각에선 영화 속 얘기처럼 로봇에게 성별을 부여하는 문제를 두고 가벼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 “성적 고정관념 고착 우려”
브루킹스 연구소는 최근 분석자료를 통해 “(만약 로봇에게 성별을 부여하면) 인간은 남성 또는 여성으로 간주되는 로봇에 대해 더 큰 애착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면서 “그러나 기술에 성별을 부여하는 것은 또한 고정관념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소비자들은 성(性)의 구분이 매겨진 로봇을 더욱 선호하거나, 구매할 가능성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이고 정형화된 남성이나 여성의 이름, 목소리, 외모를 로봇에 부여하는 것은 성 역할에 대한 불공정한 고정관념을 강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만약 알렉사나 시리와 같은 기존 디지털 비서들에게 흔히 여성들에게 붙이는 이름과 목소리를 부여한다면 어떨까. 이는 여성들이란 으레 겸손하거나 복종하는 존재라고 여기도록 하거나, 그런 모습으로 정형화시키는 처사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이 인용 보도한 미국의 ‘사회 심리학 실험 저널’(Journal of Experimental Social Psychology)의 근착 연구 결과는 이와는 또 다른 면을 조명하고 있다.
사회심리학저널 연구 “장․단점 병존”
즉 로봇에 성별을 부여함으로써 분명 이점도 크다는 얘기다. 이에 따르면 우선 남성 로봇, 혹은 여성 로봇으로 뚜렷이 구분될 경우, 사용자들은 더욱 그에 대해 애착을 갖게 된다.
‘사회 심리학 실험 저널’은 “로봇이 남성으로 보이든, 여성으로 보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단지 그것이 성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사용자들은 이를 더 인간적인 것으로 인식하거나, 자신이 구매하고 소유한 로봇에 대해 더 큰 만족과 애착을 느낄 것으로 예상되었다. 또 “성별이 뚜렷이 구분되어있는 로봇을 더욱 선호하면서, 많이 구매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같은 논쟁에는 결국 모순된 두 가지 역설이 포함되어 있다. 즉, 로봇에 성별을 부여하는 것은 분명 차별적인 젠더 인식 내지 남녀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하는 셈이 된다. 그러나 반대로 이는 로봇 시장을 한층 활성화시키는 효과적인 마케팅 기술이며, 특히 로봇의 의인화(擬人化, anthropomorphism 또는 humanization)를 촉진하기도 한다.
사용자들, 남녀 이름 붙인 진공청소로봇에 더 친밀감
해당 논문은 특히 6개의 진공청소 로봇을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그 결과 사용자들은 ‘그’(He) 또는 ‘그녀’(She)라고 이름을 붙인 진공로봇청소기에 더욱 큰 애착을 느끼며, 적극 구매하려는 의사를 내비쳤다.
또 다른 연구에선, 로봇 청소기의 소유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즉, “당신(소유자들)이 로봇 청소기에게 약간이라도 인격을 느끼는지”를 묻고, 이어서 “당신의 청소기에 얼마나 애착을 느끼는지”, “당신의 청소기를 사랑하는지” 등과 같은 질문을 했다.
그 결과 성별을 부여받은 진공청소기에 대해 사용자들은 이를 ‘인격체’로 느끼며, 더욱 애착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작성에 참가한 연구원들은 또한 일련의 사용자들에게 가상의 자율 주행 차량 명칭을 둔 실험도 했다. 우선 성별을 나타내는 대명사나, 남녀에게 흔히 붙이는 이름인 ‘제스퍼’, ‘아이리스’ 등을 자동차 명칭으로 삼았다. 반대로 또 다른 자동차에 대해선 성 중립적인 명칭을 붙였다. 그 결과 “전자가 후자보다는 더욱 자동차를 ‘인격체’로 보고 한층 애착을 갖게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전했다.
“마케팅엔 큰 도움…그러나 성차별 강화 우려도”
‘사회 심리학 실험 저널’의 해당 연구를 이끈 스탠포드 대학의 애슐리 마틴 교수는 “여성이나 남성의 정형화된 특성이 좋다거나 혹은 더 나쁘다거나 해선 결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친절, 따뜻함, 애정과 같은 것들이 여성성으로 간주되는데 반해, 리더십이나 권력, 결단력, 독립성 등과 같은 것들이 으레 남성들에게 귀속되는 특성들인양 여겨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해당 연구는 “(로봇에게 성별 구분을 하는 것은) 여성들이 경영과 권력과 같은 부문에서 과소 대표되는 결과를 유발할 우려가 크다”면서 “로봇의 성별 구분은 그런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기술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에 그는 “사용자들이 로봇에 애착을 갖게 하고, 그럼으로써 남성 로봇, 혹은 여성 로봇을 더욱 선호하며 적극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목적이라면 로봇을 성별로 구분하는 것은 곧 또 하나의 추세가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