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 15일 CBDC 법적 근거 마련하는 ‘암호화폐 법안’ 발의
그러나 미국 등 “사생활 침해·정치 무기화 우려” 신중 모드
전문가들 “은행 돈줄 마를 위험도···국가 간 결제, 호환 시스템도 과제”
“가장 앞선 중국 디지털위안, 인도 디지털루피 등은 대중화 가속”
[애플경제 안정현 기자] 한국은행이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추진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15일 더불어민주당 김한규 의원 등도 ‘암호자산 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했다. 이는 CBDC를 기존의 암호자산 범주에서 제외하는 등 구체적 법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CBDC 대중화를 가로막는 문제점도 새삼 강조되고 있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라는 점에서 불안정한 민간 암호화폐를 대체할 것이란 기대도 있지만, 기존 금융권의 유동성 고갈과 금리 상승,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등에 이어 세계 각국에서 CBDC 도입을 서두르곤 있지만, 실제 대체 화폐로 통용되기까진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최근 한국은행은 일단 CBDC의 필연성 내지 순기능을 강조하고 있다. 한은이 펴낸 ‘CBDC 발행의 의의 및 필요성’ 보고서는 “CBDC는 디지털 전환이 가져온 지급결제 환경의 변화 속에서 디지털경제 통화제도의 안정성을 개선하고, 지급결제시스템의 혁신을 촉진, '이중 통화제도(dual monetary system)'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적시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현금 사용 및 관련 인프라가 축소되는 상황 속 CBDC가 현금 사용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나 계층에게 지급결제 서비스 접근성을 부여한다는 점 등을 들고 있다.
또 ▲핀테크 기업의 지급결제 서비스 시장 진입으로 시장지배력·데이터 집중 문제가 악화되는 현실에서 CBDC가 개방형 플랫폼 기반의 지급결제서비스로서, 시장 경쟁을 촉진하고 사용자 데이터·프라이버시를 보호할 수 있다는 점, ▲민간 암호화폐에 비해 공적 신뢰를 지닌 CBDC가 보편적 지급결제 수단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는 점 등도 장점으로 꼽았다.
“미국, 긍정적 검토···그러나 사생활 침해 등 우려"
그러나 가장 먼저 이를 도입한 중국을 제외한 주요국들은 CBDC 발행을 적극 검토하면서도, 이에 따른 문제점을 의식해, 속도 조절을 하고 있는 양상이다.
미국도 그 동안 CBDC 도입을 적극 검토해왔지만, CBDC를 둘러싼 각계 의견 차가 심해 중국만큼의 도입 수준에 이르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톰 에머(Tom Emmer) 공화당 하원 의원은 지난달 미국인들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며 'CDBC 감시 금지 국가법(CBDC Anti-Survelliance State Act)'을 발의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의 디지털 화페 발행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또 그는 최근 개최된 보수성향 싱크탱크 '카토 연구소' 행사 연설에서 재무부를 비판하며 "CBDC는 정부가 통제할 수 있어 정치적 감시 도구로 무기화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CBDC의 개인정보 침해 가능성도 이전부터 제기됐던 문제다. 중앙은행이 통제하는 CBDC는 기존 암호화폐의 패착으로 여겨지던 자금세탁·조세회피 등을 방지할 수 있지만 거래 흔적이 그대로 남아 개인의 금융 정보를 낱낱이 감시할 가능성이 있다. 지하 경제를 축소할 수 있지만 반대로 기본적인 익명성도 보장하지 못할 것이란 얘기다.
"은행 자금줄 마를 위험···국경 간 결제 플랫폼도 필요"
뿐만 아니라 경제 주체가 예금 대신 CBDC를 이용할 경우 시중은행의 자금이 말라붙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자본시장연구원은 "CBDC 금리가 예금금리를 상회하는 경우 기존의 예금이 CBDC 보유로 대체되면서 은행들의 예금수신액이 감소하고 대출여력이 축소될 수 있다"며 "예금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은행들이 예금금리를 인상한다면, 대출금리와 기업의 자금조달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은행의 금리 인상이 투자와 생산 등 실물 경제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분석이다.
이와 함께 서로 다른 국가 간 CBDC 거래가 가능한 플랫폼 개발도 선결 조건의 하나로 꼽힌다. 각 국가에서 결제되는 CBDC가 국내를 넘어 국경을 넘어서도 빠르고 안전하게 유통되는 시스템을 개발하기 까지는 국가 간 상호 합의, 첨단 보안 기술, 철저한 프라이버시 보호 등이 전제돼야 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국제결제은행(BIS)는 몇몇 나라를 묶어 그들 국가 간 CBDC 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하는 실험을 이어오고 있다. 일례로 지난 6일(현지시간) BIS는 이스라엘·노르웨이·스웨덴 중앙은행과 공동 진행항 '아이스브레이커(Icebreaker)'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음을 알렸다.
이 프로젝트는 중심과 나머지를 따로 분산해 관리하는 '허브 앤 스포크(hub and spoke)모델을 통해 각 나라별로 다른 CBDC 결제 서비스를 수 초 내에 연결한다. 이 외에도 중국·홍콩·태국·아랍에미리트 중앙은행과 국경 간 CBDC 프로젝트 '엠브릿지(mBridge)'를 진행하기도 했다.
다만 이같은 플랫폼이 단기적 프로젝트를 통해 이뤄졌다는 점과, 프로젝트에 참여한 국가가 많지 않다는 점은 여전히 한계로 지적된다.
물론 많은 전문가들은 각국의 CBDC 도입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 그리고 남미 일부 국가들은 이미 CBDC를 법정통화로 발행하면서 그 활용도와 범위를 날로 넓혀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한 문제점과 부작용을 얼마나 빨리 해소하느냐가 도입 속도와 수준을 결정할 것이란 분석도 뒤따르고 있어 그 추이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