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크 큰 스타트업, 스마트한 고객들, 규제 효과 미미” 등
블록체인 장점인 ‘분산가치’ 실종과 중앙집중식 시스템도 원인
[애플경제 김향자 기자]실리콘밸리 은행(SVB)에 이어 12일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은행인 시그니처도 갑작스레 문을 닫았다. 금융계 전반으로 그 영향이 확산되는게 아니냐는 우려가 높은 가운데, 이들 은행의 파산 원인 세 가지를 명료하게 짚은 뉴욕타임즈(NYT)의 보도가 눈길을 끈다.
세 가지 원인…첫째는 ‘SVB, 테크업계에서 특권적 위치’
이에 따르면 첫째는 SVB가 월가 기준으로 비록 소규모 은행(1월 기준 자산 약 2,000억 달러로 국내 16위 규모의 은행)이지만, 기술 커뮤니티(테크 기업계)에선 ‘특권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83년에 시작된 이 은행은 실리콘 밸리 창업 현장 안에서 독보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은행이 손대지 않을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트업 종사자들은 SVB은행으로부터 사업 대출이나, 신용카드를 발부받았고, 주택 담보 대출과 자동차 대출을 받곤 했다.
현재 월가에선 다른 대형은행이 SVB를 인수할 것이란 소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래서 SVB.의 자산과 부채를 인수하여 예금자 등이 재앙적 손실을 입지 않도록 할 것이란 얘기다. NYT는 “SVB.의 자산과 부채를 새 은행으로 신속하고 질서 있게 이전하는 것이 최선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전체 창업 생태계가 붕괴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디지털과 블록체인에 숙련된 고객들도 한 원인
둘째로, SVB는 극단적일 만큼 디지털과 블록체인에 숙련된 고객들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몰락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NYT는 “만약 대부분의 일반적인 로컬은행들이라면 이번 SVB와 같은 일이 벌어졌을 경우 쉽게 파산이나 공황사태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가정했다.
보통 은행들은 유동성 부족에 처하면, 일단 자산을 매각하거나, 그게 여의치않으면 단기 자본을 조달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일반 고객들은 이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거나 신경쓰지도 않는다.
NYT는 “하지만 SVB.의 예금주들은 ‘정상적’인 고객들이 아니다.”고 짚었다. 즉, 그들은 은행의 증권 서류를 면밀히 조사하고, 위험과 변동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며, 인터넷상에서 하루 종일 정보를 교환하는 신생 창업자와 투자자들이란 점이 다르다. 쉽게 말해 다른 어떤 계층보다 정보에 밝고, 환경을 면밀히 분석하는 집단이다. 그래서 일단 기술 분야의 몇몇 사람들이 SVB의 지불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자, 슬랙 채널과 트위터 피드는 벤처 투자가들의 ‘끔찍한 경고’로 불붙었고,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즉, 일반인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영악하고 스마트한 고객’들이란 점이 크게 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그래서 NYT는 “만약 SVB.의 고객들이 기술 창업자들이 아니라, 보통의 식당 주인들로 구성되었다면 이 모든 일이 일어났을까?”라고 반문하며, “아마도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위험한 암호화폐 업체, 핀테크와 거래도 화를 불러
이번 사태에 S.V.B.의 붕괴에서 얻을 수 있는 세 번째 원인은 은행 규제가 효과가 없었다는 점이다. 즉, 실리콘밸리 은행은 대부분 규제의 대상이 아닌 암호화폐 거래소나 위험한 핀테크 스타트업이었기 때문에 투자자와 예금이 사라지면 ‘의지’할 곳이 없을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사태로 인해 앞으로 암호화폐 업계와의 거래를 대부분 은행들이 꺼리게 되는 일이 빚어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SVB.가 파산한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연방예금보험공사는 은행이 파산할 때면 으레 했던 절차를 밟고 있다. 무엇보다 고객들에게 예금에 대한 지급을 보증했다. 그 결과, 25만 달러 이하의 보험 계좌에 예금되어 있던 SVB 고객들은 빠르게 돈을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중앙집중식 은행 시스템도 화근”
이 신문은 이 밖에도 ‘분산가치’의 실종과 중앙집중화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지난 1년 동안 지속적인 격변을 견뎌온 암호화폐 기업과 투자자들은 (은행에 의한 중앙집중화를) 비판할 명분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이에 따르면 암호화폐론자들은 이번 SVB사태나 시그니처 은행의 파산의 근본적 원인은 ‘중앙 집중식 은행 업무’가 원인이라고 지목했다. 이들은 “대형 은행과 다른 중앙집중형 기구들에 묶이지 않은 대체 금융 시스템(블록체인 등)에 대한 비전을 살렸어야 했다”면서 “게다가 최근 암호화폐 기업들을 단속한 정부 규제당국이 은행을 혼란스럽게 하면서 사태의 씨앗을 키웠다”고 주장했다.
또 암호화폐 업체인 압토스 랩스의 CEO 모 샤이크는 “이번 사태로 (중앙집중식 시스템의) 결함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태가 진정된 다음엔 지방분권의 실용성을 한층 고려할 기회”라고 뉴욕타임즈에 말했다.
뉴욕타임즈는 또 그의 말을 빌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암호화폐가 등장한 것을 환기시켰다. 즉 “금융위기는 금융 시스템이 너무 중앙 집중화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는 비트코인의 탄생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이다.
암호화폐 팟캐스트 ‘미션, 디파이’를 진행하는 브래드 니켈은 “중앙화된 시스템은 더 불투명하다”명서 “만약에 암호화폐가 세계의 금융 궤도에 더욱 영향을 끼쳤다면, 이번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훨씬 덜 심각했을 것”이라고 NYT에 밝혔다.
반대로 이같은 주장을 반박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들은 “만약 SVB나 시그니처가 규제받지 않은 암호화폐 은행이었다면, 모든 돈은 그냥 사라질 수도 있었다”면서 “그래서 F.D.I.C(미연방예금보험공사)가 질서정연하게 상황을 처리하기 위해 개입한 것은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