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존엄과 합목적적 기술 추구, 표절 등 부작용 최소화” 목소리
과기정통부, 초·중·고 인공지능 윤리 교재로 ‘AI기반 교육 시대’ 대비
뉴욕시 교내 챗GPT 금지, 스위스 학교 챗GPT·달리 권장 등 엇갈려
창의적 사고 배양, 적극적 토론 도구 등 챗GPT ‘선용’ 주장도 커

로젠베르그 학교의 '크리에이티브 랩'.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디지털 교육을 받는다. 사진출처 = 로젠베르그 홈페이지.
로젠베르그 학교의 '크리에이티브 랩'. 이 공간에서 학생들은 디지털 교육을 받는다. 사진출처 = 로젠베르그 홈페이지.

[애플경제 안정현 기자] AI와 함께 살아갈 미래 세대에게 윤리 의식을 심어놓아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지고 있다. 현재 초·중·고등학교 아이들은 챗GPT과 같이 고도화된 AI 기술이 활용된 서비스를 숨쉬듯 이용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편으론 단순히 교과서적 윤리 지침을 읊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학생들이 스스로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을 자율적으로 책임감있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윤리적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교육 방침의 근본적 혁신이 필요하다는 급진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이를 위해선 교사와 학생의 긴밀한 소통, 교육 현장에서의 인공지능 적극 도입 등 여러 대안책이 제시되고 있다.

"과기정통부, 초·중·고 인공지능 윤리 학습 강화"

지난 13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정통부')는 정보통신정책연구원과 협력해 초·중·고 인공지능 윤리 교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온라인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는 과기정통부가 작년 인공지능 윤리 정책포럼 교육 분과 운영을 통해 학생용 인공지능 윤리교재 3종과 교사용 지도자료 3종을 마련한 것의 연장선이다.

이들 교재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불러일으킬 수 있는 위험에 바람직하게 대처할 수 있는 3대 원칙 및 10대 요건이 담겼다. 구체적으로 3대 원칙에는 ▲인간 존엄성 원칙 ▲사회의 공공선 원칙 ▲기술의 합목적성 원칙이 있으며 10대 요건에는 ▲인권 보장 ▲프라이버시 보호 ▲다양성 존중 ▲침해금지 ▲공공성 등이 포함됐다.

초·중·고등학교 교재는 각 교육단계 별 수준을 고려해 초등학교 고학년용 교재는 놀이 중심, 중등·고등 교재는 인공지능 윤리를 보다 심도있게 탐구하는 활동 위주로 구성됐다.

과기정통부 측은 미래 세대는 '인공지능 네이티브'로 자라나기 때문에 관련 윤리를 내재화하는 것이 필수라는 입장이다. 챗GPT와 같은 초대형 AI 기반 서비스가 학생들의 학습 방식은 물론 교사들이 취해야 할 교육 지침도 뒤흔들 것이기 때문이다.

"표절 등 악용 사례 속출···교육 패러다임 혁신 시급"

이처럼 정부 당국이 AI와 교육계 사이를 연결하려는 배경에는 챗GPT를 악용한 사례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챗GPT 이후에 출시될 수많은 AI 서비스가 불러일으킬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다.

실제로 지난달 국내 한 국제학교에서 챗GPT을 활용해 영문 에세이를 제출한 학생들이 0점 처리되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고서 과제가 많은 대학가에도 챗GPT를 활용했다는 경험담이 속속 나오고 있다. 이같은 표절 문제가 교육 현장에 빠르게 확산될 것이란 건 시간 문제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를 가장 심각하게 받아들인 곳은 미국 뉴욕이다. 뉴욕시는 공립학교 네트워크 및 기기에서 챗GPT 접근을 아예 차단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챗GPT를 연구 논문 저자로 인정하지 않으며, 국제머신러닝학회도 AI를 이용한 논문 작성을 금지했다.

한편으론 이미 챗GPT와 같은 혁신적 AI 기반 서비스를 교육 현장에서 완전히 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도 있다. 베끼기 문제 등을 막기 위해 학생 개개인을 완벽히 통제하기란 불가능하며 금지 보다는 올바르게 사용하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교육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이와 함께 단순 지식을 전수하는 기존의 고루한 교육 방식을 고집하기 보다 챗GPT가 답변하기 어려운, 보다 창의적인 사고력을 배양하는 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코스탈 캐롤리나 대학 교수 앨런 레이드(Alan Reid)는 지난달 CNN과의 인터뷰를 통해 "챗GPT가 글쓰기 과제를 방해할 가능성에 대한 '집단 히스테리'가 있는 것 같다"며 "긍정적인 면과 단점 양면을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챗GPT가 표절 문제를 일으키는 부정적 도구로 받아들이기 보다 이것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긍정적으로 쓰일 수 있는지 탐색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챗GPT와 협력하는 모범 사례를 교실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학생들은 자신이 작성한 답안과 챗GPT를 비교하며 놓친 부분을 찾거나 다른 접근법을 배울 수 있다는 설명이다.

린치버그 대학 교수 레슬리 레인(Leslie Layne) 또한 학생들이 챗GPT의 답을 역으로 비판하거나,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챗GPT로부터 어떻게 최적의 답을 도출할 수 있는지를 가르치거나, 혹은 한 주제 아래 챗GPT와 학생이 다른 입장으로 토론하는 방식 등 새로운 교육법을 제안했다.

AI 이미지. 사진출처 = 픽사베이
AI 이미지. 사진출처 = 픽사베이

"스위스 명문학교, 챗GPT 적극 허용"

이처럼 교육계 인사들이 챗GPT 등 AI 서비스를 두고 골머리를 앓는 가운데, 연간 수업료가 2억원이 넘는 스위스 로젠베르그 학교(Institut auf dem Rosenberg)는 학생들에게 AI 도구 사용을 오히려 권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매체 '인사이더'에 따르면 이 학교 학생들은 챗GPT는 물론 달리(DALL-E)와 같은 텍스트-이미지 생성기와 같은 AI 도구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 또 이들은 스스로 챗GPT가 내놓은 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며, AI 개발자가 부담해야 할 책임을 탐구하는 등 윤리적 탐구도 한다.

이 학교의 이사인 아니타 가데만(Anita Gademann)은 이 매체를 통해 챗GPT를 금지하는 것은 "검열과 금지의 집단 히스테리"라고 규정하며 "학생들은 이미 매일 AI 도구를 사용하는데, 이를 금지하는 것은 우리가 그만큼 세상에 뒤쳐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젠 교사와 학생이 함께 일하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기존의 일방향적 소통이 주가 됐던 교육 현장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했다. "기술과 함께, 가치와 윤리를 가르쳐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교사·학생 간 소통 중시해야···교원 수·재원 확보는 숙제"

챗GPT를 악용한 과제 베끼기 논란이 이처럼 교육 현장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하는 방향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이미 국·공립 차원에서 다양한 비교과 프로그램을 통해 단순 지식 습득을 지양하고 있다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학생이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보다 개선된 교육법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교육계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교사와 학생의 양방향적 소통을 강화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챗GPT와 같은 새로운 기술을 직면했을 때 학교가 단순히 사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교과서적 윤리 지침을 전수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새로운 교육 현장을 만들기 이전에 교사와 학생 수 비율 등 부차적인 문제가 딸려 있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인공지능이 현장에 도입된 모범 사례로 꼽을 만한 스위스 명문학교 로젠베르그 또한 학생과 교원 비율이 2대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비율은 국내 국·공립학교에서 불가능한 수준이다.

나아가 AI의 획기적 발전으로 달라질 세상을 살아갈 학생들을 위해 줄세우기 식 평가 제도를 개선하고,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교원 수 및 활동 지원금을 확대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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