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 양자기술 인재가 부족하다고 난리다. 양자기술 뿐 아니라 반도체나 각종 신소재 산업도 마찬가지다. 미국이나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다며 정부 부처나 기관들이 앞다퉈 ‘인재양성’을 외친다. 그리곤 몇 년 후엔 몇 만 혹은 몇 십만명을 ‘양성’하겠단다. 마치 율곡 ‘10만 양병론’의 21세기 버전을 보는 듯도 하다. 1960~70년대 개발독재나 계획경제의 데자뷔로 볼 수도 있지만, 일단 그 동기와 선의는 인정하고 싶다. 나라의 인재를 키우겠다는데 굳이 밑줄 그으며, 토를 달 필요는 없겠다.
문제는 그런 처방에 앞선 ‘진단’이다. 교육과 기술의 ‘기본’에 대한 숙고가 진단의 범주엔 안 보인다. 질보다는 양이며, 아무리 좋게 봐줘도 성과주의에 몰입된 진단과 처방을 벗어나지 못한다. 마치 기본기 없이 잔재주만 익히면 된다는 듯, 기초과학에 뿌리를 둔 튼실한 지적 체력에는 관심이 없어보인다. 당연히 그 ‘약발’ 또한 의심스럽다.
양자기술 내지 양자역학이란 애초 무엇인가. 이는 과학사의 통념에 대한 도전이자, 여지껏 상상도 못했던 상상소(素)들에 대한 탐구다. 결정론적 고전역학과는 달리, 불확정된 미지의 것을 탐지하는 확률론적 시도이며, 또 다른 무작위의 질서를 추구하는 것이다. 구태여 인문적 주석을 달자면, 사실과 증거에 오로지 몸을 굽혔던 ‘이성의 시대’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모든 첨단과학이 그렇듯이, 그 태동의 기초가 되는 원리부터 내면화할 때 그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 양자기술이나 차세대 반도체나 초전도체 기술은 더욱 그렇다.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 수학, 전자․전기공학 등 자연을 형상짓는 순수과학이 중요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순수한 기본을 익히 숙성시킨 후, 비로소 첨단의 응용과학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국내에선 이제 대학 물리학과를 손에 꼽을 정도다. 나머지 몇 안 남은 순수과학 계통의 학과들도 매년 존폐가 거론되곤 한다. 당장 ‘돈’이 안 되기 때문이다. 참으로 넌센스다. 그토록 호들갑을 떠는 양자기술 예찬론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다. 감히 단언컨대, 모든 혁신과 혁명은 기본의 것들을 철저히 체화시킨 후, 그걸 무기로 목전의 ‘당연한 것’들을 뒤엎는 것이다. 무릇 기초과학이 있어야 과학혁명도 있다. 그렇기에 뉴튼과 케플러가 등장했고, 프톨레마이오스와 성 아우구스티누스 이래 당연시되었던 초자연주의적 세계관도 뒤집을 수 있었다.
지금도 자연에 대한 인류의 노력은 끝없이 수정되고 있다. 급기야 영원할 것 같았던 만유인력의 법칙이나, 질량불변의 법칙, 에너지 보존의 법칙 따위가 모조리 의심받고 있다. 대신에 시간과 공간, 질량도 속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다. 현존 ‘정상과학’의 존엄을 해치는, 발칙하고도 무모한 발상이라고 할까. 그러나 ‘관측자에 따라 움직이는 물체에선 시간이 짧아지고, 공간도 단축된다’는 새로운 과학 이성과 검증 앞에선 할 말을 잃게 되었다.
정상과학을 뒤집는 혁명은 이에 머무르지 않는다. 양자역학은 그런 아인슈타인 물리학의 원형마저 변주하려 한다. 기초과학의 ‘지적 근육’을 바탕으로 절대불변의 경험들을 부정하며, 반증 가능한 조건을 집요하게 발굴해온 결과라고 하겠다. 그런데 불과 몇 년 간의 고등교육 수업만으로 그런 경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학부나 중등교육에서부터 기초과학 체력을 제대로 연마하지도 못한채, 양자대학원이나 수도권 대학 반도체 학과 몇 년 수료한다고 해서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최근의 인재양성론은 자못 즉흥적이다. 미국의 ‘인플레 감축법’이나, 양자컴퓨팅 붐에 놀란 가슴에, 최고 권력자의 하기 쉬운 말 한마디가 더해지며 불씨가 지펴진 것이다. 그 어느 구석에서도 그간 과학교육의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다는 성찰은 찾아볼 수 없다. 긴 안목의 내공이 필요한 4차산업혁명에 대한 사유 따윈 더 말할 것도 없다. 그야말로 철학의 빈곤이다.
그래서 서둘러야 한다. 백년대계이면 더 좋고, 최소 10년, 20년 대계도 좋다. 눈앞의 알량한 ‘돈벌이’보다, 훗날 기술입국과 번영을 위해서라도 순수과학에 대한 흥미와 호기심이 교실에서부터 만발해야 할 것이다.
이 참에 묻고 싶다. 부품 조립하듯, 몇 년 만에 몇 만명의 ‘인재’를 키운다 치자. 그것만으로 과연 양자컴퓨팅이나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주도할 수 있다고 보는가? 아직 그 누구도 그 끝을 알지 못하는 양자혁명의 험난한 파고를 헤쳐나갈 깜냥이 될 것으로 믿는가? 설마하니 당국자들의 진심마저 그렇다곤 믿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