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N이나 GPT는 참으로 ‘인간’과 닮았구나 싶다. 인간과 흡사한 텍스트를 만들어낸다고 해서가 아니다. 인간세상의 작동 기술이 ‘임베디드’되어 있는 듯해서 하는 말이다. 그 행간의 기술적 함의는 ‘인간’의 재현이며,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모티브를 그대로 베껴낸 것 같다. 자기회귀적 언어 모델 GPT도 그렇고, 생성적 대립 신경망 GAN도 그러하다. 멀티모달 또한 마찬가지다.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온갖 것들을 창작하는 모델리티의 작법 역시 ‘인간’에서 착안한 것이라고 하겠다.

하긴 기계학습 자체가 사람의 작품이긴 하다. 그래선지 GAN에서 보듯, 생성에 대한 적대적 대립의 모션 자체가 세상의 원리와 닮았다. 생성모델이 내민 가짜 데이터를 판별모델이 반박하고, 다시 처음보단 좀더 사실에 근거한 모델로 수렴해가는 모습은 서로 부대끼며 사는 인간 사회와 흡사하다. 사소한 일상에서부터, 정치, 사회, 경제를 관통하는 행위와 담론에 이르기까지, 늘 같고 다름의 길항(拮抗․conflict)과 변증으로 점철되는 우리네 삶의 질서가 그와 같다.

GPT 또한 크게 다를 바 없다. 제로샷, 원샷, 퓨샷(few-shot)러닝에 이르는 시행착오와 훈련, 반면교사의 검증이 반복된 결과물이다. 데이터 세트를 훈련하기 위한 서포트 데이터와, 테스트를 위한 쿼리(Query) 데이터의 대치도 이를 웅변한다. 생성과 대립의 갈등 구조를 연상케하며, 좀 거창하게는 정(正)과 반(反)이 혼재된 인간 존재의 모순율, 그것까지 성찰했다고나 할까. 실제로 그 토대가 된 초대형AI의 개발자들이 그런 걸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디지털 문명은 말 그대로 ‘digit’, 즉 0과 1의 교접과 순환이다. 이는 서로 교류하고 교차할뿐더러, ‘밀고 당기며’ 드잡이하는 역동적 조합이다. 이질적 데이터들을 통해 서로 ‘다름’의 모순을 새롭게 조합하는 논리의 원형이다. 그게 곧 탄생과 창조의 원리 아니던가? 최근의 GPT나 초초(超超)대형의 AI가 던지는 의미는 그런 점에서 너무나 원초적인 생성의 원리를 채굴한 것이어서 충격적이다. 그런 변증법적 다이어그램은 곧 디지털 혁명의 접두어가 된 ‘융합’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이질적인 섞임과 융합은 다시 새롭고도 알 수 없는 카오스적 세계를 예약하고 있다. 그게 지금 펼쳐지는 새롭고도 두려운 인공 세상이다. 아니 ‘인공’이라기보단, AI가 만들어가는 세상일 수도 있다.

돌이켜보면 문명을 지탱해온 것은 늘 이성과 본능 간의 아슬아슬한 균형이다. 사회계약으로 겨우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제어하는가 했더니, 걸핏하면 탐욕과 이기, 경쟁, 약육강식에 찌들어 산다. 관용과 신뢰가 있는가 하면, 간교한 사술이나 음모, 혐오, 거짓됨이 판을 치기도 한다. 가히 순리와 모순이 뒤범벅되며,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듯 문명이 꽃을 피워왔다.

목전의 초대형 AI기술은 그렇게 곁고 부대껴온 문명의 언어를 복선으로 깔고 있다. 그렇다보니 그 결과는 인간 세계의 미덕과 악덕을 그대로 답습할 수 밖에 없다. ‘달리(DALL-E)2’나, ‘GPT-4’ 버전처럼 업그레이드를 반복하다보면, 사람 간에도 알 수 없는 속내와 표정, 의뭉스런 내색까지 기계가 간파해낸다. 가히 독심술의 경지다. GAN을 활용하면, 실제와 유사한 결과물을 컴퓨터가 스스로 판단해서 만들어 낼 수도 있고, 가짜 뉴스나 진실을 가장한 거짓 선동쯤은 식은 죽 먹기다. 웬만한 딥페이크나 머신러닝은 이젠 한 물간 기술로 치부될 판이다. 이대로라면 GPT 아류의 AI기술은 인간이 이해하는 수준을 뛰어넘을 날이 멀지 않다.

그렇게 인간을 추월하는 것이 목전의 초대형 AI라면, 그 주인이 되고픈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좋든 싫든 실재하는 기술을 선형적으로 그냥 흡입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주체적으로 분별하며 선택할 것인가. 당연히 후자, 즉 존재적 소유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생성과 대립이 변증하는 학습데이터의 파라미터에 주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 속에 숨어있는 모순된 긴장 관계, 곧 창조적 부딪힘의 지혜를 발굴해내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초대형 데이터와 AI에 내재된 그런 모순인자들은 융합적으로 해체된 상상력의 세계를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그런 상상력은 곧 인간에게 이로운 객체로서, 초대형AI와 기술을 다스리는 무기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좀 어려운 표현이긴 하나, 결말을 예측하기 어려운 ‘열린 문명’의 서사를 인간이 늘 주도한다고 할까.

애초 “4차산업혁명은 이렇다”’고 틀을 짓는 것 자체가 무리다. 곧 등장할 GPT-4는 이제 매개변수가 무려 100조나 된다고 하니, 인간의 두뇌보다 못할 게 없다. 얼마 안가 그걸 뛰어넘는 무엇이 또 나올 것이다. 당장은 모르겠다. 초대형 AI와 GPT, 그 끝에서 어떤 반전이 올 것인지…. 그렇다고 두려워하지도, 낙관하지도, 섣부르게 결론지을 필요는 없다. 다만 어떠한, 알지 못할 무엇이 올 것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이다. 온갖 상상력과, 자유로운 영혼으로 AI의 주인이 되길 염원해야 할 것이다. 현재로선 그게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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