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 18년째 전자투표 실시, 전 국민의 절반 이상 참여
전 국민 개인 ‘공개키’ 기반, 투표앱․인증앱․집합서비스로 진행
칩과 심, PIN으로 디지털 서명, ‘직접․비밀․보통선거’ 원칙에 충실
[애플경제 이보영 기자] ‘코로나19’ 등 불가피한 사회적 변화나 장애 요인으로 인해 새삼 스마트폰과 인터넷을 통한 원격 전자투표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선거 참여도와 효율성을 높이면서도, 대의 민주주의 이념과 보통․평등․직접․비밀 4가지 선거 원칙에 충실한 전자투표를 채택하는 사례가 실제로 없지 않다. 특히 발트해의 IT강국으로 알려진 에스토니아는 지난 2005년부터 이를 전면 실시하면서, 세계적인 IT민주주의의 모범사례로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영국이나 스위스도 이를 시범적으로 실시한 바 있으나, 부작용을 해소하지 못해 결국 중단한 적이 있다. 미국의 경우는 일부 주에서 재외 거주자들로부터 이메일·팩스·웹사이트를 통해 투표용지를 받고 제출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프랑스에서도 2022년 대선에서 역시 해외 거주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투표를 실시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상 이를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전면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에스토니아가 유일하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정책연구팀의 김소희 연구원은 “에스토니아는 2005년 전자투표를 도입한 이래 11번의 전국 선거를 별 탈 없이 진행하고 있다”면서 “이 나라는 선거의 원칙에 대한 정치적·헌법적 합의와 함께 전자투표 운영에 대한 사회-기술적 시스템 전반에 걸친 제도화 및 일상화를 통해 사회적 신뢰를 구축해왔다”면서 그 구체적 내용과 함께 전자투표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에스토니아 국민, 모바일 ID로 본인 인증, 투표
이에 따르면 에스토니아가 도입 초기엔 불과 1.9%에 그쳤던 전자투표 비율이 최근 선거에서는 46.7%로 나타나 절반에 육박하는 선거권자가 선택하고 있을 만큼 일상적인 투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김 연구원은 우선 그 작동 원리를 상세히 소개해 눈길을 끈다.
이 나라에선 우선 전국민 대부분이 국가가 발급해주는 신분증인 ID card를 갖고 있다. 이는 국가가 운영하는 공개키(Public Key)를 기반으로 본인 인증뿐만 아니라 법적 서명으로도 활용될 수 있다. 2007년부터는 모바일 ID를 이용해 본인 인증을 하고 투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자투표는 사전투표 기간에만 진행되며,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와 ID카드 또는 모바일 ID가 필요하다. 선거위원회는 선거일 전에 ‘valimised.ee’사이트를 개설해 투표어플리케이션과 전자투표 시스템을 공개하고 있다.
전자투표를 위해서는 ‘투표 어플리케이션’(Voter Application)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다운 받아야 한다. 이를 통해 선거권자가 선거권이 있는지를 확인하고 후보자 명부를 볼 수 있다. 투표를 하고 나면 투표 결과는 암호화하고, 선거권자는 ‘디지털 서명’과 함께 투표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선거기간에는 투표일을 무제한으로 바꿀 수 있되, 마지막 순서의 투표 결과만 남고 이전에 한 투표는 모두 무효가 된다.
전자투표 결과 집계는 대중, 참관인, 선거위원회 위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진다. 투표 변경을 하기 이전의 모든 투표는 무효로 하며, 투표자의 개인정보(디지털 서명)은 전자투표와 분리시켜 익명의 투표 결과만 집계된다. 또한 전자투표 결과는 공개키를 이용해 공개되는데 이는 선거위원회 위원들만 접근할 수 있다. 위원들은 선거일 선거 마감 시간 이후에 개인키를 통해 암호화 된 투표를 풀고 개표해 집계한다. 이 과정이 끝나면 개인키는 비활성화 되고, 감사어플리케이션(Audit Application)을 통해 선거권자 인증, 투표 저장과 변경, 개표 절차 등 모든 과정을 모니터하는 것으로 절차가 끝난다.
감사 어플리케이션으로 전 투표 과정 모니터
전자투표 시스템은 앞서 소개한 투표어플리케이션, 인증어플리케이션(Verification Application), 집합서비스(Collection Service)로 이루어져있다. 선거권자가 투표 웹페이지에서 개인 컴퓨터를 통해 투표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이 어플리케이션은 집합서비스와 연결된다. 다시 집합서비스를 통해 선거권자 유무, 후보자 명부, 선거구 및 투표소 등을 확인할 수 있다.
선거권자는 칩(Chip Card) 또는 심카드(SIM Card)와 PIN번호를 조합해 디지털 서명을 한 후 투표할 수 있다. 선거권자의 투표는 암호화되어 사전투표 기간 동안 집합서비스의 컬렉터(Collector)에 저장된다. 또한 선거권자는 별도의 카메라가 작동하고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 기기(Mobile Phone, Tablet)에 인증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QR코드를 읽어 집합서비스에 저장된 본인의 투표가 제대로 저장됐는지 확인할 수 있다.
전자투표는 정해진 장소에서의 전자투표(Poll Site Voting: PSV)와 정해진 장소 이외에서 인터넷, 모바일 등을 이용한 투표(Remote Voting by Electronic Means: RVEM)를 포함하는 광의의 개념으로 나뉜다. 에스토니아 등의 사례를 보면, 인터넷 투표로 대표되는 원격 전자투표는 선거권자가 컴퓨터, 스마트폰 등 인터넷에 연결된 자신의 모바일 기기 등을 이용해 투표하는 방식이다.
“전자 민주주의의 꽃”
이같은 전자투표는 “투표소에 직접 갈 수 없는 선거권자들이 전자투표를 통해 자신의 한 표를 행사하기 위한 시간과 이동에 드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타인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손쉽게 그리고 언제, 어디에서나 투표할 수 있어 ‘직접선거’의 원칙에 더 부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앞서 김 연구원은 또 “정보통신기술의 발전과 인터넷 이용의 증가가 전자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고, 쌍방향적이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기술을 바탕으로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높이고 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국내에서 이를 도입하기 위해선) 목표와 목적, 그리고 규범적 가치판단 기준을 마련해 놓고 차근히 준비해서 시행해야 한다.”면서 “또한 전자투표의 경우 과정과 결과에 대해 확신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시스템에 대한 안정성, 정직성, 정확성에 대한 신뢰가 가장 필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