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삼 법칙(Gresham’s Law)의 원래 개념은 소재 가치가 다른 화폐가 동일한 명목가치를 가진 화폐로 통용되면, 소재가치가 높은 화폐는 유통시장에서 사라지고, 소재가치가 낮은 화폐만 유통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과거 10파운드 은화에 10그램의 은이 포함되어있다고 가정하자, 이 은화가 시장에 유통되면서 누군가에 의해 은화의 은을 사취할 목적으로 가장자리를 갈아서 떼어낸다든지, 가운데부분을 도려낸다든지 한다면 그 은화의 은의 함량이 모자란 은화가 될 것이고, 반대로 은의 함유량이 정상인 은화는 누군가가 보관하거나, 은을 갉아서 모자란 은화로 만들 것이다. 결국 유통되는 은화는 은의 정량이 모자란 은화만 유통된다는 논리다.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이라는 말로 알려진 그레샴 법칙은 앞에서 예를 비교해보면, 악화(惡貨)는 나쁜 돈으로서 정량미달의 은화가 될 것이고, 양화(良貨)는 좋은 돈으로서 정량의 은화가 될 것이다. 결국은 나쁜 돈이 좋은 돈을 몰아 낸다(驅逐)는 의미이다.
그 유래는 16세기 영국 재무관 토마스 그레샴(Thomas Gresham)이 당시 국왕 엘리자베스1세에게 보낸 편지에서, 국왕 선친인 헨리8세가 재정부족을 이유로 은의 함양을 1/3 줄여서 동일가치의 금속화폐를 유통시켜 나타난 문제점을 우려해서 “좋은 돈과 나쁜 돈은 함께 유통될 수가 없다(good and bad coin cannot circulate together)”는 내용을 담았다고 한다. 이 이론은 300년 후 이를 발견한 경제학자 헨리 더닝 매클라우드(Henry Dunning Macleod)에 의해 “그레샴 법칙”으로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단순한 경제 이론인 그레샴의 법칙이 동전 사용이 거의 없어진 지금까지 왜 주목받는가 하면, 이 이론 현상은 현재 우리사회 곳곳에서 적용되어 사회 병리현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나쁜 것이 좋은 것을 몰아내는 현상은 개인과 조직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고, 아주 강력한 ‘경향성’을 드러낸다.
그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 10원짜리 동전의 실제 가치는 10원보다 높은 34원 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동전을 모아 녹여서 동괴로 쓰거나, 악세사리 용도로 쓰여져, 결국 10원동전의 유통이 문제가 되었고, 그 뒤 현재 유통 중인 알미늄 소재 작은 동전으로 바뀌었다.
5만원권 지폐의 경우 발행초기부터 지금까지 물량공급에 고민하고 있다. 회수율이 20%이하로 급감 하였고, 양화인 5만원권은 교환기능 보다는 금융기관에 보관을 원하지 않는 지하경제로 활용되어 어딘가에 몰려나 있다는 추측을 할 수 있다.
짝퉁과 진품을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경쟁을 시켜 선택을 하게 하면, 짝퉁이 진품을 밀어내고 유통되다가 언젠가는 진품은 시장에서 밀려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소프트웨어 불법 복제도 시장 질서를 교란시켜 결국은 진품이 시장에서 몰려나게 된다.
조직생활에서, 능력 없는 상사를 만나 유능한 후배직원의 능력을 무시하고, 필요 없는 일들을 반복시킬 때 결국 유능한 후배직원은 스스로 한계를 느껴 결국 퇴직을 하고 만다.
조직 내 조직간의 갈등도 마찬가지다. 한 조직에서 악화(惡貨)로 분류되는 조직과 양화(良貨)로 분류되는 조직이 있다고 하자. 이 구분은 합리적 판단에 의한 구분이라고 가정하자. 악화 집단은 조직의 크기에 관계없이 부정적 시각과 강력한 신념으로 긍정의 힘을 몇 배 상쇄시키는 소외에서 비롯된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조직목표 달성에 기여가 높은 충실한 양화(良貨)는 악의적 발목 잡기, 상대비판에 능숙한 악화(惡貨)에 의해 결국 밀려 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직 특성은 굳건한 조직 시스템이 확립되지 않았거나, 리더의 강력한 리더십과 판단력이 부족 할수록 심해진다. 리더는 양화와 악화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동전 가장자리를 갉아내는 불량동전을 가려내기 위해 뉴턴은 영국 조폐공사 감사관시절 동전 가장자리에 톱니바퀴 무늬를 넣었지만, 사람과 조직의 악화와 양화를 구분하는 것은 물리적으로는 한계가 있고, 이것은 오르지 리더의 판단 몫이다.
정치조직, 관료 조직에서도 전도유망한 양화 신인 정치인들이 구시대 기득권으로 조직권력을 장악한 구태 악화 동료들에게 밀려나는 현상을 자주 본다. 안타깝다. 이러한 양화를 구분해야 할 사람은 국민이다. 국민의 감시와 악화와 양화를 구분할 수 있는 국민의 능력과 판단만이 피해를 막을 수 있다.
지식 또한 마찬가지다. 경제학자 허버트 사이먼은 잘못된 경제이론이 지식시장을 지배하고 있다고 개탄하며, 이것을 ‘지식시장의 그레샴 법칙’이라 불렀다. 그는 악화가 양화를 몰아내듯 거짓 지식이 옳은 지식을 몰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거짓 지식과 거짓 정보, 가짜 뉴스가 온 세상을 뒤덮으며 진실의 행세를 하고 있는 세태를 말했다. 거짓의 힘은 대단히 강력하다고 했다. 인터넷 댓글 역시 순기능보다는 거짓 댓글로 인한 피해가 더 크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볼 때, 일반 재화 기준에서 좋은 상품과 나쁜 상품이 있을 때 퇴출되거나 밀려나는 재화는 나쁜 상품이다. 그렇게 되고 있다. 그러나 화폐의 기준은 정반대현상이 일어난다. 이 현상이 화폐에만 나타나는 현상이길 기대한다.
[애플경제 이종광 숭실대 겸임교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