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주행 중의 모든 상황, 가상공간에서 시뮬레이션으로 검증
신속․정확, 저비용으로 검증, “완성차 개발, 출고 시간 절반으로 감축”
자율주행전기차 시대의 필수 기술로 부상, 美완성차 업계가 선두
현대 오토에버도 “가상 검증 도입”, 글로벌 자동차 시장 선점 조건

사진은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전기차 모델로서, 본문 기사와는 직접 관련없음.
사진은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전기차 모델로서, 본문 기사와는 직접 관련없음.

[애플경제 김향자 기자]가상 기술을 이용한 이른바 ‘가상 엔지니어링’(Virtual Engineering), 혹은 ‘가상 검증’(Virtual Validation)이 세계 자동차업계에 확산되고 있다. 이는 자동차 제조업체에서 실제 시험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위험하고 복잡한 조건에 대한 사전 검증을 위해 가상 공간에서 ‘실제 상황’을 재연함으로써 빠르고 정확하게 그 성능을 실험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가상 프로토타입’ 사용

한국무역진흥공사(코트라)가 수집, 공개한 자료와 보고서에 따르면 이는 ‘가상 검증’이란 명칭으로 보급되고 있다. 코트라는 “가상 프로토타입을 사용하기 때문에 초기 설계 단계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한 반복 작업을 빠르고 적은 인력과 비용을 사용해 시행할 수 있다”면서 “실제 주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정확한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이를 통해 “제품의 초기단계부터 효과적으로 제조라인이나 공정을 배치할 수 있어 생산 효율성을 증가시킨다”는 설명이다.

유엔 유럽경제위원회, BIS Research, 미시간 경제개발공사(MEDC), 현대 오토에버 등의 자료를 토대로 코트라가 낸 자동차업계 ‘가상 검증’ 보고서를 보면, 이는 물리적으로 프로토타입을 제작한 뒤 실험실로 옮겨 테스트하는 기존의 검증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다. 기존 방식은 시간이 오래 걸릴 뿐만 아니라 일일이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보완점을 식별하고 보완한 후 재설계하는 과정을 거친다. “과정이 반복될수록 필요한 인력과 비용이 증가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왜 ‘가상 검증’이 주목을 받고 있을까. 이는 전기차 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전기차 시장 선점을 위해선 가급적 완성차 출시 시간을 앞당기는게 중요하다. 수시로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맞게, 새로운 디자인과 기능의 모델을 빠르게 개발해 시의적절하게 시장에 출시해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검증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GM은 약 18개월 만에 허머(Hummer) EV 스포츠 유틸리티 트럭의 프로토타입을 개발했고, 약 2년 반 만에 메인 생산이 가능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자율주행전기차 시대의 필수기술

특히 미래 자율주행 전기차 시대엔 더욱 ‘가상 검증’이 중요해진다. 코트라는 미래 자동차 산업의 키워드를 ‘전기화’, ‘자동화’, ‘연결화’, ‘효율화’로 꼽았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안전에 대한 검증이 최우선시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자율주행차가 시장에 출시되기 전에 1억㎞ 이상의 시험 거리를 주행해야 하는데, 이는 약 2~3년의 시험 기간에 해당한다. 하지만 실제 도로에서 자동차로 이 정도 거리를 자율주행시험을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경제적이지 않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긴급 제동이나,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 운전자 보조기능같은 ‘ADAS’나 ‘AD’ 기능은 발생 가능한 모든 주행 조건에 대비하기 위해 주행 환경 검증작업을 거쳐야 한다.”는 얘기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떠오른 대안이 바로 ‘가상 검증’ 방식이다. ‘가상 검증’은 안전한 환경에서 시험할 수 있고, 실제 도로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복잡한 주행 시나리오를 시험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 효용성이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자동차 개발 단계에서 ‘가상 검증’은 앞으로 필수가 될 전망이다. 이미 미국에선 ‘가상 검증’ 기술이 자동차업계에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GM은 이미 2021년 6월 캐딜락의 전기 SUV인 ‘리릭’(LYRIQ)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가상 검증 기술을 활용해 당초 계획보다 9개월이나 앞당겨 출시할 수 있었다. 연간 15억 달러의 엔지니어링 비용도 절감했다. ‘리릭’은 ‘가상 설계’를 통해 춥거나 더운 환경에서 운전자와 탑승자를 위한 차 내부의 쾌적성을 테스트하고, 공기역학적인 디자인으로 최대 항속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또한, 다양한 ‘운전자 보조 기능’과 ‘능동적 안전 기능’ 테스트, ‘에어로어쿠스틱’(Aeroacoustics) 기능, ‘자동 도로 소음 제거 기능’ 등을 ‘가상 검증’으로 완수했다.

미국이 선두...현대 오토에버도 도입

현재로선 ‘가상 검증’ 분야에서 가장 앞선 나라는 역시 미국이다. 신차 개발과 출시에 보통 5~7년이 소요됐지만, GM의 전기 트럭 허머(Hummer)는 3년도 채 걸리지 않았다. BIS Research 자료에 따르면, 미국의 ‘가상 검증’ 시장은 2019년에 550만 달러를 기록했으며, 연평균 34.01%로 증가해 2030년에는 1억366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유엔 유럽경제위원회(UNECE) 자료에 따르면, 최근 자동차에 탑재되는 소프트웨어 코드 규모는 전투기 한 대의 4배 수준인 1억 라인이고 이는 2030년까지 3억 라인으로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완성차 출시를 위해 검증해야 하는 부분이 많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도 ‘가상 검증’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엔 현대 오토에버가 국내외 4개 소프트웨어 전문 기업과 함께 “가상공간에서 자동차 시스템 및 구동장치의 안정성을 검증하는 ‘가상 검증’ 플랫폼을 구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차량 기술 영역에서 자율주행, 커넥티비티, 전동화 흐름이 거세지면서 이와 관련된 방대한 차량 소프트웨어를 빠르고 효율적으로 사전 검증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진 것이다. 현대 오토에버는 “실물 차량에 기반하는 기존 검증방식의 한계를 극복하고, ‘가상 검증’ 플랫폼으로 시장을 선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애플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