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명 추산 투자자들 투자금 원본 되찾기 힘들 것” 전망
5억1천500만 달러 해킹 추정, ‘해커 또는 내부자 소행’ 의심
업계 관계자 “국내서도 1만명 이상 20억원 가량 피해” 추측

FTX는 스포츠에도 많은 투자를 해왔는데, 이를 보여주듯 메이저 리그 심판의 제복에도 FTX 문양이 달려있다.(사진=AP통신)
FTX는 스포츠에도 많은 투자를 해왔는데, 이를 보여주듯 메이저 리그 심판의 제복에도 FTX 문양이 달려있다.(사진=AP통신)

[애플경제 김향자 기자]파산 신청한 글로벌 암호화폐 거래소 FTX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무려 5억 1,500만 달러 규모의 해킹을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13일 ‘뉴욕타임즈’와 WSJ 등에 따르면 FTX 연구원들은 해킹이나 도난으로 의심되는 5억1500만 달러의 의심스러운 송금을 발견하고, 계좌에서 흘러나오는 '무허가 거래'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산 전문가로서 새로 FTX 신임 최고경영자(CEO)를 맡게 된 존 레이 3세는 성명을 통해 “특정 자산에 대한 무단 접근이 발생했다”며 “사법 기관이나 규제당국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산 절차의 일환으로, 이 회사는 남아있는 암호화폐 자금을 더 안전한 형태의 계좌로 옮겨왔음에도 이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같이 해킹으로 의심되는 사건은 그렇잖아도 최악의 상황을 맞은 FTX를 더욱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창업자 뱅크맨-프리드에 대한 미 증권당국의 조사와 함께 고객들의 암호화폐 투자금이 수십억 달러나 날아가면서 형사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암호화폐 전문가들이 암호 화폐의 움직임을 문서화한 이 회사의 공개 거래 기록을 검토하면서 해킹 가능성에 대한 뉴스가 11일 밤(한국시간 12일) 늦게 트위터를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암호화폐 시장 분석기관인 엘립틱(Elliptic)은 긴급 보고서를 통해 “도난당했거나 해킹당했을 수 있는 금액을 5억1천500만 달러로 예측했다.

아직까지는 해킹의 경로나 수법이 밝혀진 것은 없다. ‘뉴욕타임즈’는 “해커가 거래소의 시스템에 접근한 결과일 수도 있고, 특수 접근 권한을 가진 내부자가 자금을 가지고 잠적하려는 결과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뱅크맨-프리드는 ‘뉴욕타임스’에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암호화폐를 안전하게 이적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파산팀과 함께 정리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시장분석기관인 엘립틱은 게시물에서 “FTX에서 의심스러운 송금이 된(해킹으로 의심되는) 암호화폐가 코인베이스와 같은 중앙 집중식 거래소보다 코드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가드레일이 적은 분산형 거래소인 암호화폐 시장을 통해 빠르게 이동했다”고 밝혔다. 이곳 연구원들은 이에 대해 “해커들이 그들의 자금이 압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적인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보통 암호화폐가 도난당할 경우 해커들은 이를 사용 가능한 현금으로 전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암호화폐 거래 기록이 공개되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자금의 움직임을 추적해 절도범의 신원에 대한 단서를 수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처럼 대규모 해킹이 벌어질 경우는 FTX가 회사의 붕괴로 이미 수십억 달러를 잃은 고객들과 다른 채권자들에게 환불하는 것을 훨씬 더 어렵게 만들 것이므로 더욱 문제가 심각해진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FTX는 이미 지난 주에 폭주한 사용자들의 인출 요구에 응하지 못하면서, 80억 달러의 부채를 지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매체는 이 회사 사정에 정통한 사람들의 말을 빌려 “아마추어 투자자들은 그 동안 암호화폐처럼 위험한 생태계에서 그나마 안전하고 사용하기 쉬운 플랫폼으로 널리 평가받았던 FTX에 암호화폐 적립금을 보관하곤 했다.”면서 “그 고객들이 얼마를 갚을지는 파산 절차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1일 현재 FTX가 돈을 돌려줘야 하는 채권자(투자자)는 무려 10만 명 이상일 것”이라고 전했다.

흔히 제도권의 은행이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는, 종종 정부가 개입해서 공적자금을 투여하는 식으로 구제에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암호화폐 시장에는 통하지 않는 얘기다. 즉, 올해 들어 특히 많은 투자자들은 암호화페 시장의 장기적인 침체에 투자 원본이 증발하기 전에 앞다퉈 현금을 인출하는 일련의 뱅크런을 경험한 만큼 더욱 그렇다.

판테라 캐피털의 연구원 베라디타킷은 “고객입장에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자신의 돈을 환수할 수 있는 자금이 남아있을 때 인출을 시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WSJ’에 밝혔다. 현재 트위터를 통해 FTX 자금 이체 의혹이나 해킹과 관련한 추측이 확산되자 암호화폐 업계 관계자들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조율하는 모양새다. 또 다른 암호화폐 거래소 ‘크라켄’에 FTX의 자금 이동에 관여한 사람이 계좌를 갖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뒤, 크라켄의 최고 보안책임자인 닉 퍼코코는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모든 사용자의 신원을 알고 있다”며 이를 부인했다.

FTX사태는 국내 암호화폐 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확실하지는 않지만, 대략 1만여명 가량의 투자자금 20억원 가량이 FTX와 계열 벤처투자사인 알라메다 리서치에 묶여 있을 것이라는 추즉이 나돌고 있다. 현재로선 이 돈을 회수하는게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애초 FTX도 한국에 법인을 두고 있었지만, 지난해 9월 국내외 거래소의 가상자산 사업자 등록을 의무화하는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한국에선 철수했다

그럼에도 많은 내국인들이 FTX를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FTX는 각종 레버리지나 선물 등 다양한 투자 상품을 갖추고 있으며, 국내 거래소보다 암호화폐 종류가 더 많고, 특히 이용자 경험(UX)이 편리해서 인기가 높은 때문이다. 특히 업계에 따르면 게임업체 컴투스의 경우는 FTX의 거래소 코인 발행 기능을 이용, 자체 코인 ‘시투엑스’(C2X)을 직접 상장, 판매하고 있다. 그러나 FTX사태가 불거진 10일부터는 고팍스나 코인원, 코빗 등 FTX 의 FTT를 거래해온 국내 거래소들도 ‘투자 유의 종목’으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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